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이 깨지는 시간
희미한 갈색 등불 아래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꿈이 없었구요
그저 아무 생각없는 철없는 학생이었어요
고등학교때 계단을 올라가는데
방송반을 모집한다는 포스터가 눈에 확 들어오더라구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확 드는 거에요
오디션 한번 봐 볼까?
그렇게 방송이라는 것이 제 삶에서 시작하게 되었죠
어렸을때 부터
MBC라디오를 들으면서 자랐거든요
부모님이 항상 켜놓고 사셨죠
게다가 91.9 가 아닌 95.9 가 단골이었어요
덕분에 저는 어렸을때 트로트를 다 꿸 수 있었구요
오디션때 트로트를 불렀어요
<갈색추억>이라는
“희미한 갈색 등불 아래” 를 부르니깐
선배들이 깔깔 거리면서 다 웃더라구요
그 덕이었나봐요 합격을 한거죠
수백명의 눈
고2때 학교 페스티벌이 있었어요
다들 아시다시피 가요제가 하이라이트잖아요
반송반 선배들이 저보고 사회를 보라고 하시더라구요
단상에 오르자마자
수백명의 눈이 저에게 맞춰져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런데 그게 떨리는게 아니라
마음이 차분해 지더라구요
약간 그걸 즐기고 있다고 해야되나?
선생님들께서도 지나가는 말이셨지만
"정은아 너 그때 너무 멋지더라 아나운서 같은거 생각해봐" 라는 말씀에
또다시 제 마음속에 들어 왔죠
아나운서 라는 꿈이
대학교 내내 많은 준비를 했었죠
4학년때 시험을 봤는데 MBC, KBS 다 떨어 진거에요
SBS는 아예 뽑지도 않고
이제 어떻하지? 졸업하면 백수네
참 막막했죠
그런데 아버지께서 어디에서 들으셨는지
"부산MBC시험을 보면 어떻겠니"
라고 말씀을 주셨어요
와신상담의 시절
부산에 원래 연고가 없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부산에 가서 시험을 보곤
다행히 합격을 하게 되었어요
원룸 구해서 1년 7개월을 그렇게 생활을 했구요
제 마음은 하루하루가 와신상담이었어요
칼을 갈아서 내가 반드시 서울에 올라가리라
당시 제게는 전국구라는 야망이 있던 거죠
사람에게 "시기"라는게 있다고 생각된게
저는 원래 1년만 경험쌓는다고 생각하자 내려왔는데
1년 뒤 아나운서를 새로 뽑는다는 공고를 봤을때는
지금 그만두고 시험을 보면 떨어질 것 같은 거에요
아 지금은 때가 아니야
아직 나는 뭔가 부족해 칼이 덜 갈렸어
그래서 1년을 더해보자 생각했던 거죠
그때 저는 저도 모르게 전율이 느껴졌어요
아 드디어 때가 됐구나
그렇게 1년 7개월의 시간을 뒤로하고
부산MBC를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왔어요
그리고 그때만큼 제 인생에서 최선을 다한 적이 없던 것 같아요
약간 목숨 걸고 한 느낌
"인생 한번 걸어보자 이게 마지막이다"
당연히 있었죠
사실 뽑아도 한두명 뽑으니까
기본 경쟁률이 1000대 1 이렇게 되거든요
그래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만약 떨어지더라도 카메라 앞에서 서있을 수 있다면
어디라도 괜찮다 라는 마음
그냥 방송만 할 수 있는 곳이
아닌 세계
신조어가 생겼는데 아나테이너라고
아나운서들이 예능에도 출연하고 그랬었죠
제가 입사했을 때가 바로 그때였어요
라디오 프로그램, 시사, 교양, 예능
어느새 뉴스까지 맡게 된거에요
그렇게 반년은 매일 아침에 출근했다가
새벽에 퇴근하는 시간을 보냈죠
정말 원 없이 방송을 했다니까요
알고보니 이 세계는
대한민국이 돌아가는 것과
너무나 밀접하게 관련있는 곳이 었던 거에요
그래서 대통령이 누구인지에 따라서
정치가 어떻게 흐르는지에 따라서
좌지우지 되는 걸 느꼈던 거죠
너무 안타깝게도...
