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1 "호스트바의 게이 5"
2/27 토요일
호스트바 10일 차
언제나처럼 주말의 가게는 바쁘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무관심하다.
어제의 트랜스젠더 손님덕분에
오늘 출근하면 선수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너 진짜 게이냐??라고 청문회가 열릴 줄 알았는데..
담당 실장만 다가와서 어제 손님이 너보고 게이라던데 그냥 술 취해서 그런 거 같다고 그러려니 하라고 했다.
게이가 뭐하러 호스트바 와서 일하겠냐고 그러고 나서는 장난스럽게 "야 근데 너 진짜 게이 아니냐 "
라고 묻길래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괜히 한 3초 정도 대답않고 뜸 들이다 아.. 니에요. 라고 대답했다
거의 "네 맞아요 근데 아니라고 말할 거예요!" 수준의 대답. 그러나 담당 실장은 신경도 안 쓰고 가버렸다.
그렇게 생각보다 별것 없는 하루의 시작에 실망한 채로 룸으로 초이스를 들어갔다.
언제나처럼 대부분 가게에 온 손님들은 술이 좀 취해있어 보였고
각자의 취향에 따라 선수들을 초이스를 해나갔다.
이날따라 유난히 손님은 많은데 나만 초이스가 안돼서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사람들이 술에 취해와서 사리분별이 안돼서 그렇구나.
라는 결론을 내리고 조용히 대기실에서 쓰레기 타고 있는데
새벽 2시쯤 담당 실장이 자기가 영업한 사람들 방으로 나를 꽂아줬다.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 손님에게 초이스 되어 옆자리에 앉으니
백화점 1층 누나가 떠오르는 코코마드모아젤의 짙은 향기와
머리카락 사이 PC방 흡연석의 담배냄새 그리고 그녀의 들숨날숨마다 느껴지는
술에 쩔은 지하철 옆좌석 아저씨의 냄새까지 그녀 주변 공기에 고르게 분포되어 내 콧속으로 들어왔다.
뭔가 믹스 매치된 향의 조합이다 라는 생각으로 잠시 아무 말 없이 멍 때리고 있다 손님의 표정을 보니
내가 영 마음에 안 드는듯한 표정, 좁혀진 미간 비틀어진 입술
그사이에 자리한 너무 세워버린 듯한 코는 내가 조금만 더 지루하게 굴면
분노와 짜증으로 얼굴에 지진이 일어나서 무너져 버릴 것 같았다.
이번 챕터의 여행이 끝나고 정한 다음 여행지는 금수저의 삶이었고 그 계획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여기서 돈을 많이 모으고 떠나야 했기에 재빨리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술을 따라줬다.
"제가 여기 앉아서 다행이네요, 같이 오신 세분 중에 제일 이쁘세요."
"마치 트와이스로 치면 쯔위 걸스데이로 치면 유라 AOA로 치면 설현 우리집으로 치면 엄마!"
이런 말도 안 되는 드립을 나오는 대로 마구잡이로 치면서
비위를 맞춰주는 내 모습이 나 스스로도 흥미로웠다.
원래 내 삶 속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들. 여자친구들에게도 못해주던 이야기들인데
나는 아예 다른 캐릭터로 사는 거니까. 라는 생각만으로도 내가 어떤 행동을 하려 할 때마다
나를 옭아매던 나는 이래야 해! 의 저주가 다 풀려버린 기분이라 뭔가 쾌감이 느껴졌다.
내가 속으로 쾌감을 느끼거나 말거나 손님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자기는 원래 이런 가게 안 온다고
가도 강남 쪽 가는데 어쩔 수 없이 온 거니까 그냥 적당히 이야기나 하고 술이나 따르다 가라고 했다.
너희들 여기서 일해봤자 얼마나 버냐고 너희 한 달 버는 돈 자기차 유지비도 안된다면서
자기는 하이에서 일하고 우리랑 급이 다르다고 했다. 반말로
[하이는 하이 쩜오라는 뜻으로 강남의 룸들을 나누는 등급 중에 하나라고 한다 텐프로 비슷한 수준이라는 듯.]
