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내려온 썩은 동아줄

feat. 배달음식

박사 학위를 준비할 때 물심양면 힘을 보태준 남편이 아니었더라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몇 번의 큰 고비가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가장 큰 고비는 논문자료수집을 위해 가가호호 가정방문을 할 때 남편이 운전을 해준 것이다. 혼자 다닐 때 길눈이 어두운 내가 운전에 에너지를 쏟고 주차 문제까지 해결하려 했다면 어려움이 훨씬 컸을 텐데, 당시 직장인이었던 남편은 주말을 이용해 기꺼이 내 운전기사가 되어주었다. 한 번은 사소한 말다툼이 자존심 싸움으로 번져 남의 집 지하 주차장에서 “박사 학위 과정을 포기하겠다”며 남편에게 떼를 쓰며 펑펑 울고, 부은 눈으로 가정을 방문한 적도 있었다. 운전을 해주던 남편도 주말도 없이 논문 압박을 느껴야 했던 나도 참 딱한 처지였었다. 게다가 코로나 현황에 따라 가정방문을 신청했다가 취소요청을 하는 가정들도 많아서 최대한 많은 가정방문을 해도 분석 결과에 따라 논문 결과의 타당도나 신뢰도가 충분치 않아 논문심사에서 통과를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다 보니 방문을 취소하는 가정이 늘어날까 하루하루 속이 타들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외식 대안으로 폭풍적 인기를 얻은 것이 배달음식이다. 만약 내가 전업주부였다면 높은 배달비용이나 아이의 건강을 생각해서 직접 요리를 했겠지만, 나는 늘 지쳐있었다. 남편은 지친 나를 위해서 함께 먹는 끼니는 거의 배달음식으로 때웠다. 유명한 한정식 집을 포함하여 배달이 안 되는 음식이 없을 정도로 코로나 덕에 배달음식 시장이 커져갔지만, 아쉽게도 싱싱한 야채나 채소가 들어가거나, 조리법이 복잡한 음식은 배달메뉴에서 찾기 어려웠다. 짜장면과 탕수육, 구운 치킨과 튀긴 치킨, 베트남 쌀국수, 즉석떡볶이와 튀김을 돌아가면서 시켜 먹었다. 뜨신 밥과 국물을 좋아하는 어른 입맛의 우리 아이는 말라갔고, 나와 남편의 배 둘레는 늘어나고 있었다.

취직 후 내 입장에서 직주근접을 위해, 남편은 출퇴근을 위해 왕복 3시간이 소요되는 거리의 집을 구했다. 토요일인 오늘 남편이 몸져누웠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다녀와서 주말에 학교일정(남편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교수직으로 직업을 바꾸게 되었다.)으로 학생들 체육대회에 격려차 참여하고, 금요일인 어제 연구회의 후 술자리까지 참석했다가 배탈과 몸살이 났다. 아침에는 전날 저녁 구워놓은 양념소불고기와 된장찌개를 먹고, 배가 아프다고 호소해서 점심때는 죽을 시켰다. 그런데, 배달 온 호박죽이 설탕을 잘못 들이부은 것처럼 달고, 낙지김치죽은 귀에서 불이 날 것 같이 매웠다.

머리도 감지 않은 채 그 길로 차열쇠와 지갑을 챙겨 마트를 향했다. 이사 온 지 일 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나를 위해서 먼 거리로 출퇴근하고,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많은 일정을 소화했던 남편이 측은했다. 이사하고 나의 출퇴근시간이 줄면, 아이도 내가 더 많이 케어하고 집안일도 더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우선 나의 체력이 달렸고, 아이가 크면서 훈육도 만만치 않았다.

지난 금요일 급여날이었다. 다행히 통장 잔고가 넉넉해서 한 달 중 가장 여유로운 마음과 당당한 자세로 마트에 입성했다. 하지만, 오이 3개에 4,000원, 파프리카 3개에 4,000원이라니 당근은 3개에 7,000원인데 당근을 몇 번이고 집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포도 한 박스에 15,000원, 내가 좋아하는 복숭아 하는 한 박스에 21,000원이다. 포도와 복숭아 중에 아이가 좋아하는 포도로 결정했다. 남편과 아이가 수박을 좋아하는데 30,000원 높은 가격에 패스했다. 그래도 총계 16만 원이 넘다 보니, 마트에 한 번 갈 때도 예산에 맞게 소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계 1마리, 육수를 내는 부재료, 전복 2개와 낙지를 손질하여 해신탕을 만들었다. 내일 아침을 위해 갈비에 핏물을 빼고 강불로 1시간여, 약불로 1시간여 끓여두었다. 양념 LA갈비, 채소가 있어서 마음이 든든하다. 그런데 오늘 하루로 보면 음식 해 먹고, 그릇 치우고 설거지하고, 돌아서서 장 봐오고, 해 먹고, 그릇 치우고 설거지하고의 반복이다. 전업주부라면 당연한 일상이겠지만, 워킹맘으로서는 보통 큰마음을 먹지 않으면 이렇게 못한다. 남편은 아이 같이 좋아한다.

“당신이 이렇게 해주어서 다 낳을 것 같아. 빨리 낳은 것 같아.”

립 서비스가 듣기 좋다.

하지만 집이 깨끗하면 주인은 글을 쓰지 않는다던 말이 떠올랐다. 글을 쓰는 사람의 집은 어지러울 수밖에 없다. 한창 성장해야 할 초등학교 아들과 나를 위해 서울 집을 포기하고 나의 학교 근처까지 와준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을 오늘은 따신 밥과 국으로 그리고 내일부터는 열심히 내 행복을 위해 나의 꿈을 찾는 여정으로 보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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