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엔 약간 이상할 정도로 잠이 많았다.
거의 강의 시간마다 잤는데, 누구도 나를 깨울 수가 없었다.
이걸 고치게 된 첫 계기는 강의실에 '여성 조현병 환우 분'이 잠입하셔서.(진짜로, 머리에 꽃을 꽂고 있었다;)
그날도 지루하기스리 국어표준문법론인가 뭔가를 들으면서
오른쪽 슈퍼맨 형으로 팔을 베고 숙면을 취하고 있었는데
뭔가 분위기가 쎄해서 고개를 들었다.
동네 유명한 여자분이 강의실에 난입하여 손에는 마른 미역을 들고 칠판 가까이에 서서 교수님과 이야기하고 계신 것이었다.
여자분이 교수님에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계속해서 교수님이 무척 당황하고 계시던 차에
그 여자분이 나를 가리키며
저기 저 학생은 어떻게 학생이 수업 시간이 저렇게 자느냐고 소리소리 지르며 항의를 했다...
급 당황한 노교수님은
"저 학생이 많이 아파요. 아파서 그래요" 라면서
전날 테트리스로 밤을 샌 나를 환자를 만드셨다...
교수님의 변명은 아랑곳 없이 여자는 뭐라고 뭐라고 하더니 갑자기 손에 들고 있던 미역을 높이 치켜들고
이거 사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신 후
예비역 학우들 손에 장렬하게 끌려 나갔다....
나는 그 와중에 뭔가는 했어야 했는데 뭔가 미안하다는 액션이라던가 정신 차린 척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난 정말 너무 졸리고 잠을 이길수가 없어서
그걸 보며 다시 엎드려 잔 것이다..
이 사건으로 나는 그 학기가 다 가도록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고
사람들이 나를 깨우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이 깨우는 방법이 너무 짓궂고 너무너무 귀찮아서 아 정말 이거 고쳐야지라고 결심하고
강의 시간에 절대 잠을 자지 않으니
집에 오는 길에 전철에서 무지하게 잤다...
뭐랄까 자리에 앉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는데
축제나 MT로 과도하게 달렸던 한 두번을 제외하곤 기가막히게도 내릴 역에서 눈을 뜨곤 하였다.
그날도
2호선 순환선을 타고 둘도 없는 숙면에 빠져들었는데
낯선 또래 대학생이 나를 깨우며 말했다.
"제가 신촌에서 탔는데요, 거기서부터 주무시고 계셨는데, 저 곧 사당에서 내리거든요.. 혹시 내리실 역이 지나지 않았나요?"
나도 곧 내릴 때가 되었기에 이 학생이 아니었으면 내릴 역을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곧 내린다고, 고맙다고 말한 후
다시 잠이 들었다..
그래서
고마운 학생 내릴 때 인사도 못하였다...
이런 잠습관은 이후로도 몇번 내가 과도하다는 것을 자각하는 과정을 거쳐
결국 직장 다니면서 자연스레 고쳐졌는데
고칠 때는
'이렇게 쉬운거였어?' 싶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