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나, 그렇게 마른 사람이 이렇게 찔 수도 있어요!?

고등동창이 청첩장을 보내왔다. 삼십 년 세월을 함께 한 친구라 잘 보이고 말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전화를 했다.

“어휴, 애란아, 나 살이 안 빠져서 고민이다. 어떻게 해야 살이 빠질까, 뭘 해도 소용이 없네.”

결혼날을 잡아 놓은 애란이도 살이 쪄서 예비 신랑이 뭐라 한다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말을 한다. 계집아이, 지난번 만났을 때 때 다이어트 정말 성공해서 딱 붙는 원피스 입고 왔으면서...


은근히 결혼식에서 탱탱 부은 나를 보고 놀라지 말아 달라고 복선을 깔아놓는다. 그래도 걱정이 된다. 결국은 에라 모르겠다 눈 딱 감고 결혼식에 갈 테지만, 남들 눈에 내가 얼마나 커 보일지 속으로 나를 들들 볶는다.

오래 전의 나를 알던 사람들은 44, 55 사이즈를 멋지게 소화해 냈던 나와 77도 거북한 내가 동일인이라는 것에서 혼란을 느끼는 것 같다. 오랫 만에 대학로 의료관리학교실에 강의가 있어 모교에 가서 우연히 은사님과 맞닥뜨렸는데, 눈을 크게 뜨고, ‘어머나, 그렇게 마른 사람이 이렇게 찔 수도 있어요!?’라며 웃으셨다. 언제고 한 번 연구팀 교수님께서는 어깨를 툭 치며, “이런 말 잘 안 하는데, 좀 쪘다!~”라며 웃으셨다.

후배 중에 둘째를 낳고 체중이 많이 증가한 친구가 있다. 오랜만에 보니 살이 많이 쪄서 속으로 조금 놀랬다. 그런데 곧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 친구가 육아를 하는 과정에서 뭔가 많이 힘든 사정이 있는가 보다 싶었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의 굴곡을 경험한다. 여성의 입장에서 출산을 하면 적어도 3년은 원래의 몸으로 돌아오기 위해 애를 써야 하고 그만큼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다만, 친정이나 시댁에서 여력이 되어 갓 출산 한 엄마가 기대어 쉴 수 있도록 금전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지지를 해줄 수 있다면 그것은 굉장히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대부부의 워킹맘들은 위와 같은 감사한 상황에서 조차 내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예를 들면 마사지, 여행, 영화관람, 공연 감상 등의 여가활동을 위해 양가 부모님께 아이를 부탁하는 것에 대해 탐탁지 않게 생각하신다. 거짓말을 한 채 문화생활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부모님께서 손자손녀를 돌보는 일에 시간을 할애하시는 것만큼 금전적으로 보장을 드려야 하거나, 암묵적으로 지키기로 하는 룰들에 대해서는 수용을 해야 한다. 만약 아이를 돌봐주시는 방법이 내 철학과 갈등이 되거나, 주방에서 내 스타일이 아닌 일들이 벌어지면 눈을 질끈 감는 것이 상책이다.

이번 추석 연휴에는 어르신들에게 말씀드리지 않고 살짝 3박 5일 괌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작년에 몰디브를 3주나 다녀왔는데 또 휴양지로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 죄송스럽기도 하고, 우리 형편에도 넘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휴양지 룩을 살피다 보니 가슴이 설레는 것이 아닌가!! 살을 빼야겠다는 당위와 욕구가 샘솟았다. 살이 찔 때 하루에 일이 킬로씩 늘기도 했으니, 악착같이 빼면 뺄 수도 있지 않을까 소망해 본다. 사실 글을 쓰기 시작한 날로부터 수일이 지나도록 64.2~65.5kg에서 저울 바늘이 머무르며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시중에 판매하는 변비약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먹기도 했다. 유튜브의 자기 계발 영상에서 백번 쓰기를 하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하여 체중을 감량하는 목표를 쓰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폭식을 할 때 혈당이 높아지는 느낌에 중독이 된 듯하다. 무언가 단 것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허겁지겁 허한 마음과 몸을 채우고 싶은 욕구에 자제력을 잃는다. 그 한 입이 말썽이다. 최초의 한 입...

그 어렵다는 박사도 했고, 그 어렵다는 취업 관문도 통과했는데, 왜 나의 마음은 단 것 앞에서 항상 무너지는 것일까.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서울 강남의 수십억씩 하는 아파트 한 채는 내 명의로 되어 있어야 할 것 같고, 탈 때마다 가슴 설레는 차도 있어야 할 것 같다. 지금의 급여로는 턱도 없이 모자란 꿈의 비용에 숨이 턱턱 막힌다.

언젠가 남편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우리가 노후를 걱정 없이 보내려면 얼마가 필요할까?”

ISTJ인 남편의 대답은 “사학연금 받는데 맞춰서 살아야지, 필요한 건 끝도 없지.”

맞다. 나는 왜 그런 식으로 생각을 못해봤을까?

참고로 나는 INFP이다.

빼빼했던 시절, 나는 먹는 데에 별 관심이 없었다. 먹다 보면 금방 배가 찼고, 단 걸 먹어도 살이 찌찌 않을 만큼 활동량이 많았다. 하지만, 생의 전반부 레이스가 끝나고 후반부 레이스가 시작되는 지금 나는 이정표를 잃은 듯하다. 내가 강남의 아파트를 소유해야 하는지, 아이를 SKY에 보내야 하는 건지, 주차하고 내릴 때 어깨에 힘 빡 들어가는 차량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지금껏 인생이 언제 나의 예측대로 착착 들어맞은 적 있지도 않았는데, 오지 않은 미래를 통제하지 못해 조바심 내는 내가 측은하다.

먹으면서도 다음에 무얼 먹을까 고민하고, 배가 불러도 눈앞에 음식이 주어지면 과식을 하는 나에게 “괜찮다.”라고 한 번 꼭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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