와, 저 무지가 만들어내는 패기와 타인의 대한 발언의 경솔함들.
영화나 막장 드라마에서나 보던 극단적 악역 타입의 인간을 실제로 보니 너무 신기했다.
무슨 이야기를 더 해줄지 궁금해서 나도 자연스럽게 말까고
"와 그런데서 일하면 얼마나 벌어?? 어쩐지 얼굴이 조폐공사 같더라, 돈을 찍어내게 생겼어."
라며 호응해주니 조폐공사가 뭐냐고 짜증냈다. 아.. 설명하는 순간 유머는 끝인데..
그래도 차근차근 설명해주니 꺄륵꺄륵 웃었다. 웃으면 저렇게 이쁜데 왜 인상 쓰고 사나 몰라.
그리고 설명해주니까 그제야 꺄륵꺄륵 웃는 멍청함도 나름 귀여웠다. 순수한 악마처럼 보였다.
얼굴이 조폐공사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니면 조울증인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신나서는
자기가 얼마나 버는지 자기네들 라이프스타일이 얼마나 럭셔리한지 알아서 신나게 말하기 시작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관리받으며 외제차를 타고 비싼 오피스텔에 혼자 살아가는 삶.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서는 이게 백화점에서 한 해에 6천만원은 써야 주는 카드라고 자랑했다.
그걸로 뭐하냐고 물으니 커피 공짜로 먹는다고 했다. 기적의 근검절약법.
그리고 원래는 연예기획사에서 데뷔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B급 돼서 이도 저도 안되고 가난하게 살바에 돈이나 많이 벌자 싶어서 화류계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보통 한 달에 천에서 천 오백 버는데 잘 벌면 이천도 번다면서
자기는 출근 빡세게 안 하는 편이고 거의 테이블만 돌고 2차는 안 간다고 했다.
뭐 진짠지 아닌지 나야 모르지만.
나름 자신의 직업에 굉장히 자부심이 있어 보였다.
남들한테 자기 직업 말하기 좀 그러면 어떠냐고 실리가 중요하다며
결국은 돈이 최고라고 말하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조선시대의 꼰대 양반들 눈에 실학자들이 저렇게 비쳤으려나 싶기도 하고. 뭐 그랬다.
더불어서 아나운서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세련되게 지적으로 생긴 그녀의 입에서
전문적이며 특수한 욕들과 저렴한 문장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내면이 아름다워야 외면도 아름답다는 건 희대의 개소리가 확실하다는 믿음이 생겼다.
손님은 집에 가면서 오만원짜리 네 장을 팁으로 줬다.
세상에 존재하는 맛들 단 짠 신 쓴 등등 중에 최고의 맛은 돈맛이다.
나는 그 싸가지없던 손님이 갑자기 좋아졌다.
나도 조울증에 걸려버렸다.
2/28 일요일
호스트바 11일 차
오늘은 휴무, 집으로 가려고 저녁쯤 서울역으로 와서 부산으로 가는 KTX를 탔다.
내일은 4년에 한번 오는 2월 29일이며 아빠의 생일날이다.
내일은 아빠의 생일이며 아빠의 3차 항암치료의 시작일이다.
내일은 아빠의 3차 항암치료의 시작일이자 A대학병원과의 의료사고해결을 위한 미팅 날이다.
[대학병원 총무팀의 법무담당자와 대화를 나눠본 결과 현재 의료분쟁조정 중이라 대학병원의 실제 이름을 남길 수가 없다고 한다.
현실 속의 나는 실제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서술할 자유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거짓 속에서만 자유롭다.]
KTX에 앉아서 아빠의 의료사고와 관련된 병원 기록지와
변호사들이 마련해준 서류들을 천천히 다시 읽어 나갔다.
수십번도 더 본 서류지만 다시 천천히 읽어본다.
먼저 병원 기록지부터 한 장씩 넘겨본다.
