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의 일기

고속도로 위 졸음이 왔다. 체력이 떨어진 것일 수도 있으나, 헐리우드 48시간을 음용하고 명현현상이 오는 것 같기도 했다. 여기에 센터로 오라는 어젯밤의 센터장님의 카톡이 두통을 유발했다. 과격한 방향으로 사고가 흐르지 않도록 유투브에서 명상음악을 틀었다. 졸음이 더욱 심해졌다.


행주에 전화를 넣었다.


졸음이 올때는 친정엄마가 말벗이 되어 졸음이 달아나도록 나의 투정을 받아주곤 하셨었다.

그런데, 아빠 바꿔줄게라며 아빠와 전화를 연결해주는게 아닌가. 나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즐기지 않는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오늘은 비교적 부드럽게 이야기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번에 네가 엄마와 대화하는 것을 옆에서 들어보니'라고 시작하여 '운동도 하고, 인간관계도 잘 하고, 학교생활도 잘 하라.'는 아버지로서 하고 싶은 말씀을 하시는 것에 결국 화가 났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때 아빠가 IMF로 실직하셔서, 온전한 도시락을 열어본 적이 없었다. 젓가락이 없거나, 숟가락이 없거나, 밥이 없거나 뭐가 꼭 빠져 있었다. 마치 얼이 빠진 엄마의 정신처럼. 나의 고등학교 때 성적은 1학년이후로 쭈욱 하강곡선을 그었고, 장렬하게 서울대학교 간호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딱히 하고 싶은게 없기도 했지만, 스탠포드로 유학 간 남자친구를 따라서 유학을 못갈 실력도 아니었다.


의사 부모 밑에 의사나고, 판검사 부모 밑에 판검사 나는 것은 아니지만.


교수 꿈인 아버지 밑에서 교수가 되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것은 마흔이 넘도록 이골이 나있으며, 간호사를 할 때나 대학원 생활을 할 때나 불의를 참고, 내면에 피어오르는 본질적인 혹은 철학적인 질문에 대해서 뭍어두고 사는 것에도 나름 익숙하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로부터 '왜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인지 피곤하게 따지지 말고,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는 인간관계의 비법을 전해듣고 있자니, 작년까지 이웃간의 불화로 법학대학을 졸업하여 변호사가 된 동창에게 전화를 하여 우리 아버지가 휘말리게 된 사건에 대한 조언을 구해야 했던 불명예스러웠던 기억마저 떠올랐다.


"아빠, 아빠가 말한대로 하면 호구되기 십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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