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커머스로 이룩한 '판매 최적화'
마약베개, 악어발팩, 곤약모밀. 어디서 한 번쯤은 들어봤던 제품들이다.
바디럽, 닥터원더, 소소생활.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브랜드이다.
(두 사례 모두 나의 의견일 뿐이기는 하다.)
놀랍게도 바디럽은 마약베개를 만든 브랜드, 닥터원더는 악어발팩을 만든 브랜드, 소소생활은 곤약모밀을 만든 브랜드이다. 그리고 이러한 브랜드를 만들고 있는 회사가 바로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블랭크코퍼레이션이다.
블랭크코퍼레이션(이하 블랭크)의 성장세는 실로 놀랍다. 블랭크는 2016년에 설립되어 2017년에 495억 원 매출, 2018년 1280억 원 매출, 그리고 설립 3년 만에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블랭크의 성장이 시대에 최적화된 미디어커머스 덕분 정도로 생각했다. 물론 그것도 큰 요인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블랭크는 단순히 콘텐츠를 '잘' 만들어 미디어커머스를 '잘' 구현한 스타트업이 아니었다.
블랭크는 제품을 많이 파는 것에 최적화된 스타트업이었다.
스타트업들이 흔히 하는 실수는 만들기에 집중하여 '팔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스타트업이 파는 것에 집중하는 것, 이를 위해 어떠한 계획과 실행 방안이 준비되어야 하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글로 적기도 했다. 혹시나 궁금하신 분들은 다음 글을 읽어보시길 바란다.)
https://brunch.co.kr/@seekeryang7/4
블랭크는 내가 중요하게 말하는 '팔기'를 아주 잘하는 스타트업이다. 그리고 '팔기'라는 쉬운 말로 표현하는 것이 부족할 만큼 그 프로세스는 구체적이고 전략적이다.
블랭크가 어떻게 제품을 팔고 있는지 한 번 알아보자.
1) '팔기'가 고려된 '만들기'
2) 데이터(소비자)에 기반한 팔기
3) 회사 키우기보다 제품 팔기
4) 많이 팔기
1) '팔기'가 고려된 '만들기'
제품을 만드는 데만 집중하면 판매를 효과적으로 하기 어렵다. 좋은 제품이라도 마케팅하기 어려운 제품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판매에만 집중하여도 안된다. 판매에만 집중하여 좋은 제품이 나오지 못한다면 회사는 결코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블랭크는 이 딜레마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기성 제품에 약간의 차별점(마케팅에 중요한)을 추가하여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차별점을 추가할 때 마케팅 방안이 고려된다는 점이다. 단순히 '차별점을 추가하면 좋은 제품이 되겠다'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점을 추가하면 마케팅하기 좋은 제품이 되겠다'에 더욱 집중하는 것이다. 블랭크가 만드는 마케팅하기 좋은 제품은 단순히 관심을 끌기 좋은 것만이 아니다. 기성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만족도와 사람들이 관심 가질만한 요소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드는 단계에서부터 판매가 고려되는 블랭크의 시스템은 *미디어커머스를 통해 정점을 찍는다. 블랭크의 뛰어난 콘텐츠 제작 능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제품은 소비자들의 관심을 이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소비자들의 관심은 판매로까지 이어지는데 이는 판매에 최적화되어 기획된 제품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깊게 다루지 않지만 블랭크는 소비자들이 콘텐츠를 접한 이후 보다 쉽게 판매로 넘어오게 하기 위해 2~3만 원 대의 가격 설정, 단순 가격 비교 노출을 막는 독특한 네이밍 전략 등을 취한다.)
*미디어커머스 : 쇼핑을 목적으로 플랫폼에 접근하는 고객을 유치하는 것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플랫폼에 접근한 고객을 자연스럽게 커머스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방식
이렇듯 블랭크는 제품을 만드는 과정부터 판매를 고려한 작업(가격 설정, 네이밍 등)을 한다. 이후 판매를 자극하는 여러 장치들에 더해 사전 작업들(리뷰 작업, 포털 검색 작업 등)을 한다. 완전히 계획된 전략 안에서 기획과 제작이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에 자신들의 강점(콘텐츠 제작 능력)을 더하면 매우 원활한 판매 구조가 완성된다. 그야말로 성공 방정식과 같은 판매 프로세스이다.
