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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naa Nov 02. 2023

이렇게 살다가 죽을까 봐 겁이 난다.

고민







보통 오후 11시 30분에서 자정쯤 이브닝 근무가 끝나고 집에 돌아간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늘 슈퍼에서 오징어집을 사들고 들어간다.

요새는 배달비도 비싸고 치킨도 매일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나 자신과 합의를 봐야 한다.



그 합의 지점이 '오징어집'과 '제로콜라'다.


GS25에서 사서 집까지 약 10분 걸어가면 이미 다 먹고 빈 봉지만 손에 들려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면 일단 바로 못 씻는다.


그냥 다리가 너무 아파서 우선은 가만히 앉아있다.

TV를 틀고 그 시간대 방송되는 것을 아무 생각 없이 본다.




다리 통증이 조금 괜찮아지고, 설 수 있겠다 생각이 들면 그제야 옷을 챙겨 들어가 씻는다.

씻고 나와서는 유튜브나 TV를 좀 보다가 누우면 새벽 1시나 2시 정도가 되는 것 같다.




5평 정도 되는 발산역 자취방에 불을 끄고 누우면 갑작스러운 적막이 찾아오고, 그때부터 끝없는 생각이 이어진다.


빠르게 지나온 시간들과 앞으로 남은 시간들이 내 생각 앞에 놓아지고, 눈앞에서 달력이 계속 넘어간다.



그러면  잠을 자지 못한다.



'아 이렇게 일하고, 돈 벌고, 먹고, 결혼하고, 늙고 이렇게 죽는 건가.'



맞다.

보통 다들 그렇게 사는 것 같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부모님도 그렇게 사셨다.


부모님이 노동하고 돈을 벌고 가족과 함께하고 그렇게 늙어가는 것을 자식 된 입장에서 봤을 때 정말 고귀했고 존경스러웠다.



그런데 막상 나보고 그냥 이렇게 살다 죽으라고 하니까 숨이 막힌다.

이렇게 매일 좀비처럼 병원에 나가서 똑같은 행위들을 하고 집에 돌아올 자신이 없다.



다른 사람들은 똑같은 하루를 잘 버티고 잘만 사는데 왜 나는 괜찮지 않은 건지 나도 나를 모르겠다.



지독한 이기심 때문인 걸까.



2022년 상반기 때는 병원에 적응하고, 부서이동하고 하면서 그냥저냥 정신이 없어서 그러려니 살았다.


그런데 하반기 부서이동이 안정화가 되고, 일이 익숙해지면서 다시 내 안에 잡생각들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내가 사직하지 않는 이상 매일 똑같은 이 병원 안에서 심지어는 온도, 습도까지 똑같이 조절하는 이곳에서 40-50살까지 일할 자신이 없었다.



병원도 답답하고, 한국도 답답하고 모든 것이 답답했다.



내 직업이 '간호사'라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아니면 '나'라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인 걸까.



주변에 깔리고 널린 사람이 간호사들이다.

애초에 간호사가 안 맞는 친구들은 1-2년 하고 그만뒀고, 보통 3년이 지나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사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제 나 자신이 이해가 안 되기 시작했다.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으니 괴로웠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

'언제까지 살아야 하나'

'이렇게 늙어야 하나'


이렇게 살기엔 감수해야 하는 고통들이 너무 많다.

산다는 것이 고통이다.


이 생각들이 끝이 나질 않았다.


나는 매일 기도했다.

제발 나를 옳은 길로 인도해 달라고 울었다. 이렇게 평생 살 자신이 없다고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냐고 그렇게 매일 울었던 것 같다.




가장 나 자신에 대해서 이해가 안 되었던 부분은 두 가지였다.



'슬플 일이 없는데 왜 슬플까'

'다들 이렇게 잘만 사는데 왜 나는 괜찮지 않을까'



슬플 일이 없다.



부모님 건강하시고, 직장이 있고, 넉넉한 수입, 누워서 잘 수 있는 자취방,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는데

도대체 왜 슬플까.


같이 일하는 동료 간호사들에게 이렇게 사는 거 괜찮냐고 질문을 하면 심지어 "나는 내 직업과 직장 진짜 만족해."라는 답변도 많이 받았다.


물론 일은 힘들지만 그만큼 보수를 받고, 전문성도 있고, 서울 생활도 만족스럽고, 업무 환경도 좋고, 대부분 만족한다는 평이었다.



어떤 직장이든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감안해 보면 꽤 나쁘지 않다는 의견이었다.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확신했다.




‘내 안에 정신병이 있는 것 같다.’




정신분석학자를 찾아가야 하나, 상담사를 찾아가야 하나, 정신병원을 가보아야 하나



그 세 가지를 두고 계속 고민했다.



그냥 주변 친구들처럼 혹은 간호사 동료들처럼 '어쩌겠어 뭐 사는 게 이런 거지' 하고 살면 되는데 이렇게 생각이 되질 않는 자신에 대해서 이제 반 포기 상태가 되었다.


뭐 대단한 엘리트도 아니었고, 간호사로서도 특별하지 않으면서 왜 이렇게 유난을 떠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나 자신이 감당이 되지 않았다.




그 당시에 주변 가까운 친구들에게 "답답하다"말을 가장 많이 했다.


"이렇게 평생 병원 벽만 쳐다보면서 살 자신이 없어. 답답해서 돌아버릴 것 같아."



이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나름 노력을 해봤다.



대학원 준비도 했다.


강서구 일대 맛있는 빵집을 찾아다녔다.

강서한강공원부터 난지한강원까지 따릉이 타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여러 번이었다.


쉬는 날 친구를 만나서 맛집을 가거나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갔다.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면 이 답답함이 괜찮아질까 싶어 한 달에도 여러 번 소개팅을 했다.


가방도 사고, 옷도 사고, 향초도 사고 돈도 열심히 썼다.



다 잠 깐 뿐이었다. 감흥이 없었다.

그냥 모든 것이 피로했다.


막판에는 지하철 타는 것도 피로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것을 보는 것도 답답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환경, 시스템, 문화와 완전히 다른 대륙에 대한 갈망이 점점 강해졌다.



더 이상 대학병원에서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다른 나라에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어떤 일이라도해보고 싶었다.



이런 생각은 끝이 나질 않아 결국엔 국경 없는 의사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모집요강을 확인하고, 채용설명회를 찾아서 듣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진짜 아프리카로 오게 될 줄은 몰랐다.


늘 결심만 하지 그냥 이러다가 점점 그러려니 하고 체념하고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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