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이루어 지는 곳은 그 격렬함을 극복한 자리
사회는 왜이리 부조리할까
어렸을 때를 기억하면
이사를 참 많이 다녔던 것 같아요
국민학교 6학년까지 학교를 5번이나 옮겼으니까
김포 시골에서 태어나서 동두천까지
여기 저기로 이사를 다녔었죠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지만
자주 이사를 다녀서 그런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데 어색함이 없었죠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느끼게 된거죠
이 사회가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다는 것을
그때부터 그런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왜 사회는 합리적으로 흘러가지 않는가
나중에는 철거민촌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말도 안되게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서
더욱 이 사회에 대한 부조리함과 맞닥드렸죠
대학교에 가서 사회적인 인식이 많아졌죠
자연스레 운동권에 있게 되더라구요
저는 73학번인데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하던 시기였어요
그리고 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답니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
함께 책을 읽으며 공부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서 군사재판을 받았어요
처음에는 독방에 있었죠
빨간 딱지를 붙은 반공범은 살인범과 동급이었니까
민간인 신분으로 가서
즉결심판하는 군사재판을 받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때 당시로 보면 엄청난 흉악범 이라는 거죠
그곳에서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내가 여기에 왜 있지?" 였어요
이유도 영문도 알 수 없는 고통었죠
게다가 면회도 안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독방에 있는다는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건
저녁 무렵에 창문 밖으로 욕하는 것
그리고 성경책을 읽는 것
독방 한 귀퉁이에
손바닥만한 성경책이 하나 있더라구요
혼자 있다가 사람을 보니까 어찌나 기쁘던지
18명이 한방에 있는데
사기, 강간, 폭력, 장물아비 별에 별 사람들이 다 있었죠
사실 거기에 가서 내가 많이 치유를 받았어요
인생의 목표도 생기구요
이전에는 나를 돌아볼 여유도 없고
사회에 대한 반감으로 많았던 시간을 보냈는데
오히려 그곳에서 어울리며
사람답게 산다는 걸 알게 됬어요
실제적으로 거기에 있는 사람들과 생활해보니까
내가 생각했던 가난이라는 것은
상당한 사치였다고 느껴졌어요
나는 그래도 비빌 언덕이라도 있는데
거기 와 있는 많은 죄수들은
정말 나와는 비교가 안되게 비빌 언덕도 없는 분들이었던 거죠
그분들과 같이 살면서 제가 삶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그리고 소위 말하면 꿈을 갖게 된거죠
내가 나가면 이런 분들을 위해 살겠다
감빵에서는 깜빵장이 제일 무시무시하죠
잡범들을 주름잡아야 하니까
그래도 그분이 저에게는 참 잘 해주셨는데
나중에 이 분이 출소를 해서 우리집에서 식사를 하게 된 날
아버지께서 그러시는 거에요
자네 어디 잘 데 있나
없으면 가는 곳 정해질 때까지 우리집에 있게
그게 이어져 5년이 되었죠
그리고 그분은 나중에는 좋은 분과 장가까지 가셔서
출가를 하시게 됩니다.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 되다 보니
일반 기업에 취직이 안 되는 거에요
게다가 감옥에 갔다온 사람이니까 더더욱 그랬고
당시 모든 기업들은 신원조회를 했으니까
그런데 어떤 친구가 그러더군요
야 미국은행이라는 데가 있는데
거기가면 신원조회를 안하더라
원서를 냈더니 붙여 주더라구요
진짜 보니까 신원조회를 안해
그래서 우연히 체이스맨하탄이라는
미국계 은행을 첫 직장으로 갖게 된 거죠
왠걸 들어가 보니까 월급도 많이 주고
조금 더 있으니까 집 사라고 돈도 빌려 주고
교육도 잘 시켜주고
나중에야 말로 그런 고백을 하게 되더라구요
로마서에 나오는 것 처럼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경험했구나
사실 그런 일들이 나에게 없었으면
미국은행으로 취직할 일은 없었으니까요
당시 외국에서도 CSR이라는 개념이 없었을 때
체이스맨하탄 은행은 이미 CSR활동을 하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구로공단에 계신 분들에게
야학하는 것을 참여했었죠
이후 직장을 옮기면서 West Pack이라는
호주은행을 한국에 설립하는 일을 하다가
홍콩으로 발령이 났고
홍콩 3년 이후에는 인도네시아에서 합작은행을
다음에는 캄보디아에서 은행 만드는 일을 하며
해외에서 13년을 보냈습니다.
