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심과 절망 사이에 존재하는 겸손
자신의 무능력과 약함을 인정할 때, 누구나 겸손해진다. - 스피노자
어른의 나이에 가까워지며 가장 헷갈리는 감정이자 덕목으로 겸손을 꼽고 싶다. 무늬만 어른인 20대에는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유치한 자만심에 찌들곤 한다.
점차 나를 지배하던 세계에서 벗어나 나와 타인들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면서 자신의 무능력과 나약함을 직시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성숙이라는 시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알게 된다. 무엇을 할 수 없는지 깨닫게 되었을 때의 절망감은 슬프다 못해 분노의 감정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더 진지하고 성숙해지게 된다.
20대 중반에 내가 겪었던 절망이자 한계는 ‘유학’ 경험이 없어 내가 원하는 만큼의 외국계 기업의 직무를 지원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대학생일 때는 프리토킹까지 가능한 수준이었지만, 취업을 하고 나서 영어를 쓸 기회가 적은 현 직장에서 점차 영어 실력은 퇴화되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한국에서도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갓생을 살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하지만, 솔직히 말해 어렵다는 것.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꿈꾸던 해외 출장, 해외 바이어와의 미팅, 해외 생활. 그렇게 나는 절망하며 꿈을 포기하게 되었다. 내 부족함을 인정하고, 대신 내 강점을 더 잘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찾고 계획하고 행동했다. 포기를 겸손으로 포장하는 변명이 아니다. 명확히 내 한계를 인지하고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겸손하게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태도.
그것이 필요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센스 있고 빠르게 움직이는 ‘눈치’라는 능력을 잘 살려 콜라보레이션 담당 기획 MD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다. 다음 달이면 직장인으로서 꽉 채운 7년이 되는데, 7년의 시간 동안 7개의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다. 전황일 작가, 말본골프, 마세라티, LMC, 김정윤 작가, 오호스, 슬로우스테디클럽 그리고 그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
겸손한 태도로 힘든 일이라도 묵묵히 그리고 표현해야할 때는 확실히. 자만심과 절망 그 사이의 겸손이라는 어른의 덕목을 갖추긴 정말 어렵다. 나의 다음 스텝은 어디인가.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겸손을 절대 잊지 않고 살뜰한 마음으로 조화로운 30대를 시작하고 싶다. 서른이 여섯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오늘 밤에도 한 걸음 한 걸음 지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나만의 균형을 생각해 본다.
나의 예비 신랑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대학교까지 유학생활을 했다. 물론 영어는 원어민 이상이고, 아주 똑똑하다. 문득 내 안에 숨어 있던 결핍이 알게 모르게 그를 끌려했던 게 아닐까. 마음이란 참 본능적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