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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경 Oct 07. 2023

레몬그라스 향이 나는 발리에 대하여

발리는 곳곳에 영적인 에너지가 흐르는 곳

느즈막이 일어나 깡마른 온몸에 뜨거운 태양을 받으며 차가운 오렌지와 뜨거운 블랙커피를 번갈아 마시는 것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하면서 몽롱한 머릿속으로 바다와 남자친구를 떠올리는 세실은,

슬픔이여 안녕 / 프랑수아 사강


삶을 촘촘하게 살고자 매일을 열심히 살았다. 발리 여행을 떠나기 전 날까지 정신 없이 바쁨을 만끽한 채.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 온종일의 이동을 견디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과 함께여서 다행이었다. 비행 시간 틈틈히 초록색 형광펜으로 마음이 동하는 문장에 밑줄을 그어가며 혼자 여행의 여유를 즐겼다.


꾸벅꾸벅 졸면서. 나에 대해 곰곰히 생각했다. 내가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게 뭔지. 나의 현실이 어떤지. 그리고 과거의 나를 회상하면서.


자정 무렵, 덴피사르 발리 항공에 도착했다. 아, 동남아의 습한 공기.


입국 심사의 긴긴 줄을 기다려 나의 호스텔까지 픽업 해줄 현지인 드라이버를 만났다. 그의 차에 내 아이폰 블루투스를 연결해서 우붓까지 한시간 남짓 시간 동안 노래를 들으면서 이동했다. 내 유튜브 뮤직 알고리즘이 한국 올드 팝송에 머물러 있어 여행스케치의 ‘산다는 건 다 그런게 아니겠니‘가 흘러나왔다. 첫 도입부의 발랄한 시작이 레게와 닮아 발리에서 처음 만난 드라이버는 몹시 좋아했고, 나는 가사에 흠칫했다.


산다는 건 그런게 아니겠니
원하는대로만 살 수는 없지만
알 수 없는 내일이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야
두렵기는 해도 산다는 건 다 그런거야
누구도 알 수 없는 것

- 산다는 건 다 그런게 아니겠니 (여행스케치)


우붓의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해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코코넛 오일을 몸에 듬뿍 발라 마사지를 한 뒤 깊은 잠에 들었다.


지저귀는 새소리와 닭과 개의 울음소리에 잠에서 깨어 발리에 왔음을 인지했고 기쁨의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우붓의 아침은 공기는 신선하기 그지 없고, 그 빛깔은 오렌지 색이었다. 정글북에 나오는 모글리 같은 외모의 순박해 보이는 우붓 청년이 조식을 테라스까지 배달해줬다.


주황빛 아침 햇살이 비추는 테라스의 아침 식사는 몽롱했다.


발리식 현지 커피와 레몬 그라스 차는 언제나 같이 따라다니는 친구 같은 존재였고, Balinese coffee or Lemongrass tea 중에 선택해서 마실 수 있었다.

차(tea)보다는 커피에 익숙하고, 매일 커피를 마시면서 아침을 깨우는 게 일상이지만, 발리에서는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차를 더 자주 마셨다.


은은한 생강향이 나는 레몬그라스 차는 줄곧 내 기호에 속하지 않는 음료였다.


여행을 하면서 발리가 주는 따스함에 동화되어 레몬그라스 향을 애정하게 되었다. 발리의 정글이라는 우붓 곳곳을 탐험하면서 느낄 수 있는 스피리추얼한 에너지들과 어울리면서. 마음 속으로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나의 그림자(shadow)를 마주하고, 연결감(connection)을 이루는 여정을 레몬그라스향과 함께 했다.


진정한 마음의 회복을 하고 싶었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내가 모르는 곳에서 조차 그러기를 원했던 내 마음이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끔 그냥 그렇게 발리에서의 하루하루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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