2) 데이터(소비자)에 기반한 팔기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트렌드나 소비자의 선호도가 반영되지만 제품을 파는 과정에서는 이것이 더욱 고도화된다. 블랭크는 페이스북을 주요 채널로 이용하는데 초기 콘텐츠(데이터) 분석을 통해 사람들이 어떤 부분에 반응하는지를 분석하고 이를 즉각적으로 반영한다. 한 번의 영상 제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여러 차례의 영상으로 고객이 가장 크게 반응하는 지점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마케팅 전략은 한 제품 내에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여러 제품 및 영상 콘텐츠에서도 소비자들의 반응을 고려하여 주력할 상품을 고르는 것이다. 판매와 만들기 과정에서 아무리 전략적인 프로세스를 구축해도 시장을 완전히 컨트롤할 수는 없다. 시장에 빠르게 반응하고 대처하는 것이 가능한 선에서의 최선인 것이다. 블랭크는 이를 통해 판매의 효율을 현실적인 극대치로 가져간다.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 소비자가 반응하는 제품을 만들고 파는 것은 사업의 정석과도 같다. 원하고 반응하는 것을 감이 아니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블랭크가 많이 팔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기도 하다.
3) 회사 키우기보다 제품 팔기
이 글의 도입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블랭크는 많은 제품뿐만 아니라 많은 브랜드(21개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하나의 브랜드 아래에서 여러 개의 제품을 내놓는 다른 기업들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블랭크는 많은 상품을 기획하며 이를 소비자들에게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것에 집중한다.
여기서의 효율은 크게는 '많은 제품'과 '빠른 제품'이라는 특성으로 설명된다. 오래 걸리는 무거운 제품에 힘주어 승부하기보다는 비교적 빠르게 기획할 수 있는 다양한 제품을 통해 승부를 보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는 시장에서 빠르게 많이 시도하는 것은 매우 효율적인 전략이다.
실제로 블랭크의 모든 제품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제품마다 소비자의 반응은 격차가 있다. 하지만 많은 제품들 속에서 하나는 적중하기 마련이다.(물론 이러한 적중률 또한 블랭크의 뛰어난 제품 기획력, 콘텐츠 제작 능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블랭크는 대부분의 기업들과 달리 브랜드보다는 제품에 집중하고, 회사보다는 브랜드에 집중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독특한 행보를 통해 얻은 긍정적인 성과는 제품을 통한 브랜드 가치 향상, 여러 브랜드 가치 향상에 따른 회사의 기업가치 상승을 일으키고 있다. 대개의 경우 제품이 잘 팔리면 회사는 잘 풀려가기 마련임을 블랭크의 행보가 보여주는 듯하다.
4) 많이 팔기
여기서의 많이 팔기는 많은 종류 팔기와 더불어 '한 제품을 많이 팔기'도 의미한다. 블랭크는 *D2C 구조를 기본으로 한다.(자사몰 이외의 채널을 통해 판매되는 제품도 있기에 완전한 D2C 구조로 보기는 어렵다.) 이는 생산 단가를 낮춰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량 생산이 불가피해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D2C(Direct to Consumer) 구조 : 제조업체가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유통 단계를 제거하고 온라인몰 등에서 소비자에게 직접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대량 생산한 제품을 팔기 위해 블랭크는 이미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IPO 준비를 시작한 스타트업에게 국내 시장은 너무 좁기에 더 많이 팔 수 있는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많이 팔기 위해서는 큰 시장(많은 사람)이 있어야 한다. 판매에 있어 이러한 단순한 논리들을 블랭크는 완벽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블랭크 칭찬 일색의 글이 되었다. 물론 블랭크도, 블랭크의 제품들도 완벽하지는 않다. 제품의 성능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소비자도 있으며 미디어커머스나 판매를 위한 사전 작업들을 교묘한 마케팅으로 보는 시선 또한 존재한다.(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랭크는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이러한 성장은 시장에게 그리고 소비자에게 선택받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이다. 그리고 블랭크가 선택받는 이유는 단연 사람들에게 '어떻게 팔 것인가'에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블랭크를 보며 다시 한번 '팔기의 중요성'과 '팔기를 잘하기 위해서 고려할 부분'에 대해 깨닫는다.
무엇을 하든 블랭크처럼 팔 수 있다면 사업이 결코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