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enaa Nov 10. 2023

껍데기 집에서 부모님을 앞에 두고 울었다.

작정





오만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코이카에 서류를 넣을 때 무조건 합격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스스로 자만해서가 아니라 '간호사'라는 직종이 항상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걱정이었던 부분은  면접일이 근무일이었는데, 아직 병동에는 코이카에 서류를 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양해를 구할 수가 없었다.




'될 대로 되라지.'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일단 서류 결과 나오고 면접일정을 확인해 보자는 마음이었다. 서류를 넣고 일주일 뒤에 면접 대상자 명단이 나왔고 예상한 대로 근무일에 면접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코이카에 당일 출근일이라서 면접 참석이 어려울 것 같은데 방법이 없는지 문의를 해봤다. 그랬더니 참작이 돼서 면접 당일날 화상으로 면접이 진행되었다.



면접을 보면서도 무조건 합격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는 부모님에게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았다.


엄마에게 전화를 드려 대략적 현재 상황과 생각을 말씀드렸다.


엄마는 매우 당황한 눈치였다.


일단 아직 면접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니 결과를 기다려본다는 입장이셨다.



하지만 그마저도 얼마 못 가고 결국 토요일에 자취방 앞까지 찾아오셨다.



엄마가 고깃집으로 가자고 해서 최근에 병동 동기랑 갔던 껍데기 집으로 엄마, 아빠를 데려갔다. 껍데기를 눈앞에 두고 기다긴 대화가 시작됐다.




내 입장은 매우 간략했다.



엄마, 아빠는 다 알고 계셨다.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코이카 바로 들어가려고 준비했던 것도 알고 계셨고, 중학교 때부터 계속 NGO에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알고 계셨다.


병원에 들어간 이유도 NGO를 가기 위해 경력을 쌓은 것임을 알고 계셨다.


이젠 필요한 경력을 쌓았고, 밖으로 나가겠다는 것이 내 입장이었다.


그러나 엄마, 아빠 입장에서는 전혀 간략한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일단 내가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이라서 가는 것이라고 설명을 드렸다.


그리고 병원 출근에 대한 고통에 대해서도 설명드렸다.



부모님은 전혀 모르는 사실이었다.



워낙 이런 일을 사소하게 다 말하지도 않고 통화도 일주일에 한 번 할까 말까 하는 천하의 불효녀였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말을 하면서 많이 울었다.

토요일 저녁 화기애애한 껍데기 식당에서 내 테이블은 흐느낌뿐이었다.



어딜 가든 무던하게 사람들과 잘 지내는 자신의 딸이 괴롭다고 하니 놀란 눈치셨다.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다가 아빠가 조용히 "부서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건 안 되겠니?"라고 물으셨다.



나는 이미 마음을 정했다.





"부서를 옮기는 게 문제가 아니야. 병원이 답답해서 못살겠어. 아빠."



아빠는 별 다른 말씀을 더 하지 않으셨다.



"그럼 결혼은 어떡하고?"



엄마가 흔들리는 눈동자를 가지고 '진짜 애가 왜 이러냐'는 식으로 물었다.


"아니 내가 지금 결혼할 남자가 있어?"


나는 단호했다.


"내년에 생길 수도 있는데 이렇게 가버리면..."


"아니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는 결혼할 남자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게 이게 무슨 말이에요."


"그렇다고 이렇게 가버리면 결혼은 어떡하냐고 다 적정 시기라는 게 있는 건데"


"엄마 내가 올해 소개팅 몇 번 한 줄 알아?"



나도 적정시기라는 것을 지켜보려고 노력을 나름 했었다. 병원을 다니면서 한 달에 보통 두 번씩은 소개팅을 했다.


그러나 인연이 된 사람은 없었다.



"아니 소개팅을 여러 번 한다고 해서 인연을 만나는 게 아닌 것 같아. 올해 나름 노력해 봤고 결혼이고 나발이고 나는 떠날 거야."




대화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엄마, 아빠는 내가 아프리카 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고, 나는 괴로워하는 엄마, 아빠를 설득시킬 자신이 없었다. 그냥 또 불효녀처럼 내 할 말만 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고 동기들과 점심 식사를 했다.


동기 한 명은 바로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그 친구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나는 병원 정문 앞에서 발을 돌린 상황이었다.



습관적으로 핸드폰으로 이메일을 확인했다.



'면접 합격'




이제 다음 주에 신체검사만 이상 없으면 나는 에티오피아로 가는 것이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병원으로 발을 돌리고 파트장에 바로 카톡을 보냈다.



'저 오늘 출근 전에 잠시 면담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지금 파트장이 가능하다고 하면 바로 병원 안으로 들어가 면담을 할 작정이었다.



'지금 가능해요.'



하늘이 날 돕는 것 같다.

그 길로 바로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갈 때 느꼈던  기분은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 같다.


막상 퇴사하고 나온 날 보다 이 날이 더 기억에 선명하다.




그렇게 병동으로 곧장 올라가 파트장실로 들어갔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11월까지 일하고 퇴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유를 말하고 싶지 않은데 계속 내게 사유를 물었다.





원래 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리고 이 병동에 와서 힘든 부분이 있었다.



솔직히 말했다.



파트장은 당황했다.



이런 저런 말을 하다 갑자기 날 설득하기 시작했다.



'네가 원하면 다른 병동으로 보내주겠다.'




사과하고, 설득하고, 갑자기 날 칭찬하고, 그렇게 2시간 동안 파트장 방에 붙잡혀있었다.



그녀와 대화를 할수록 나는 더욱 확신이 들었다.



당장 그만두는 게 맞다.


"퇴사하지 말고 다른 병동으로 가는 건 안 되겠냐..."


2시간이 넘어가면서는 파트장에게 빌었다.


"싫습니다. 퇴사시켜 주세요."

"그냥 병원이 싫습니다. 퇴사시켜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이런 의미 없는 대화가 몇십 번 오가고 나서야 내게 알겠다며 다음 주에 사직서 쓰기로 했다.

드디어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시원하다.


























































이전 02화 병원을 집어치우기로 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