주로 은행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일을 했었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은행 만드게 취미인 사람>
이라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죠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거지
제가 갔을때 당시 캄보디아는 수상이 두명이었어요
즉, 대통령이 둘 인거야 당연히 나라가 어떻게 되겠어요?
킬링필드 이후 계속적으로 경제와 정권혼란이 있던 나라였어요
그 와중에 저는 은행을 만드는 일을 했던 거죠
18명의 무장한 용병을 고용해서 은행을 지켜야 하는 나라
1997년에 두 세력간 내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상당한 혼란이 있었고 폭동이 수반이 되었죠
모든 것들이 위협받는 상황이었어요
캄보디아로 들어갈 수 있는 비행기가 없는 거에요
그래서 여차저차 수배를 해서
태국에서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캄보디아로 들어갔죠
비행기를 타고 밑을 내려다 보니까
내전 통에 공항이 다 부서진거에요
게다가 그 주변에는 어떻게든 비행기를 타고 나오려는
아우성인 사람들이 보였어요
그 사람들의 눈망을을 보면서
옛날에 봤던 사람들이 생각 났어요
그리고 하나님께 서원했던 것들이 생각 났죠
해외에 발령이나서
소위 잘나가는 banker로서 살아 가면서
옛날 일을 다 잊고 살고 있던 나...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거지?하는 생각에
마음이 참담하더군요
그리곤 사표를 냈어요
지금부터라도 다르게 살자 다짐하면서
정말 잘 되었어요 그러다 망했구요
그때 한국은 IMF 이후여서 경제가 말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생각한 게
실직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다시
올라서게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그래서 2002년도에 시작한게 <사회연대은행>이에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 사람들이 창업을 하고
다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3개월 동안 마이크로크레딧의 선진국인
방글라데시에 가서 배웠죠
우리나라에 맞는 한국적 마이크로크레딧을 고안을 하기위해
그리고 <사회연대은행>을 설립을 했어요
한해에 100억까지 빌려 주기도 했죠
정말 잘 됐어요
<행복을 파는 과일가게>가 있었어요
어려운 상황에 계셔서 저희가 지원을 했는데
어느날 봉투를 하나 들고 오셨어요
"이 돈을 어려운 상황에 처한 분들을 위해 써주세요" 라며
이게 어떤 돈입니까? 여쭤보니까
매일 첫 매출을 모으신 돈인 거죠. 30일 동안
그걸 담아서 가져오신거에요
그리고 그걸 한번이 아니라 몇 년을 하시더라구요
정말 잘됐어요 의미도 만들어 갔고
그러다가 망했어요
미소금융이 시작되어서
휴먼예금이라는 것이 있어요
은행에 예금하고 잊어먹은 돈
우리나라의 경우 예년에는 상법상
5년 동안 찾아가지 않으면
은행이 그 돈을 환입했어요
당시, 전체로 보니 4,800억 정도가 되더라구요
그 1/5이 은행에 수익이 되고 있는 거죠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렇게 하는건 아닌 것 같애
은행이 아무런 노력 없이 가져가는 돈이니까
그래서 그건 옳지 않다고 문제제기를 하고
법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재기시킬 수 있는
마이크로 크레딧 쪽으로 쓰자라고 설득했죠
마이크로 크레딧으로 유명한
유누스 그라민뱅크 총재가 한국을 오게 됐는데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면서 세계의 관심을 받게 된 거죠
그라민 총재와 함께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접견에 초대되면서
휴면예금을 마이크로 크레딧으로 사용하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유누스 박사가 강력 서포팅해서 법을 만들었는데
다음 정권이 들어오면서 미소금융재단이라는 것이 만들어졌어요
정부가 운영을 하게 된 것이죠
미소금융재단을 만들면서 그 규모를 키우기 위해
대기업과 은행들의 기부금을 빨아들이기 시작했어요
동시에 정치적인 논리로 사회연대은행의 기부는
줄어들게 되면서 아주 힘들어 지게 되었죠
너무 속상하고 힘들었어요
2009년만 하더라도 100억을 대출했던 기관이었는데
이듬해에는 45억, 그 이듬해는 20억으로 계속 줄어 들었죠
지금은 10억이나 될까 말까...
