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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naa Nov 03. 2023

병원을 집어치우기로 했다.

고민




2022년 7월에 전체적인 부서 이동이 있어서 새로운 병동으로 가게 되었다.



해당 부서로 가니 H병동 파트장은 조금 퉁명스러운 부분이 있긴 했으나, 생각보다 친절했고, 일반 간호사들 업무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파트장이었다.



어떤 파트장은 친절한 척, 생각해 준 척하면서 절대 간호사 업무를 도와주지 않고 관망만 하는 경우가 있다.

거기서 더 심한 경우는 일하는 간호사들에게 불필요한 잔소리까지 하면서 소리를 지르는 경우도 다반사다.



Day 근무의 경우 보통 모든 검사, 시술, 수혈, 수술, 약물 등 하루 업무 중 가장 핵심 업무가 보통 다 이루어지기 때문에 굉장히 바쁘다.



보통의 간호사들은 물, 밥은 당연히 먹을 수도 없다. 당연히 화장실은 갈 수도 없고, 심지어는 못 앉고 10시간 동안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Day 근무 때 파트장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파트장이 업무를 도와주지 않으면 정말 간호사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수백 통 쏟아지는 병동 전화만 받아야 한다.


그런데 H파트장 타입은 업무를 열심히 도와주면서 잔소리하는 파트장이었다.


내 기준에 최악의 파트장은 아니었다.






H병동 모든 간호사들이 그 파트장 비위를 맞추기 위해 소위 ‘사회생활’을 하는데 그런 행동이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트장이 한 마디를 하면 모두가 거의 방청객처럼 반응을 하고, 그녀가 불편함 심기를 보이면 모두가 발작하듯 일어나서 안절부절못했다.


그동안 지독한 파트장들 꽤 만나봤다고 생각했는데 그 누구도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 파트장은 없었다.




굉장히 의아했다.



‘뭐지…? 좀 과한데?’



슬며시 다른 선생님들께 파트장을 대하는 것들이 조금 과하지 않냐고 물어봤더니 



모두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아무도 퇴근을 시켜주지 않아요”라는 답을 했다. 




‘... 네...?’




그런 삶이 일상이었다.





처음에는 그 파트장 비위에 웬만하면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나는 부족했다. 나의 실수와 잘못이 있었고, 그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준에 내가 부족했다. 그전 병원에 배웠던 중요하다는 기준과 이 파트장의 기준이 달랐다.




전 병원에서 문제가 아니었던 것들이 이 병동에서는 문제였고, 전 병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곳에서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맞췄어야 했는데 나의 노력이 부족했다.



점점 나는 파트장 눈 밖에 나기 시작했다.



나도 그녀의 비위를 맞추는 것을 반 포기하고 표정이 없는 사람처럼 출근을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왜 간호사가 되려고 했지?’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중학교 때부터 ’NGO’에서 일하고 싶었다.



나만의 전문성을 갖고 그걸 바탕으로 NGO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을 돕고 사람 생명 살리는 일을 하고 싶었다.

궁극적으로 그것을 하기 위해 간호사가 되었고 경력을 쌓았던 것이었다.



간호학을 공부하면서 적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고 국제정치학 공부를 너무 하고 싶어서 중간에 편입을 준비했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담당 교수님께서 이런 내가 답답하셨는지 내가 편입을 준비했던 대학교 학생 중 NGO 인턴십을 하고 있는 선배와 나를 만나게 도움을 주셨다. 



그 선배는 내게 NGO에 국제 정치학을 하는 사람들은 너무 많은데 간호학을 하는 사람은 많이 없고 전문 분야가 될 수 있으니 간호학을 끝까지 하고 면허까지 받은 뒤에 NGO로 넘어오라는 조언을 해줬다.



납득이 됐다.



이후로 더 이상 편입한다며 교수님 속을 뒤집지 않고, 조용히 대학교 졸업을 했다.

이후 대학병원까지 입사하여 경력을 쌓고 있었고 언젠가는 꼭 NGO로 나가려고 했다.


'내년에 가자.'

'아니다. 내 후년에 가자.'



어쩌다 이런 식으로 나의 꿈을 미뤘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생각했던 꿈이 수면 위로 다시 올라왔다.


안 그래도  한국에서 사는 게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는데 직장에서 날 떠나라고 등 밀어주니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코이카카 봉사단 모집 중에서도 가장 빨리 떠날 수 있는 국가를 선택해서 신청서를 접수했다.



2022년 11월 7일 에티오피아를 향한 걸음이 시작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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