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눈의 풍경
“사람이란 자기가 한 말을 스스로 믿게 되고, 또 살아가는 데는 그런 것이 필요한 것 같다.”
모모는 사람이 생각한 대로 그들의 미래가 이루어진다는 것, 어찌 보면 어린아이의 순수함, 어른들의 간절한 소망, 아니 그 누구든 간에 인간이라면 모두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막바지 겨울, 2월 눈꽃 축제가 열리는 삿포로에 다녀왔다. 서울은 날씨가 차츰 풀리면서 봄에 접어드는 날씨에 가까워질 무렵, 우리는 겨울왕국으로 향했다.
겨울 나라를 여행하는 건 처음이라 방한 부츠도 새로 장만하고 핫팩과 장갑 목도리까지 마지막까지 꼼꼼히 짐을 챙겨 설레는 마음으로 공항을 향했다.
인천공항에 차를 타고 가는 건 처음이었다.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새벽 드라이브는 졸린 와중에도 낭만이 흘렀다.
예약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출동.
새벽 인천공항의 공기는 그 색깔이 참 예쁘다. 체크인을 마치고 출국장에 들어와 스타벅스 샌드위치를 먹기로 했다.
설렘과 걱정으로 긴장되는 공항행은 평소보다 배가 고프다. 눈앞에 보이는 던킨 도너츠를 지나칠 수 없었고, 샌드위치를 먹자마자 도넛을 사러 줄을 섰다.
무슨 맛을 고를까 질문을 하지만 답은 정해져 있다고. 내가 먹고 싶은 걸 골라주는 남자친구가 참 상냥하다.
커피와 함께 당 충전까지 완료하고 빠짐없이 기다리고 있는 비행기 이륙 지연 시간을 지나 삿포로로 향했다.
2월의 삿포로는 서울의 한겨울 날씨와 같다. 영하 10도에 바람까지 세차게 분다.
그렇지만 사랑이다. 나뭇가지에 거대한 눈사람이 걸린 듯한 설산의 풍경과 지붕마다 이불이 깔린 듯 소복이 쌓여 있는 새하얀 눈을 바라보자면 눈망울이 초롱초롱 해진다.
삿포로 신치토세 공항은 국제선에서 국내선까지 십여분 정도 이동하게 되는데, 국내선 쪽에 있는 온갖 먹을거리와 기념품 구경에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진하고 꾸덕한 소프트콘을 들고 가는 이들을 향해 부러운 눈길을 보낸다.
햇빛에 반사된 눈이 부신 설국의 풍경에 마음은 녹아내리고,
늦은 점심으로 무얼 먹을까 사뭇 심각한 고민에 빠진 열차 안이었다.
고속 열차는 금세 우리는 삿포로 시내에 내려주었고, 북쪽 개찰구를 찾아 호텔을 향해 걸었다.
배도 고프고 캐리어는 무겁고 찬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지만 이 모습만큼 사랑스러운 여행객다운 장면이 없다.
호텔 객실 안에 캐리어만 얼른 넣어두고 우동을 먹으러 향했다. 일본의 우동은 그 면발이 한국에서는 잘 먹어볼 수 없는 식감이고, 안에 들어가는 튀김 가루는 느끼하지 않고 바삭하면서 고소해 한 그릇을 모두 비우는 건 당연한 일이다.
뜨거운 우동으로 내장을 든든히 채우고 쇼핑을 향한다.
삿포로에서 다녀올 만한 Shop들이 꽤나 많다. 특히, South 2 West8은 Needles와 Engineered Garments의 NEPENTHES의 1970년대 이전 아웃도어를 연상시키는 브랜드인데, 브랜드 이름은 삿포로 플래그쉽 스토어의 주소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겨울의 도시답게 사람들의 방한 스타일링이 볼 만 한데, 한국에도 최근 눈이 많이 오고 추위가 점점 더 매서워지면서 삿포로의 겨울 상품들을 참고해 보기 좋았다. 다양한 컬러와 소재감의 다운 패딩 제품들이나 방한 팬츠와 용품들 그리고 스키 무드의 스타일이 한국 그리고 상대적으로 따듯한 도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씬들이었다.
부피가 부담되겠지만 삿포로에 와서 패딩 하나 장만해 가는 게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평소 관심 있던 일본 브랜드에서 못 보던 컬러에 딱 내 사이즈 옷을 발견해 흥분한 나를 보고 남자친구가 흔쾌히 선물을 해준 덕분일까. 더욱 힘을 내서 쇼핑을 다녔다. 이제는 밖이 어두컴컴해져 눈꽃축제 거리를 구경하러 나가보려 했지만 밖은 영하 10도에 바람까지 매섭게 불어 숙소로 돌아가는 길마저도 걱정스럽게 했다. 눈꽃 축제를 보러 온 여행이기도 했지만 따듯한 쇼핑몰이 오히려 좋았다.
그래도 힘을 내서 나가보자며 손 꼭 잡고 광장으로 향했다. 눈으로 만든 조각상들과 끝이 없는 눈사람의 행렬. 길거리에 파는 찐 감자, 각종 야키토리, 타코야끼,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핫초코. 겨울을 온몸으로 느꼈다.
많이 추웠을 텐데도 정성스레 예쁜 사진을 많이 남겨준 남자친구에게 애틋해졌다.
삿포로에 오면 먹어야 할 음식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수프카레’인데, 너무 추웠던 우리는 맛있는 가게를 찾아가 기다리는 것보다 일단 먹고 들어가서 쉬자는 생각으로 숙소 가장 근처의 수프카레집을 향했다. 그래도 레스토랑을 기대했지만 구글맵이 안내해 준 곳은 쇼핑몰 안쪽에 있는 푸드코트였다. 그토록 기대하던 삿포로의 첫날 저녁을 푸드코트에서 먹게 되다니 슬픈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고, 그래 한번 먹어보자는 생각으로 주문을 했다.
슬프게도 그마저도 주문이 잘못 들어간 건지 잘못 시킨 건지 내가 잘 못 먹는 해산물 카레와 둘 다 입에도 못 대는 대창 카레가 나와버려 또 한 번 쓴웃음을 짓고는 하는 수 없이 억지로 저녁을 먹었다. 나는 그래도 카레 수프는 조금 먹었지만 남자친구는 맨밥만 먹는 모습에 ‘그래 이게 여행이었지’라는 생각이 들어 슬프지만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