그때 광우병 파동이 나면서
PD수첩에서 보도를 하게 됐는데
그 보도 이후에 촛불 시위가 일어나고
나라가 뒤집어 진거에요
그러면서 시작됐어요
파란만장한 시절이
방송이 잘못 될 수는 있지만
그것때문에 검사한테 조사를 받고
구치소에 가야 되는 현실이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됐어요
게다가 PD선배님들이 이리저리 불려가는 상황이
뭔가 부당하다고 느꼈구요
회사 앞에서 촛불 집회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나갔었죠
300여분들이 계시더라구요
저는 그곳에서 약간 떨어져 있었죠 촛불과 피켓을 들고
기자들이 저를 확 에워싸더라구요
그리곤 "손정은 아나운서 1인 시위"
이런 식으로 보도를 내셨어요
"방송탄압, 언론탄압 중단하라" 이렇게
그러다가 2012년에 MBC에서 파업을 했는데
그때 이후로 제가 5년 넘게 방송을 전혀 못했어요
방송인으로서 즐거운 일만 있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아나운서로서는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어요
껍질이 깨지는 시간
너무 힘들었으니까
그래도 전 MBC에 더 있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다시 좋은 날이 오는 걸 보고 싶기도 했구요
지난 10여년간 뉴스나 방송활동했던 것들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죠
우리와는 조금 다르지만
광고나 상업성과 싸우며 저널리즘의 공정성을 지키려 노력하는 미국을 보면서
다른 나라도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에
공감하게 되었구요
무엇보다 내가 방송을 안하고도
의미있는 일들을 할 수 있겠다
생각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어요
그전까지는 MC나 진행을 해야지 뭔가를 이룰 수 있다고
굉장히 견고하게 생각했었는데
"아 그게 아니었구나" 라며 그제야 깨져 버린 거죠
5년 8개월 그리고 1년 3개월
방송을 못하는 5년 8개월 중에
1년 3개월을 사회공헌실에서 로 일한 적이 있었어요
그게 제작년까지 였네요
처음에는 너무 충격적이고
내가 왜 여기에 와 있어야 되나 생각을 하면서
자리 잡지를 못 했어요
그때 생각 나더라구요
맞아 내가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었지
이 곳에 와서 내가 방송은 못하지만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일을 하니
정말 좋다
터닝포인트의 시간
모든 것을 뉴스에 파뭍혀서
살아야 할 정도로 바쁘더라구요
반년 이상을 그렇게 살았는데
이제 시간이 조금씩 주어지기 시작하니까
내가 생각만하고 실천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 둘씩 해나가야 겠구나 생각하게 되었어요
저의 제 2의 인생으로서
사회에 공헌 할 수 있는 방송인으로
역할을 하는 삶으로 말이죠
저는 고민을 하고 있다는 지금 이순간에라도
잘 할려는게 아니라
즐겁고 재미있는 걸 했으면 좋겠어요
즐기다 보면 잘하게 될 수 있고
잘하니깐 즐기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조금만 그 세계를 들여다 보면
그 속에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들을
찾을 수 있을 꺼에요
성공이든 실패든
자기의 한계를 스스로 정하지 마세요
직업이라는 이름으로 가능성을 자르지말고
세상의 밝음을 줄 수 있는
자신만의 비전을 품었으면 해요
Q. 청년을 위한 DREAM매뉴얼
맞아요 꿈으로의 도전에는
사실 두려움의 암초가
버티고 있죠
하지만 첫번째 문만 열어보세요
그 다음부터는 누가 밀어주는 것처럼
저절로 걸어가게 될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