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딩 1학년 때까지는 고딩 때 친구들을 종종 만나곤 했다.
그때 비교적 자주 만났던 친구가 삼풍 백화점 부근에서 살고 있었다. (서초고 동창생이었다.)
우리 집에서 삼풍 백화점에 가는 것도 멀지 않아서, 그곳에서 자주 친구들을 만나곤 했다.
예전에 가던 미도파 이런 데와는 또다른 퀄이라 친구들이나 엄마들이나 다 좋아했던 것 같다.
수입 상품기획전 같은 것도 인기 있었는데, 우성 쇼핑 센터 수입 상품점에서 팔던 식료품, 자잘한 식기 같은 것과는 달리 정말 예쁜 모자, 옷 같은 것들이 있었다. (친구들과 수입 상품까지 사지는 않았.. 아니 못했지만..)
몇층이더라? 상층부로 올라가면 식당이 있어서 거기서 뭘 사먹기도 하고, 물건을 구경하기도 하고
립스틱같은 것을 사기도 했다.
(나이 50이 다 되어가는 이때까지 거의 일만 하고 살아온 지금 생각하면, 이게 과연 친구 만나서 노는 거였을까. 되게 쓸데 없다 싶다;; 내가 너무 나이 들은 걸까.)
그때도 마침 은x라는 친구가 있어서 같이 비디오 촬영도 하고 놀고 (내가 영화패에 있었기 때문에 친구가 소니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카메라가 엄청 무거웠다) 부근을 어슬렁 거리기도 했다.
주로 카페에 가기도 했고, 친구네 학교 주변, 우리 학교 주변에도 갔는데 때는 방학이라 그냥 동네에서 놀았다. 여튼, 은x는 내 생일 때 못보았으니 대략 다음주 쯤에 만날까 했던가, 대략 생일 때 못 만난 거 나중에 만나자는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왜냐면 생일이 지나고 얼마 있지 않아 수련회로 출발했기 때문이었다.
수련회에 갈까 말까 진짜 고민 많이 했는데
어쩐지 가기 싫고 왜 가야하는지 모르겠고
나중에 가입한 기독 써클에서 난데없이 먼저 가입한 영화 써클 그만 두라고 하는 것도 황당했고..
그런데 착하디 착한 대딩 1학년 때라 가자니 그냥 갔다.그리고 기독 모임인데, 뭐.. 하면서.
그리고 수련회에 있다가 비보를 들었다. 삼풍 백화점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공중 전화기로 달려가니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나는 엄마 휴대 전화로 전화를 걸었는데 처음에는 진짜 받질 않았다. 엄마는 나중에서야 전화를 받았는데 운전중이었다고 했다. (당시 엄마의 모토로라 휴대전화는 진짜 무전기 만큼 크고 무거웠다.)
이때 은x에게 전화를 했었는지 아닌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여튼, 몇몇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 같다.
친구 누군가에게 야 우리 어쩔뻔했어 이런 말도 했었던 것 같은데 (주x이었나? 은x였나 잘 모르겠다) 왜 그렇게 말했었는지도 솔직히 잘 생각나진 않는다. 뭔가 혹시 위험하지 않았을까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과연, 수련회를 가지 않았다면 나는 딱 그날 그 시간에 삼풍백화점에 친구를 만나러 갔을까? 그건 확신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주에 최소 한 두번은 친구와 함께 삼풍 백화점에 갔을 거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혹시, 나도 모르게 엄청난 재난을 비껴간 게 아닐까
소소한 선택이 혹시 큰 차이를 낳은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