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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빈 Apr 04. 2021

어쩌면 하이라이트

후기 혹은 리뷰

최근 <윤스테이>와 <어쩌다 사장>을 보았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나른하고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윤스테이>에서는 손님들이 한국 음식을 먹으며 “와, 나 진짜 행복해” 라고 말하는 장면이 좋았다. 누군가 행복해하는 모습이 내 안을 몽글몽글하게 만드는구나 라고 느꼈다. 기분 좋아하는 에너지가 전달된다는 느낌이랄까. 


얼마 전 본 <어쩌다 사장>에서는 뭉클함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화면 안의 배우들은 ‘이젠 안녕’에 이어 ‘아주 오래된 연인들’을 들으며 추억을 곱씹고 함께 왁자하게 웃었다. 이런 뭉클함을 예전에도 느낀 적이 있을 텐데? 내 마음은 어느새 작년의 기억으로 움직였다. 


작년 가을과 겨울의 나는 카카오 프로젝트 <내 인생의 책 100권>에 도전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냥 좋아하는 책을 매일 한 권씩 올리면 되겠거니 하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인생책이라는 단어가 붙으니 그냥 좋아하는 책을 올리기에는 좀 애매한 감이 있었다. 이 책을 내 인생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한 번씩 스쳐갔다. 


작업하던 책의 마감이 다가오면서 나는 더욱 다급해졌다. 천천히 인생 책을 곱씹어 볼 여유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안되겠어! 카카오스토리에 올려놓았던 사진들을 뒤졌다. 책들이 몇 권 있었다. 만화책도 두 어 시리즈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나나>였다. <나나>야말로 내 인생책이지!    

  

‘카카오 프로젝트 28일차- 10월 4일’ 의 인증 글 

내게 연휴가 끝나간다는 것은 두 개의 마감을 끝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지쳐 가고 있는 나를 유쾌한 기억으로 달래본다. 인생 만화 나나. 한권이 나올 때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하던 기억도 떠오른다. 나나에는 두 밴드가 나오는데, 친구에게는 성당에서 밴드를 한 경험이 있어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몇 년 전 동네 만화카페에서 동네 친구와 함께 나나를 다시 보며 인증샷까지 찍어두었네#인생책백권#스물여덟번째     


신이 나서 위와 같이 올렸는데, 다음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다른 분이 <나나>에 대한 글을 올리셨다. 나의 흥겨운 일기 같은 글이 부끄러울 만큼 멋진 서평이었다. 

그 분은 나나에서 블래스트* 라는 그룹이 라이브를 마치고 나나와 하치(두 여자주인공)의 집에서 축하파티를 하는 장면이 가장 좋았다고 썼다. “소중한 사람들과 기쁜 일을 축하하며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는 시간이[....] 인생의 하이라이트” 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 내 인증 글에 나오듯 일본 만화 나나에는 두 락밴드가 등장한다. 그 중 하나가 블래스트다.   

  

<윤스테이>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손님들, <어쩌다 사장>에서 함께 일하고 저녁 식사를 하는 배우들. 어쩌면 그들에게 그 순간이 인생의 하이라이트였을지도 모른다.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하이라이트’를 검색해 보면 두 가지 뜻이 나온다. 1. 스포츠나 연극, 영화 따위에서 가장 두드러지거나 흥미 있는 장면. 2. 미술, 그림이나 사진 따위에서 가장 밝게 보이는 부분. 


누군가의 인생에서 가장 흥미 있고 즐거워 보이는 장면, 그래서 가장 밝게 빛나 보이는 부분이 바로 하이라이트인 것이다. 맘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 즐기는 것. 깊은 속내를 털어놓으며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는 것. 우리는 이런 순간을 위해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또 이런 순간들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인생의 하이라이트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글을 읽고, 누군가의 하이라이트일지 모르는 장면을 본다. 가끔 나의 하루에는 어둡고 불안하고 답답한 시간이 끼어든다. 이런 시간은 나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부터도 오지만 한편으로 나 자신에게서 비롯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목표를 세우지만 잘 지켜지지 않을 때. 이럴 때도 속상하다. 브런치에 매주 글을 업로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지난주만 해도 지키지 못했다. 이 글을 올릴 생각이었는데 좀처럼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마감 그리고 또 마감에 쫓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난 브런치는 무리인 건가? 매주 업로드라니 나 같은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거야.......나를 탓하고 나무랐다.  

    

그러다가 다시 고쳐서 생각한다. 매주 올리지 못해도 괜찮아. 조금, 아니, 많이 모자란 글이라도 괜찮아. 하고 싶은 일이라면 조금씩 천천히 해보자. 나를 다독이며 생각한다. 혼자만의 부질없어 보이는 노력으로도 나는 더 밝고 즐거운 곳으로 가고 있다고. 혼자 속상해하고 발을 동동 구르는 시간이 있기에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자리가 인생의 더욱 값진 때, 하이라이트가 되는 것이라고. “행복이란 수많은 NG 끝에 오는 한 컷” 이라는 노랫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지금 당장은 NG라고 느껴도 괜찮다. 그런 순간 끝에 하이라이트가 오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때는 NG 같았어도 돌아보면 NG가 아니었던 경우도 있더라고. 한 번씩 주문처럼 나 자신에게 ‘괜찮아’ 라는 말을 한다. 어쩌면 하이라이트로 가고 있다는 믿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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