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 좌절을 이기는 동력
참 어렵던 집안형편
어렸을 때는 굉장히 내성적이었어요
말을 잘 안해서 별명도 미련 곰퉁이 였구요
시골에서 올라와서 6학년을 마치고
서울에서 중학교를 생활을 시작했으니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강의를 하면서 먹고 살고 있으니
당시 꿈도 못꾸던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것 같네요
시골에서는 일하고 소꼴 베어 멕이고
그런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시골에 사는데 땅이 없으니까
남에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는 터라
집안형편이 참 어려웠었어요
중학생이 되고 서울에 오면서
상황은 더 어려워졌구요
얼마되지 않는 등록금도
계속 밀리곤 했으니까
사실 그런게 싫었죠
친구들한테 창피하기도 하고
공부는 그래도 어느만큼은 했었는데
등록금을 못내니까 주눅이 들고
선생님이 계속 등록금 왜 안가져 오냐는 말에
학교는 가기 싫고
그렇게 스스로 학교를 때려 치운거죠
중3때 가출을 했는데
그때부터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어요
상당히 많이 꼬였죠
가출 그리고 소년원
가출을 했는데
중3짜리한테 일을 주질 않잖아요
애들이니까
그때는 학생복 입고 가출했으니까
당연히 알 수 밖에 없었죠
일은 못하니까 일단 비슷한 또래들이랑 어울려서
도둑질도하고 쌈박질도 하고 등등등 하다가
확실하게 꼬인게
소년원에 들어가게 된 것이죠
가서 보니 조폭도 있고
싸움도 잘하는 친구도 있고
쓸이 꾼도 있고
사회적으로 온갖 배척당한 친구들이
다 있는 곳이었어요
그런 친구들과 있다보니
내성적인 성격으로는 도저히 안되겠더라구요
늘 얻어 터지기만 하고
그래서 그랬던 것 같아요
깡다구라고 할까요?
무엇이든 배짱을 갖고 해 나가는 방법들을
거기에서 배웠어요
살아남기 위해서
특히,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지만
소년원에 책이 되게 많아서
거기에 있는 책들을 거의 다 읽었던 것 같아요
그때 책을 읽었던게 사회 나와서도
큰 도움이 됐어요
그게 습관이 돼서 소년원을 나와서도
책을 꽤 많이 본 것 같구요
나와서는 청계천에 있는 평화시장 헌책방에 가서
한권에 백원하는 책들을 사서 봤었죠
그렇게 스스로 터득한거 같아요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기본을 갖추게 됐구요
그 바탕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26권의 책을 낸 작가로서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죠
인생지사 새옹지마
본인들은 좌절 하거든요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이제 내가 열심히 해봤자 나는 뻔하지
저도 어릴때는 그랬고 방황도 많이 했지만
서른 넘어가면서 느낀 건
지금 이 어려움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은
예전에 소년원 생활하면서 배웠던
깡다구와 배짱덕이 아니었을까
노무사가 될 수 있도록
독하게 독학을 할 수 있던 것 역시
그 힘든 가운데서도 책을 보던 습관때문 이었거든요
아마 제 인생에서
그런 배짱과 습관이 없었다면
저는 도전조차도 못 했을 거에요
그리고 힘들때 마다 제 자신한테 이런말을 하며 버텨냈죠
내가 소년원에서도 살아 남았는데 이걸 못할까 라며
나이 먹고 돌아보니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것을
그렇게 알게 된거죠
중학교때 공부만해서 대학에 가고 취직을 했다면
마흔두살에 짤렸을 텐데
다들 은퇴하는 지금 이 나이에도
강의를 하면서 살 수 있고
