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지방의 어떤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4인 가족이 함께 살던 집이었다.
아파트 단지 밖으로 나가려면
우리 집이 있는 건물을 나서서, 좀 걷다가 180도 돌아서서 걸어야 했다.
그리고 좀 걷다가 오른쪽으로 꺾어서 다시 걷다 보면 오른편에 출구가 보였다.
문제는 그날이었다.
외출을 하려고 현관문을 나서는데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괜히 충격/침해를 받지 않으려면
일부러 자극을 주려는 의도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위를 쳐다보지 말아야겠구나.
나는 현관문을 나서서 오른쪽으로 돌기 전에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들면 B 지점에 있는 건물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절대로 위를 보지 않으려고 했다.
이상하게 절대로 보고 싶지가 않았다.
마치 그런 느낌이었다.
일부러 나 무섭지? 놀라라? 나 좀 봐줘? 이런 게 있어서
사실 놀라게 하는 것 외엔 큰 침해를 할 수 없는 그런 것이라
굳이 안 보면 되는 그런 거.
그렇게 나는 오른쪽으로 꺾어서 걷기 전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에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저 B 지점에 있는 동에 어떤 젊은 청년이 창문가에서 목을 매 자살을 했다고.
그걸 지나가는 여고생이 보고 너무나 충격을 받아서
아이가 굉장히 심각한 정서적 고통 속에 있다고.
B 지점에 있는 건물은 내가 절대로 쳐다보지 않으려고 했던 바로 그 건물이었다.
잘 차려입고 서울에 가려고 단지 내부를 걷다가
누군가 목을 매서 죽어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면
나는 외출이나 할 수 있었을까.
지금은 거의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그때 봤다면 아마 그 충격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창문을 보는 것 자체에 공포심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천만다행으로 그걸 보지 않은 것이다.
평소에는 이런 촉이 거의 없다.
심지어 나는 눈치도 되게 없는 편이다. ㅠㅜ
그런데 이날은 유난히도 이런 느낌이 들었다.
너무 확실한 느낌이라 방향을 틀기 전에 미리 고개를 숙인 것이다.
물론, 그때 그 느낌이 그 사건과 연관성이 있나 없나 그것도 잘 모른다.
그리고 솔직히, 내가 그런 느낌이 들었다고 해서
반드시 저 사건과 연관이 있다고 말할 수나 있을까. 없겠지.
그런데 그냥 천만다행으로
나는 그날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쓸데없고, 너무나 심각한 고통을
비껴 지나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