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헤어져
지극한 T 남편에게 맞추어 살다 보니, 원래의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끊임없이 페달을 밟지 않으면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당신의 존재가 버겁고 내 안에서 부대낀다고,
한 번 이리 와서 앉아 내 얘기를 좀 들어달라고 말할 용기가 없다.
짓이겨지는 자존심에
튕겨져 나오는 말
"이혼해"
이혼할 수 있을까?
아이를 임신했는데 피가 비쳐 오밤중에 잡아탄 병원행 택시 안에서 괜찮을 거라며 나를 꼭 안아주었던
동생과 심하게 다투고 집에 돌아와 어린아이처럼 내 품에 안기어 엉엉 울던
마치 새끼 원숭이를 안아주는 어미 원숭이처럼 아이를 품에 끌어안고 양치를 도맡아 하던
그와...
손가락이 부어서
뺸 결혼반지 자국이 살짝 파여있다.
처음 그와 맞추어 살기 위해 서로 목숨 걸다시피 하고 싸울 때가 있었다.
젊은 에너지 넘쳐 말 한마디에도 서로 생채기를 내며 싸우던 시절이 지나고
평온하고 안정된 세월이 찾아왔는데,
다시금 그에게서
예전의 그 모습이 떠오른다.
말을 듣는 사람의 감정 따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의견은 틀림이 없다는 오만한 말투.
싫다.
그를 구성하는 그의 사고방식이 싫다.
동전의 양면이라고 하지 않던가.
내가 사랑하는 것의 이면에 내가 혐오하는 것이 수반된다는 역설.
처음부터 확신과 자신에 찬 태도가 좋았고,
사실에 근거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현실적인 면에 반했다.
나에게는 없는 면모이기에 더욱 끌렸을 것이다.
생각은 돌아 돌아 원점에 이른다.
그에게 잠식당하여 나를 잃을 것 같은 두려움 반,
그를 잃고 모든 것이 엉망이 될 것 같은 두려움 반.
결국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내 마음이 바뀌거나 그의 성격이 바뀌어서가 아니다.
페달을 계속해서 밟지 않으면 넘어져 나뒹굴 자전거가 선명하게 그려지기 때문에다.
조금씩 변형되어
원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을지라도
이해한 듯 산 세월 끝에
서로 전혀 다른 차원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허무할지라도
내가 맨날 더 양보하는 것 같아 약이 올라도
10, 20, 30년 후에도
또 그의 천박한 말에 꼭지가 돌겠지만
그래도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사랑을 나누고,
풍성한 관계를 가꾸며
조금 늦더라도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함께 삶의 의미를 확장해 나가기로
이미 오래전에 한 결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