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올렸던 글인데, 이 매거진에 적합한 듯 하여 다시 올립니다
살다 보면 되게 되는 일 없는 때도 있고 일이 술술 잘되는 때도 있다. 그런데, 그걸 '인지할 수 있을 때'가 있고 '인지하지 못할' 때도 있다.
인지할 수 있을 때야 당연히 적당한 정보가 내게 들어올 때이고, 덕분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내 앞에 나타난 것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인지, 서로의 목적이 무엇인지 등등을 대충 알 때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으나 나중에 정말로 큰일이었다는 것을 알 때가 있다.
그러니까, 예전에 성남에 살 때였다.
독립을 원했으나, 여차저차 부모님도 내가 사는 집으로 오시게 되어서 셋이서 같이 살고 있었다.
내가 양재동에 사무실을 얻어 출퇴근을 하고 있을 무렵의 일이다.
외출할 준비를 마악 마칠 무렵, 엄마도 아빠도 모두 외출하셨다.
내가 제일 마지막으로 외출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부모님이 외출하고 얼마 되지 않아 누군가 벨을 눌렀다.
어쩐지 열어주기가 아주 싫었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는데, 대문을 열고 들어와 현관문을 탕탕 두드려 댔다. 아주 심하게.
여기까지는 별로 이상하지 않았다. 왜냐면, 우리 집 말고 2층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고, 반지하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 대문을 열고 드나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근데 지금 생각하니까 되게 이상하긴 하다;)
보통은 벨을 누르거나 문을 두드려도 아무도 응답하지 않으면 그냥 가는 게 정상이 아닐까?
그런데, 이 사람은 정말로 꽤 오랫동안 문이 부서져라 두들겨 댔다.
나는 나중에는 어쩐지 화가 났다.
그래서 나갈 준비를 마치고 나서 현관문을 벌컥 열고 문밖에 나섰더니
어떤 키가 작은 아저씨 하나가 가스를 검침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모자를 쓰고 있었고, 어쩐지 짜증이 나는 인상이었고, 키가 몹시 작았다.
나도 키가 작은 편이긴 한데 그때 당시에는 멋 부리는 것을 좋아해서 통굽 신발을 신고 다니곤 했다.
그날도 물론 굽이 아주 높은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섰는데, 현관문 옆에 서 있던 그 사람이 남자치고 키가 상당히 작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그 얼굴과 말투에 왜 그렇게 화가 났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화를 벌컥 내고, 문을 잠그고 대문을 나서서 나와 버렸다.
그 가스 검침원이 무언가 말을 하긴 했으나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무언가 쭈뼛 거리며 중얼거리는 것으로 보이긴 했으나 무시하고 그냥 나왔다.
길을 걸으면서도 나는 어쩐지 '내가 왜 이렇게 나이도 많은 분께 화를 냈을까.'
'단지 가스 검침을 하겠다는데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날까 내가 왜 이러지? 억눌린 분노라도 있나?'
'내가 너무한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나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일을 하러 전철을 타고 갔고
내가 너무 화를 내고 분노한 것이 이상하기도 하고 마음에 걸리기도 해서
나중에 집에 와서 엄마에게 말을 했다.
엄마는 가스 검침원은 대개 여자인 것 같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는 뉴스에서 성남 발바리가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 자식이 가스 검침원인척 하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그 성남 발바리는 키가 몹시 작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더중요한 것은 가스 검침원은 모두 여자라는 사실이었다.
그 당시 나는 왜 글 짜증이 나고 그 사람에게 화가 났었을까.
뭔가 무의식적으로 대단히 불쾌함을 느꼈었고
절대 집안에 들이지 말아야 할 어떤 것처럼 퇴치해 버리고 나서
아니, 내가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을 했으나
당시는 그 이유를 잘 몰랐다.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성남 발바리였던 것 같다.
사전 조사를 했겠지. 부모님이 모두 나가고 얼마 안 되어서 문을 두드린 것이었다. 집엔 나 혼자 뿐이었다
그걸 파악을 했으니 사람이 안에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대답도 하지 않는데 계속 문을 두드렸겠지.
근데 내가 만일 그때 짜증이 나고 이상하게 대단히 불쾌한데도
그래도 예의가 있는데.. 하며 문을 열어주고 가스 검침을 하라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욕 나오네.
근데 그날 있었던 일은, 내가 결정하거나 무언가를 잘해서 일어난 게 아니라
전적으로 누군가 어떤 신적인 존재가,
솔직히 말해서, 난 교회에 다니니까,
하나님이 나를 돌보아 주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