'동료'와 '적'이 구별되는 때
개와 늑대의 시간
갓 신입 티를 벗고 있을 즈음, 예고 없이 인사발령이 났다. 퇴근 준비를 하다가 동료의 호들갑에 내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사에서 '요직(要職)'이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많은 권한이 있고,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지만 정시 퇴근이 없는 곳. 너무 갑자스런 일이라 조금 황당했다. 인정받는 것 같아 기분 좋기도 하고, 일더미에 쌓여 지낼 생각을 하니 막막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잘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가장 컸다.
퇴근 후에 많은 전화를 받았다. 기억나는 것만 세어도 족히 스무 통이 되었다. 모두 발령에 관한 대화였지만, 내용은 가지각색이었다. 가장 먼저 받은 질문은 어떻게 된 것이냐는 것이었다. 나도 아는 것이 없어 대답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에서 나는 '동료'와 '적'을 구분할 수 있었다.
먼저 나를 동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축하와 염려를 건넸다. 내가 잘하고 싶어서 했던 노력들을 인정하고 치하했다. 조금 보태어 고생길이 열린 내 미래를 걱정해 줬다. 눈치껏 퇴근하라거나, 밥은 잘 챙겨 먹으라는 조언도 보태주었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내가 잘된 것을 기뻐해줘서 우리가 같은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나를 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시기를 비췄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깎아내리려는 말을 쏟아냈다. 내정자에게 사정이 생겨 내가 가게 된 것이라던가, 내가 숨겨둔 빽이 있다던가, 심지어 로비를 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런 말을 했던 모든 사람이 '나도 들은 얘긴데'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처음 듣지만, 그들은 사실이라고 믿고 있다는 얘기였던 것 같다.
막상 요직이라는 팀에서 일을 해보니 잘못된 소문이 많았다. 생각보다 권한이 없었고, 결정권도 없어다. 연봉을 더 많이 주는 것도 아니었다. 아! 정시 퇴근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결국, 팀을 옮겼다고 해서 좋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얻은 것은 하나 있었다. 동료와 적을 구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해가 저물어 어스름해질 무렵, 멀리서 다가오는 동물이 내가 키우는 개인지, 나를 해치려는 늑대인지 구분할 수 없어진다는 '개와 늑대의 시간'. 피상적 관계로 포장된 회사라는 공간은 늘 그런 시간 속에 있다. 누가 동료인지 누가 적인지 구별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빛과 그림자처럼 그 경계가 뚜렷해지는 때. 어쩌면 그것은 내가 적보다 앞서나가기 시작하는 순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