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경 Aug 10. 2023

작고 소중한 내 귀여운 휴식

제대로 쉬는 법


비가 몹시 내리는 초저녁에 방 안에 캐모마일 향초를 켜고 내 의자에 움크려선 와인과 콘푸러스트와 두꺼운 소설책을 읽는 행복!

거기에 좋아하는 영화와 노래까지 더해진다면 그것이 내 휴식이란다.


롯데타워 안에 있는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다.

롯데타워는 2016년 12월에 준공이 되었고, 2017년 7월에 입사를 하면서 첫 입주사로 들어가게 되었다.


한 두 해까지 뒤숭숭했던 롯데타워 괴담과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 복잡한 엘리베이터.


그렇지만, 한국에서 가장 높은 랜드마크 빌딩에서 일한다는 게 가끔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은 전국에 태풍 경보가 발령되었고, 한국인은 여전히 출근을 했다.


발주 시즌이라 평소보다 더 정신 없이 업무를 보던 중에 무서운 사이렌 소리가 사무실에 울렸고, 뒤이어 화재가 감지되었으니 어서 대피하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입주 당시에 지진 등 대피 훈련은 정기적으로 실시하였기 때문에 직원들은 갑작스런 상황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정말 핸드폰과 짐만 챙겨서 비상계단으로 침착하게 이동했다.


설마 진짜일까 의심하면서도 두려운 마음에 우리 팀은 서로를 챙겨가며 분주히 계단을 내려갔고,


대피용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지나치게 많아 34층에서 1층까지 걸어 내려오게 되었다.


참고로 그 날 아침 나는 하체 운동을 했고, 태풍이 온다니 장화까지 신었기 때문에 팀원들에게 나는 틀렸다고.. 먼저 내려가라고 하고 싶었다..



화재 대피 소동은 레스토랑의 화재 경보기 오작동으로 밝혀졌고, 오전 시간은 대피 소동으로 인해 한 바탕 재빠르게 지나갔다.


오잉. 점심시간 이후에는 태풍 경보로 인해 조기 퇴근하라는 지침이 내려왔고, 대부분 직원들은 하던 일을 손에 놓고 오후 4시에 퇴근을 했다. 어리둥절한 하루다.


왠지 희한한 목요일이다. 퇴근을 하며 왠지 출출하던 터에 빵집에 들러 좋아하는 크림치즈빵 제일 큰 것 하나를 집어 집에 돌아왔다. 왠지 심심해서 냉장고에 조금 남아있던 레드와인을 꺼냈다. 왠지 행복했다. 다소 작고 귀여운 휴식이지만 참으로 소중!


한 여름 폭염으로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수 있겠지만, 정말 잠을 통 못 이룬다. 이게 나에게는 상당히 이상한 일이다. 하루를 알차게 살고 밤 11시엔 기절하는 게 내 일상인데, 자꾸만 잠에서 깨고 뒤척인다.


내 안에 어떤 걱정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게 뭔지도 잘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푹 쉬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는 것도 스트레스라 그저 바쁘게 몸을 움직이며 고민을 피하려 했다.


그래서 오늘의 이 갑작스런 휴식이 다행스럽다고 느꼈다.


화재경보와 태풍으로 맞이한 뜻밖의 휴가.


아니, 평일 오후에 참지 못하고 마셔버린 묵혀뒀던 차가운 와인 한 잔 덕분이겠지!


그래서 말인데, 길을 잃었다고 느껴질 때 뭐 애써 굳이 찾으려고 사서 스트레스 받기 보다는 그저 흘러가다보면 이렇게 우연히 ‘힌트’를 찾을 때가 오는 게 아닐까.

이전 09화 핸드폰 없이 걷지 못하는 인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