익숙한 용어와 약물 이름들이 눈에 들어오고
눈을 깜빡일 때마다 작년 9월의 의료사고의 순간이 감은 눈의 블랙 스크린 앞으로 생생하게 스쳐 지나간다.
아빠의 병실에 들어찬 수십 명의 의사와 간호사들 그리고 비명에 가까운 그 사람들의 외침들.
투약하면 큰일 난다고 절대 넣으면 안 된다고 수십 번 이야기한 약물을 수술 전에 투여해서
온몸의 경련을 일으키며 쇼크를 일으키는 아빠의 모습.
급격하게 차오르는 복수를 빼기 위해 꽂은 관에서는 피가 천장까지 튀어 오르고
쇼크로 인해 장액이 온 바닥에 흘러있는 그로테스크한 장면들
그 뒤 일어난 심정지로 시행된 30분간의 심폐소생술과 삑삑 거리는 불규칙한 각종 장비들의 불안한 전자음들.
힘들것 같다며 울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어린 담당 전문의의 얼굴과
그 이야기를 들으며 쓰러지는 엄마, 울고 있는 숙모와 아빠 친구분들의 충격받은 표정들
그리고 그때 기적적으로 바이탈 사인이 돌아와
급하게 중환자실로 이송되는 아빠의 모습들까지 하나하나 다 떠오른다.
뒤늦게 나타난 담당교수가 각종 변명을 하느라 여념이 없던 장면도 떠오른다.
자신의 딸, 아버지까지 팔아가며 변명하던, 그러나 병원 기록지는 그 변명들이 무색할 정도로
의사의 불성실함과 목숨에 대한 천대가 드러나 있었다.
이 모든 순간들이 다시 생생하게 떠오르기 시작하자.
지금 이 순간이 그냥 내 거짓말 여행기의 한 챕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진짜 현실이 아니라.
나의 진짜 현실은 힘든 항암치료과정에 있는 아빠 곁을 떠나서 돈도 안 되는 글하나 써보겠다고
서울로 올라와 한 달을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불효자식.
자취방에서 부모님 생각을 하면 , 미래를 생각하면 , 앞으로 먹고살 생각을 해보면
그러니까 현실에 몸을 푹 담그면 발끝을 아무리 세워도 닿지 않는 현실의 수심이 느껴져서 너무너무 두렵다.
여기서 허우적허우적 대다가는 정말 빠져 죽어 버릴 것 같은 기분.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기다가 나도 모르게 현실이 주는 절망감에 풍덩 빠져 버렸다.
다시 변호사가 준비해준 서류를 보기 시작한다
이 의료사고로 인해 우리가 어느 정도선의 보상금을 요구할 수 있는지,
민사적 형사적으로 어떤 조치들을 취할 수 있는지가 서술되어 있다.
이 서류를 보면서는 현실이 선사하는 불합리성에 대한 분노에 휩싸인다.
현실은 휘발적 불합리성으로 가득 차 있고 사회적 약자는 늘 그 불합리성에 의해 분노만 활활 타오르게 된다.
나는 이번 의료사고를 통해서 의료법적으로 인간의 목숨 값이 얼마나 싸구려인가 깨달았다.
그리고 법이 얼마나 자국민을 잘 보호해주는가도 깨달았다.
배를 운항함에 있어서 사고를 일으켜 승객에게 피해를 입힌 선장은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다.
택시기사나 버스기사도 마찬가지다.
부실공사를 한 건축업자와 관련 비리 공무원들도 사건이 발생하면 합당한 처벌을 받는다.
아빠에게 의료사고를 일으켰던 의사는 여전히 자신의 위치와 명예 그리고 부를 유지하고
A 대학병원에서 진료행위를 꾸준히 하고 있다. 법은 자국민인 의사를 철저하게 보호해주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자국민의 범주에서 튕겨져 나간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어떻게 합리적으로 우리가 입은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을지 서류를 몇 번이고 읽어본다.
