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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경 Jun 05. 2024

스물아홉의 대상포진

삶의 균형에 대하여

내가 무리하는 만큼 앞으로 전진하고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인생의 기회가 열리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열심히 한 것들 만이 끝까지 남는다고 믿는다.


작년 가을부터 크리스마스까지 딱 3개월 간, 주말 이틀과 온몸의 에너지를 쏟아 요가 자격증을 얻었다. 에너지를 쏟아 냈지만 요가로 그 이상의 에너지를 채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요가의 시작과 함께 결혼할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연애와 동시에 요가에 시간과 노력을 많이 할애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직장에서 쓰는 에너지가 덜 했기 때문이었을까.


올해 2월부터는 일이 몰려오면서 3개월이 넘게 눈앞이 핑핑 돌 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요가는 퇴근 후 녹초가 되어 학원에 갈 수 없어 혼자 아침 수련을 꾸준히 하게 되었고, 다시 아침 5km 달리기를 시작했다.


일도 사랑도 운동도 열심히 했다. 모든 것이 잘 되어가는 줄 알았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들을 누리고 있음에 주일 아침 언제나 감사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올 게 온 것일까. 지난주 큰 프로젝트의 마지막 미팅을 끝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퇴근을 했다.


하루 온종일 미팅을 하면서 현장에선 느끼지 못했던 피로함이 몰려왔고, 홀로 집으로 와서 저녁을 먹고 산책을 다녀왔다. 스트레스로 인해 약간의 과식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산책을 하고 왔음에도 갑자기 구토를 했고 먹은 대부분을 게워냈다.


몸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피곤함에 일찍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6시, 평소와 같이 아침 달리기를 하고 출근을 했고, 친한 디자이너가 평소와 달리 유난히 피곤해 보인다고 얘기해 줬다.


피곤함을 잘 느끼지 못하거나 대부분 피곤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넘겼고,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브라탑 끈이 닿는 등 부위 쪽에 두드러기 같은 것이 났길래 요즘 더워져서 땀띠가 났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이후에 대상포진 후기를 검색해 보니, 20대 대상포진 환자들은 대부분 나와 같이 두드러기, 알레르기 증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즐거운 금요일이 찾아왔다. 금요일은 약간은 편안한 마음으로 퇴근하고 남자친구와 행복한 데이트를 했다. 우리는 보통 집 데이트를 즐기기 때문에 맛있는 음식과 함께 넷플릭스를 보면서 일주일을 마무리했고, 내일 만나자는 인사와 함께 헤어졌다.


자취방에서 평소와 조금 다른 묵직한 피로에 곯아떨어졌다. 평소 오른쪽 고관절이 안 좋은 편이라 피곤하면 저릿함이 심한데, 그날 밤은 유난했다.


오른쪽 다리 전체가 아프고 저려서 잠을 설쳐 제대로 잠은 못 잤지만 거의 열두 시간을 잤다. 다음 날인 토요일은 식장 투어를 하러 가기로 해서 피곤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일어났고, 미리 알아본 식장 두 군데를 방문 상담해 보았다.


둘이서 함께할 상상에 날아갈 듯 행복한 마음이었다. 몸이 피곤하다고 느꼈지만 행복이 그걸 다 이겨낸 것 같았다. 식장 투어를 마치고 남자친구의 가장 친한 친구네 부부와 함께 식사를 했고, 하도 웃어서 광대뼈가 저릿할 정도로 신이 났었다.


새벽 1시쯤 집으로 돌아와 잠을 청하는데, 그때부터였다. 신경통이라는 걸 처음 겪어봤는데, 그 두드러기가 난 줄 알았던 등 부위가 찌르듯이 아팠다.


잠을 잘 수가 없었고 눈물이 흘렀다.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니 등 부위가 엄청나게 빨갛고 부어있었다. 단순히 알레르기인 줄 알았는데, 대상포진이었다.



남자친구가 처음부터 대상포진 아닐까 의심했지만, 아닐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맞았다 대상포진. 혼자 아픈 서글픈 마음으로 집에 있는 진통제를 먹고 그날의 약속은 모두 취소.


집에서 조용히 자고 요가하고 밥 먹고 쉬었다. 유난스레 열심히 살던 나에게 중지 명령을 당했다.


나만의 에너지 그릇이 커졌다고 생각했는데 자만이었다.


내 삶의 균형은 어디에 있는 걸까. 나를 잘 돌봄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대상포진 확진자의 일주일은 생각보다 귀한 시간이다.


그래서 당분간은 모든 걸 쉬엄쉬엄 해보려고 한다. 편안한 마음으로 숨 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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