공.정.사.회.를 만들지 말자
정부는 심판이고 민간이 플레이어가 되어서
생태계를 활성화 시켜야 하는데
정부가 민간이 할 것 까지 들어와서 하면서
실상 민간의 공까지 가져가더라구요
정부의 속성상 세밀한 것까지 케어하는게 힘들고
정치적으로 운영이 되거나 이용이 되어서
문제가 더 발생하게 되는 것이죠
정부의 속성이 가지고 있는 관료성, 보수성으로
제대로 방향을 못잡는 경우도 많구요
제가 칼럼에 그렇게 까지 썼어요
<공정사회를 만들지 말자>
공.무원이
정.하고
사.(민간)이 서로 그 돈을 받으려
회.(모이는) 경쟁구도를 만들면 안된다
야구장에 가면 선수가 뛰어야지
감독이 같이 뛰어서 되겠냐는 거죠
사회연대은행은 개인을 대상으로 한다면
한국사회투자는사회혁신기업들을 대상으로 투자를 하는 기관입니다.
서울시에서 500억을 위탁받아서 운영을 했는데
나중에는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죠
갑자기 법이 바뀐거에요
지방자치단체가 기금을 운영하는데 민간한테 맡기지 마라
그래서 한순간에 500억이라는 기금이
다시 서울시로 환수 됐죠
그리고 나서는 엄청나게 어려웠어요
여태까지 해 왔잖아
어떤 일이 든지 간에 기회가 오고
도전이 오는 때가 있죠
저는 이걸 신앙의 관점에서 봐요
어려운 일이지만 하나님이 협력해서
이뤄내는 과정 중에 하나인 걸로
감옥에 가게 하시고
은행에 취직하게 하시고
해외에서 은행을 만드는 일을 하게 하시고
우연처럼 흘러갔던 사건들이 모두
절묘하게 이어지면서
내가 지금 하는 일로 모두 연결이 되는 걸
저는 느꼈으니까
그래서 역경이 오면
저 나름대로의 자신감이 생겨요
여태까지 해 왔잖아
극복하고 나면 다양한 기회가 오는 것 같애요
그래서 역경은 결국
우리를 강하게 한다고 하나봐요
쇠를 달구고 때려서 도구를 만들면
이후엔 그 도구가 필요한 곳에서
그 역할대로 사용 되는 것이죠
가능성만 있는 철광석 덩어리가 아니라
물론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결과물을 도출 해 낼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지켜낸다면
결국엔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시대적으로 젊은 친구들이 너무 힘들잖아요
하지만 시대적인 어려움 안에도
자신을 부르는 기회를 찾아서
자신 속에 있는 쇠를 달구고 치면서 단련했으면 좋겠어요
그 시기를 지나면 분명히
단련된 대로 자신의 가치를 뿜어 낼 수 있으니까
꿈을 이룰려고 노력하는 과정은
쉽지 않을 수 있어요
아니 당연히 어려움이 있죠
그래서 꿈은 격렬해요
그리고 그 격렬함에 포기하면 안되구요
삶을 돌아보고 깨달은 것 중 하나는
꿈이 이루어 지는 곳은
그 격렬함을 극복한 자리더군요
Q. 청년을 위한 DREAM매뉴얼
꿈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멋진 에너지에요
그래서 꿈은 격렬합니다
그 과정 역시 격렬하구요
너무 아프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그 에너지가 당신 삶의
이유를 찾아 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