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터널이 지나면
마음이 움직여요
중고등학교때 꿈은
작곡, 작사, 편곡을 하는 프로듀서가 되는 거였어요
하지만 결국 대학은
평범하게 점수 맞춰서 행정학과를 가게 됐구요
졸업을 하면서
나는 뭘하면서 먹고 살아야 하나 고민하는
말그대로의 평범한 삶을 살았죠
저도 모르게
계속 교회에 있게 되더라구요
아이들을 만나고 찬양하면서
누가 시킨것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1년 동안
전도사님처럼 생활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1년이 될 때 쯤
교회 전도사님께서 그러시더라구요
"여기에 서류한번 내보실래요?"
그렇게 시작된 일이 음반기획사였어요
엔터테인먼트 일을 하게 된거죠
아니요 저는 사실
동네서도 알아주는 말썽꾸러기였어요
중고등학생 때는 사고를 하도 많이쳐서
부모님 속을 많이 속상하게 했죠
청소년기때 아버지께서 부도가 나고
사춘기까지 겹치니까
정말 많이 방황했던것 같아요
어머니께서 절 앉히시더니
제 눈을 바라보시곤 말씀해 주셨어요
준규야 너 정말 그러면 안돼
호통이 아니라
눈물을 머금인 음성에 정신이 번쩍 들었죠
지금 생각하면 감사하고 죄송하고 그러네요
그래서 그런지
그때 나이또래 친구들이 방황하는 걸 볼 때마다
그때 생각에 마음이 움직여 지는 것 같아요
날이 가는지도 모르고
음악을 했던
너무 행복했어요.
제가 하고 싶었던 음악에 관련된 일을 하니까
한 3년간은 거의 사우나에서 잤던 것 같아요
기획하는 것도 좋고 녹음실 다니는 것도 너무 좋아서
날이 가는지 모르고 밤도 새가며
너무 좋아라 일을 해 나갔죠
음반으로 투어를 다녔어요
그리고 미국이라는 곳을 가게 된거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투어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는게 좋기도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세계 많은 곳의 청년들과 교감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19년 전에 같이 음악을 하다가
만나게 되었죠.
꿈을 쫒아가는 자들의 동병상련이랄까요?
어찌보면 서로 무명일 때 였지만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셨던 감사한 분이셨어요
터널의 시간
첫 엔터테이먼트에서 6년 일하고
회사 팀장과 POG미디어를 만들었어요
CCM쪽 음반을 만들면서
기독교 서점 음반매장을 다 다녀 봤었죠
하지만 그쪽은 음악 시장에서도 불모지 였고
사역의 공간이지 수익의 공간이 아니더라구요
그 이후엔 잠시 <컴패션>에서 있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제 회사를 차렸어요
음반과 배우 매니지먼트 일을 하는
정말 힘들긴했는데
제가 하고싶었던 일이라 좋았어요
하지만 재정적인 압박은 너무 쎘었죠
3-4년 정도 회사를 운영하다가
결국에는 손을 떼게 되었어요
사람의 인연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같아요
만나다가 잠시 헤어졌다가
또 잘되서 만났다가 하던 인연이었죠
FNC로 들어오라고 하시더라구요
사회공헌일을 하라고 하시면서
고민이 많았어요
그게 나랑 맞는 길인가도 생각이 됐구요
하지만 지금은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삶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셔서
SCHOOL5025
CULTURE5025
FNC엔터테이먼트 한성호 회장님이 설립한
<LOVE FNC>라는 재단이 있어요.
저는 그곳에서 사회공헌활동을
디자인하고 실행하는 일을 하고 있구요.
저희 재단은 크게 두가지 사업을 하고 있는데요
<SCHOOL5025> 학교짓기 프로젝트와
<CULTURE5025> 문화예술지원사업 입니다
학교 짓기 프로젝트는 <SCHOOL5025> 라고 불립니다
50개의 학교를 25년까지 세우자.
필리핀, 미얀마, 캄보디아 등에서
학교를 짓고있어요.
두 번째, 문화예술지원사업으로 <CULTURE5025>
보육원, 센터, 그룹홈아이들에게
문화예술지원사업을 하는 것 입니다.
올해 처음으로 훈련받던 아이들 4명이
저희 회사 오디션을 봤구요
그 중 한 명이 최종까지 올라간 걸로 알고 있어요.
그렇게 문화를 꿈꾸는 아이들의
버팀목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죠
FT아일랜드, 씨엔블루, AOA,
노홍철, 정해인 그 외 많은 소속 아티스트들 까지
저희 FNC 식구들은 함께 사회공헌활동을 합니다.
한번 가면 가면 3박4일이나 4박5일
쉽지 않을 일정이지만 기꺼이 함께 해 주시죠
사랑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미얀마로 학교 짓기 사업을 하러 갔어요
사실 거기 사람들이 알아 볼까 했는데
다 알아 보더라구요
공항직원까지 같이 사진 찍자고 하시고
근데 저희가 가는 곳은 미얀마 수도에서도
비행기로 1시간
버스로 9시간을 가야하는 곳인데
거기에도 팬분들이 오셨더라구요
인사를 나누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는데
미얀마 분들 뿐만이 아니라
태국, 베트남에서 오신분들도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지금은 그때 만나 뵈었던 팬분들이
그 학교를 케어해주세요
봉사활동도 해주시고
때가 되면 선물도 아이들한테 주시고.
저희는 그저 좋아서
아이들에게 필요하다고생각해서
학교를 지었을 뿐인데
아티스트가 함께 가서 봉사하고
또 그 아티스트의 팬들이 봉사하고
어느 순간 선순환이 일어나더라구요
그 모습에 너무 뿌듯했죠
지금 6호까지 지었는데 저희 희망은
100호까지 가려고 합니다
사실 이 일을 하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꿈의 정의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미 너무 많은데서
쓰시더라구요
그래서 말하기가 좀...
옛날에 제가 중고등부 아이들한테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꿈은 움직여야 되는거야
그래야 삶을 바꿀 수 있는거야
라고 이야기했었는데
많은 분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시더라구요
어느 순간 광고에도 나오고
하지만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꿈은 멈춰있는 게 아니라
움직여야 생동할 수 있는 거라고
Q. 청년을 위한 DREAM매뉴얼
저의 인생은 항상 터널인거 같아요
처음 꿨던 꿈 역시
고난이고 절망의 고배를 마셨죠
이 터널을 빠져나가면
나에게도 고속도로 같은 길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 왔던 것 같아요
그 생각들이 모여
결국은 행복한 일을 찾게 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