아직까지도 불러 주는데가 있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다 소년원 덕이 아닌가
거꾸로 보니 알게 되더라구요
제가 살아갈 수 있게 했던 큰 동력이었다는 걸
포장마차, 과일행상, 엿장사
그리고 목부
변화라기 보다는
깊은 방황의 연속이었다는 말이 맞아요
당장 먹고사는 문제부터 힘들었으니까
생각해보세요 어린데 학력은 짧고 소년원을 나왔어
어떤 걸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시작한 것이 길거리 장사였어요
포장마차, 과일행상, 엿장사 같은 걸 했었죠
헌데 장사를 해보니까 체질적으로 장사가 안맞아
쉽게 말하면 10원짜리를 100원이나 1000원에
파는 배짱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10원짜리 가지고 많아야 20원 밖에 못 파는 거에요
더 받으면 내가 속이는 것 같고
물론 제가 열심히 못한 탓도 있겠지만
돌이켜 보면 장사로는 별로 잘 된 게 없었어요
그래서 알게 되었죠
아.. 나한테는 장사가 안 맞구나
그래서 장사하는걸 그길로 접게 되었죠
그래도 집에는 다시 들어가기는 싫으니까
먹여주고 재워주는 데를 찾아보니
주변에 목장이 있던 거죠
그렇게 군대가기 전까지 목장에 있으면서
목장 일꾼으로 살았어요
"목부"라고 불리면서
다시 시작된 생존전선
그렇게 군대를 갔다오고 나왔는데
할 게 없잖아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시작한게
화장품 외판원이었어요
외상으로 주고 외상으로 받는
그래도 직접 이윤은 남겨 먹지는 않으니까
속은 편하더라구요
그리고 그때 우리 아내를 만나서
저도 장가라는 걸 갈 수 있게 된 거죠
외판원 일을 하다가
지금의 아내를 알게 됐어요
그때 생각해 보면 정말 저는
수중에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었는데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 거죠
그리고 말그대로 무일푼으로
결혼이라는걸 하게 되었어요
그때는 .... 그런 생각도 못했던 거 같애요
너무 좋아해서
그리고 어떻게 잘 될것이다라는
배짱만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한거죠
그래서 제 아내가 무진장 고생을 했어요
아무것도 없는 집에 와서
심지어 애를 낳았는데 쌀이 떨어져서
애 젖이 안나올 정도 까지 갔었으니까
월세를 못내서 쫒겨 나기도 했고
그런거 생각하면 참 나쁜 놈이죠
10번을 찾아 갔던 택시회사
제 인생에 있어
가장 힘든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되요
직업이 없이 결혼을 하고
소득이 없는데 애는 낳았고
먹은게 없어서 젖은 안나오고
월세를 못내서 거리에 나앉고
지나갔으니 이야기 하지만 참 처절했어요
인간이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자괴감에
당시 자살이라는 것도 생각 했지만
우리 아내와 아이를 두고는 차마...
그래서 악착같이 살아내자는 마음에
면허를 따고 택시회사를 찾아갔어요
나중에는 2년이 지나면 와라
그때는 바로 뽑아 주겠다
근데 하루하루가 굶어죽을 판인데
어떻게 2년을 기다려요
그래서 당시 <차주택시>라고
차주가 택시를 하면 한명의 기사를
더 등록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아시는 분을 통해 그런 방식으로
겨우 택시를 시작할 수 있게 된거죠
그렇게 밥은 안굶고 살 수가 있었구요
아이에게 과자라도 사주는
아빠가 될 수 있었죠
나의 인생을 바꾸고 싶어
택시를 하면서 노동조합이라는 걸 알게 됬어요
노조활동을 하면서 노동법을 공부하게 되었구요
그렇게 노동법을 하면서 생각이 든게
내가 죽을 때까지 운전만 하고는
살 수 없지 않나 였어요
나도 내 인생을 바꿔야겠다
그리고 노동법을 공부하면서
내 인생을 바꿔보자 생각 했죠
붙었을 때는 정말 최고로 좋았어요
아들났을 때 다음으로
뭔가 인생의 둘째를 나은 느낌이랄까요?
