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소망기도와 백번 쓰기
과학고등학교 시험을 보고 난생처음
하나님께 매달렸다.
곧 시험 결과는 나오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노트를 펴고 적어 내려 가기 시작했다. 약간은 반성문 같기도 하고, 앞으로의 다짐도 같은 글들이 튀어나왔다. 결과는 좋지 않았으나, 시험결과를 기다리는 초조함을 떨치기에는 기도만 한 것이 없었다.
나는 불안이 높은 사람이다.
분명치는 않으나 오랜동안 약물을 복용하고 있어서 부작용으로 떨림도 있고, 문득문득 감추고 있는 나의 이 사실을 상대방에게 간파당하면 내가 갈 곳이 없다는 불안함이 밀려와 심리적으로 시작된 떨림이 육체로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
최근에 지인의 자녀가 명문고등학교에 입학시험을 치르고 낙방하는 과정에서 공황발작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약물치료를 한다고 비탄에 잠겨 호소하였다. 지인은 그런 학교에 입학하려면 고액과외라도 받게 해야 했었는데 너무 무지했다며 후회하고 있었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정말 남의 일이 아니었다.
발병하였을 때 나는 영어로 대상자 인터뷰를 하여 녹취를 분석하고 논문 발표를 준비 중이었고, 일을 하면서 공부를 병행하고 있었으며, 미혼이었기 때문에 결혼에 대한 준비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숨이 턱 차오를 만큼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일인데, 완벽주의가 있는 나는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여 놓치고 싶지 않았다.
삶의 한가운데서 청천벽력처럼 병을 얻게 된 나에 대해 자아연민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유년기, 젊은 시절은 어느 정도 반짝반짝 빛나는 추억으로 가득 채울 수 있었다는 안도감도 있기는 하다. 다만, 우리 아이가 유년기에 혹은 청소년기에 삶의 위기를 맞는다면 그 아이의 창창한 앞날이 얼마나 위태로울까 미리 사서 걱정이 될 때가 있다.
백번 쓰기를 할 때 부정적인 내용으로 쓰지 말라고 하는데, 우리 세 가족의 건강을 염원하는 백번 쓰기의 시작은 높은 이상을 추구하되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자존감을 높이는 데 근간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와 잘 싸울 수 있게 섭생을 잘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매달려 볼 참이다. 끈덕지게 하나님을 귀찮게 해 드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