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빚내서 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샤네르 Oct 06. 2023

그래도 설레임

ready~action!~

수업준비가 미진하다. 학생들로부터의 평가가 걱정된다. 올해는 논문을 적어도 2편은 게재해야 한다. 교수 업적평가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짐을 꾸리기가 귀찮다. 처녀 적에는 작은 가방하나 들고 참 잘도 다녔는데, 지금은 3박 5일 여행에 가족 캐리어만도 대, 중, 소 3개에 이고 지고 간다.       

그래도 남편이 설레어하는 모습을 보니 잘했다 싶고, 

아이에게도 진한 추억을 만들어주겠구나 미리 뿌듯하고,

내 마음도 둥실둥실 기대감으로 설레기 시작했다.      

우리 남편은 미국에서 건축사 사무실에 취직하여 4년간 일하면서 미국 건축사 자격증에 도전하였는데, 시아버님이 급작스럽게 편찮으셔서 일부 과목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귀국하게 되었다. 아버님 수술은 비교적 잘 돼서 회복이 빠르신 편이었고, 남편은 겸사 결혼할 여성을 물색하였다. 그 와중에 우리 외사촌 오빠가 하루 휴가를 내어 남편이 다니던 안국동 H사에 점심을 같이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남편과 나의 만남이 성사된 지 7개월 만에 결혼에 골인했으니, 외사촌 오빠에 대한 신뢰가 결혼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그런데, 남편은 결혼날을 잡고 임박하여 건축사 시험을 치렀는데, 미국 본토까지 가지 않고 ‘괌’에서 치르는 방법을 택하였다. 그 후로도 한국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하여 꽤 오랜 시간 우리 부부가 주말, 연휴 없이 지냈었는데, 돌이켜보면 작은 일에도 날을 세워가며 싸웠던 것들이 짧은 연애기간으로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였겠지만, 시험에 붙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기 때문일 것 같다.      

지금은 미국건축사 자격증도 한국건축사 자격증도 갖춘 남편에게 고맙다. 그리고, 미래에 아빠와 같은 건축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하는 아들에게도 고맙다.      

바리바리 일감을 싸갈 생각인데, 그래도 즐겁게 다녀올 수 있을 것만 같다. 

여행경비 정산하면서 올 상반기를 돌아보고 하반기에 대한 방향을 잡아야 할 텐데,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이가 들며 늘 긴박했던 마음 안에서도 아주 조금씩 여유를 찾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 삶의 묘미인 것 같다. 결혼 전 전장을 향하듯 괌을 향했을 남편이 아내와 아이와 함께 가족을 이루어 휴양을 위해 같은 비행기에 오르다니, 남편뿐 아니라 같이 고생했던 나까지 감격스럽다. 인생은 정말 한 번 살아볼 만한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사람들을 응원하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