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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경 Jul 02. 2024

결혼을 시작하는 연인의 자세

낭만과 계산 사이

현명한 사람은 우리가 씨름하는 상대인 모호함과 모순을 헤치고 항해에 나갈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준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그냥 좋다. 기쁘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감정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려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에 빠진 사람의 욕망 아닌가.


결혼을 꿈꾸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결혼이라는 형식을 통하지 않으면 애인과 함께하는 삶은 항상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결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의 결정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복잡한 사회절차가 결혼 제도 아닌가. 당연히 부모나 친구들에게 결혼의 의지를 피력해야 한다. 곧 친구들에게 자신의 애인을 소개하고, 양가 부모님들과 상견례를 가질 수밖에 없다.


현재의 이 충만한 감정과 더 행복해 보이는 미래에 대한 낙관. 우리 인생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잠들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서 잠에서 깨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화려하게 절정에 이르렀다가 언젠가 지게 되는 꽃처럼, 사랑이란 감정도 그렇게 지는 순간이 올 것이라 해도. 분명 감정은 영원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찰나적이고 순간적인 것만은 아니다. 감정은 지속적인 것이다. 오늘 내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내일이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슬픔을 주는 경우는 없으니까. 감정은 우리 삶의 속도만큼이나 충분히 지속적이다. 그러니 오늘도 감정의 색채를 믿고 따른다.


그것만이 현재에서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주변의 평가에서 자유롭고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의 감정을 따르는 것. 나를 사랑하고 감정에 능통하기에 두 사람은 서로의 동반자가 되려 결심한다.


결혼식장을 계약하러 간다. 예식까지 일 년 남짓의 시간이 남았다. 날이 갈수록 현명함에 목이 마르다.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은 정보들이 흘러넘쳐서 그 안에서 나의 취향과 내 모습을 꼿꼿이 중심을 지키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나 혼자만 윤택하게 살아가는 삶보다 두 사람이 또 그들 주변과 함께 더 행복하게 살아가기로 합심하여 돈이라는 물질적인 계산에 밝을 필요가 있다. 낭만에 치우치다가 두 사람의 안전한 공간에 위협이 다가올 테니 지금부터 정신 똑바로 차리고 셈과 우리의 중심 사이에 현명해지기로 애쓴다.


결혼 준비의 첫 단계로 결혼식장을 계약하게 된다. 그 결혼식장은 우리만의 낭만을 펼치는 곳은 아니다. 우리 둘 함께 행복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와서 축하해 주세요 라는 경건하고 소중한 마음이 담겨야 하기에 그 선택이 결코 쉽지 않다. 힘든 과정은 그 속에서 나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기도 한다. 나와 우리만을 생각하는 사람이기보다 모두를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려고 부단히 애쓴다.


모든 선택에는 상실이 뒤따르는데, 즉 이것을 선택하면 저것을 잃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대립되는 것을 조정하는 데 인생에 많은 시간을 쓴다. 어떤 것에 애착을 느끼고 얽매이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자유롭기를 바라는 게 인간의 마음이니깐.


끝도 없는 선택지 사이에서 세월을 아끼고 싶었다. 4번째에 방문한 예식장이 생각했던 예산 대비 비쌌지만, 그 비용으로 인해 우리의 결혼식에 오는 사람들이 좀 더 즐겁고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예뻤다. 큰돈이 오가는 결정이다 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이 바뀌곤 했다. 나의 다중적인 모습에 예비신랑은 다소 혼란스러워하고, 서로 생각의 틈을 가지며 최종 선택에 이르렀다. 이런 선택에서도 나와 예비신랑이 달라서 좋은 점이 있는데, 나는 많은 경우의 수를 놓고 장단점을 비교하며 끊임없이 질문하고 검색을 하고 가까운 이들의 의견을 구하는 반면, 예비신랑은 단순하다. 결정을 내림에 있어서도 단호하고,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둘 다 똑같이 결과는 잘 흘러간다.


무수한 선택의 기로들 앞에 선 두 사람이 넘어지지 않고, 손잡고 잘 걸어가기 위해서는 조그마한 낭만과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한다. 지나친 계산보다는 우리에게 어울리는 곳에서 멈춰 설 수 있는 현명함이 요구된다. 사이좋게 함께 손잡고 걸어갈 옆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필수다.


겨우 첫 단계를 완료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은 결혼식에 대한 게 아니라, 우리의 인생을 말하는 것이니까. 함께 걸어갈 사람이 생겨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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