그렇게 수십 장의 서류들을 뒤적뒤적 거리는 동안 금방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역에 내려 택시를 탄 뒤 집 앞 파리바게트에 내렸다.
다행히 아직 문을 닫지 않아서 아빠가 좋아할 만한 케잌을 사서 집문을 두드렸다.
내가 온 걸 아는지 복동이가 낑낑거리며 난리 부리는 소리가 들린다.
끼릭끼릭, 오래돼서 잘 열리지 않는 주택 현관문의 익숙한 쇳소리도 들린다.
갑자기 찾아온 아들이 반가우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왜 왔냐고 심퉁 맞게 대하는 아빠가 나타난다.
엄마는 자고 있다고 말하는 아빠의 발은 맨발이다. 아빠는 슬리퍼도 안 신고 내 문부터 먼저 열어줬다.
집으로 들어가 시계를 보니 열한 시 삼십 분 정도, 엄마를 깨워 이것저것 이야기하다
열두시가 땡 하자마자 케잌위에 촛불을 켰다. 따듯하게 온 방에 노란불빛이 차오른다.
노래를 부르고 초를 훅하고 끄면 끝나는 간단한 1분짜리 행사 하나에 온 가족이 행복하다.
제빵사가 참 보람찬 직업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리고 내 현실이 싫다고 이야기했던 걸 취소하기로 했다. 나는 내 현실이 마음에 든다.
어떤 거짓말 여행을 떠나도 이곳보다 행복할 순 없다.
2/29 월요일
호스트바 12일 차
오후 2시쯤 아빠는 항암치료를 위해 해운대 백병원으로 향했고
나는 A대학병원과 미팅을 가지러 약속 장소로 갔다.
A대학병원과의 이야기는 법적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생략한다.
미팅을 마친 뒤 다시 백병원으로 와서 아빠 엄마와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눴다.
현재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일을 진행하는 것이 좋을지.
아빠는 첫 항암치료 때 보다는 훨씬 견딜만하다고 걱정 말라고 말하셨다.
2주 뒤에는 부산으로 돌아올 거니까 그때 보자고 이야기하고
둘이 싸우지 말라며 장난스럽게 아빠 엄마의 어깨를 툭툭 치며 슉 병원을 빠져나왔다.
병원 입구에는 분명히 입구를 나설 때 마음에 무게추를 다는 기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병원 입구를 나서서 한 발짝 내딛자 말자 마음이 무거워서 헉,하고 상체가 기울어지는 느낌이 났다.
앞으로 굽어지는 허리를 펴고 지하철을 타고 부산역으로 가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다시 여행자가 되었다. 내일부터 나는 또 호스트바의 게이다.
"나의 거짓말 여행기"는
나는 나로 태어나면 나로만 살아야 하는 걸까?
인생은 동전하나 넣고 캐릭터 하나로 끝까지 달려야 하는
원코인 게임이라는데 동전 좀 더 넣고 살면 안 되는 걸까?
만약 내가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기존의 나와 전혀 다른 나를 설명하면 나는 그렇게 인식되는 걸까?
예를 들면 내가 고위층의 자식이나 금수저라고 설명하고 그런 척을 하고 살면?
내가 만약 동성애자라고 이야기하고 살아가면?
내가 만약 소년원 출신이거나 복역하고 나온 사람이라고 설명을 하면?
라는 궁금증들로 출발하여 궁극적으로는
나라는 건축물은 타인의 눈속에 어떻게 쌓아 올려지는 걸까.
내가 겪어온 수많은 시간과 경험들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자연스러운 정체성으로?
아니면 그저 저는 이런 사람이에요 라고 말하는 말 몇 마디 혹은 문장 몇 개로?
라는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지역에서 지역이 아닌
인간에서 인간으로 떠나 보는 여행기입니다.
여기 써져 있는 모든이야기는 제가 직접 뛰어들어 겪은 실화들입니다.
만약 "나의 거짓말 여행기"를 에피소드 중간부터 읽으셨다면
프롤로그부터 차례차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