집사람하고 둘이 한참을 울었죠
너무 좋아서
사무실을 냈어요. 노무사사무실
그렇게 1년을 살다가 신림동으로 들어갔죠
아직 꿈이 남았던 거에요
공부로 나의 인생을 바꿔보고 싶다는
그리고 더 나이들면 못할 것 같기도 했구요
그때는 소년원에 있던 기억에 더
절실해 졌던 것 같아요
노무사보다 사법시험을 패스하는게
왜냐하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모습들을
직접 봤었으니까
그런 친구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컷죠
그렇게 독학으로 사법시험을 공부 했어요
억지로 빚내가면서 했는데
2년 동안 두 번 다 실패를 했죠
노무사 구건서
1997년에 <노동법 날치기 통과>라는 사건이 있었어요
이후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하는 바람에
재개정을 해야 되는 상황이 된 거에요
저는 당시 노동법에 대한
전문서적을 출판하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날치기로 통과된
노동법이었던 거죠
14일 만에 700페이지짜리 책을 만들었어요
정말이지 열흘동안 잠 한숨 안자고 만들었죠
그런데 책을 내니까 바로 다음날
노동자 총파업으로 여야가 재개정에 합의를 결정하는 거에요
그러면 결국 제 책은 필요없게 된 거 잖아요
난 참 되는일이 없어라고 생각하며
씁쓸해 하고 있는데
의외로 역전타가 날아오게 된거죠
노동부가 챙피하니까 날치기 통과한 법을 다 없애 버렸어요
그러니까 두달 동안 이 나라에 노동법이 없어진 거에요
결국, 노사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기업에서 난리가 난거죠
노동자들은 파업을 하고 있고
노동법은 통과가 됐다는데
근거가 되는 법 내용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러면 개정전 노동법을 정리한 내용이라도 가져와봐
그렇게 해서 제 책이 많이 팔리게 된 거에요
아무런 자료가 없으니까
그렇게 4개월 동안은 완전 독점이었죠
그리고 97년 3월 달에 재개정이 됐는데
조항이 많지 않아서 한 70페이지를 바꾸니까
제 책은 새 개정판이 되더라구요
그정도면 하루나 이틀이면 바꿀 수 있으니까
저는 이틀만에 또 새로운 책이 나올 수 있는 거죠
다른 사람들은 이제 분석하고 출판을 해야 되니
저는 어부지리로 선점의 효과를
톡톡히 누린 셈이구요
정말 감사할 따름이에요
그때 이후 일들이 자리잡혀서
지금까지 그게 이어지고 있구요
한창 바쁠때는 전국으로 하루 3~4군데씩 다니면서
헬기까지 보내주셔서 타고 다니기도 했죠
내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물론 이 모든게 하루 아침에 된 건 아니지만
하루하루를 절실함으로 살아가다 보니
저에게도 그런 기회가 찾아 오더라구요
그렇게 잘 해내고 있다가 병이 도진게 2002년인가
품어왔던 사법시험이라는 꿈을 이뤄보자
2년 동안 홍천에 가서 틀어박혀서 공부를 했어요
그런데 또 안됐어
죽어라고 했는데도 그건 안되더라구요
많은 고민을 하곤 이젠 전략을 바꿨죠
사법시험이 안되면 법학박사라도 하자
그래서 나이50이 넘어서 검정고시를 봤어요
중학교 중퇴면 대학을 못들어 가니까
2005년도에 검정고시를 본 거에요
이후에 대학, 대학원을 거쳐서
2018년 2월 박사를 받았습니다
꿈은 무한상상
저는 꿈이란 무한 상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지금이라는 현실에 갇히는게 아니라
미래로 나를 초대할 수 있는 것이죠
꿈을 이루느냐 못 이루느냐는
그 다음 문제에요
문제를 먼저 풀기위해 현재를 막으면 안됩니다
우리의 인생은 공평하게 하나만 주어져 있죠
그 하나밖에 없는 인생을
남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으로 온전히 채워갔으면 좋겠어요
Q. 청년을 위한 DREAM 매뉴얼
인생에는 대리운전이 없어요
온전히 자가 운전일 뿐이죠
이왕 사는 인생
의미지게 살고 뭔가 가치있는 생으로
우리를 초대해야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