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 영끌
2020년도 매일 코로나 환자수는 시뻘겋게 치솟고
서울집값도 시뻘겋게 치솟고 있었다.
박사마치며
취업하면 지금보다 나은형편에서
은행대출이자 갚을 수 있지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부여잡고
서울에 집한칸 장만했다.
처음으로 내 집장만할 땐
번지점프 안 해봤지만
눈 가리고 번지점프하는 느낌이었고
우리가 거래한 가격이 최고가였음을 알았을 땐
눈앞이 캄캄했고
일 년도 안되어 몇 천, 몇 억 단위로 집값이 오르자
아득해졌다. 그때 그렇게 무리해서 집을 안 샀더라면 지금 우린 어떤 모습일까 싶어서.
나는 마흔이 넘도록 가방끈만 긴 박사생이었고
우리 시어른들과 친정부모님은 긴 세월 손주 키워주시고 응원해 주신 양반들이시다.
연구원으로 수입도 변변치 않았던 나 잘한다 잘할 수 있다 늘 기세워 주던 우리 남편
큰 이벤트 없이 자라준 우리 아이,
신께 감사하고
가족들에게 감사했다.
그래도 가끔씩 하루, 한 주, 한 달의 시작이 버거울 때면 한강을 걸었다.
그리고 하늘을 봤다.
헛살은 게 아니라고 열심히 잘하고 있는 거라고 힘을 내곤 했다.
아파트는 우리 가족의 꿈이고 희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