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페이지 다시 읽기(2013년 편)
모닝페이지를 아시나요? 전 오래전부터 모닝페이지를 썼습니다. 그동안 쓴 기록을 더하면 10년은 족히 넘겠네요. 모닝페이지를 10년 넘게 썼다고 하면 무척 성실한 사람이거나,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전 상당히 변덕스럽고 감정 기복도 심한 편이라 묵묵하고 성실하게 버티는 거랑은 거리가 멉니다. 프리랜서라 생활 패턴이 규칙적인 편도 아니고요. 한 치 앞을 모르는 예측불허의 일정에 허덕이면서 차차 적응하는 중입니다. 이런 불안정함이야말로 프리랜서의 숙명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 제가 매일 아침 비슷한 시간(대략 네 시 반에서 다섯 시)에 일어나 모닝페이지를 쓴답니다. 한 번씩 왜 모닝페이지를 쓰느냐는 질문을 받는데요. 답은 간단합니다. 모닝페이지를 쓰는 게 좋기 때문입니다.
모닝페이지라는 말을 처음 알게 된 건 어언 20년 전, 줄리아 카메론의 <아주 특별한 즐거움>이라는 책에서였죠. 그때 전 책의 앞날개에 실린 작가의 사진을 보고 매료되었습니다. 무척 당당하고 자유롭고 멋져 보였어요. 그녀를 닮고 싶었습니다. 모닝페이지를 써 보기로 했죠.
‘이걸 계속 쓰면 나도 조금은 멋진 사람이 되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모닝페이지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은 아니지만, 꾸준히 모닝페이지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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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페이지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아침에 일어나서 떠오르는 생각을 노트 세 쪽에 걸쳐 쓰는 것을 말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그날 마실 차를 준비하고 마음에 드는 플레이리스트를 켭니다. 그리고 모닝페이지를 쓰기 시작하죠.
오늘은 주로 꿈 이야기를 썼습니다. 꿈에 아빠가 나오셨는데요. 아빠의 가방에 분홍색 물건들이 가득 들어 있는데 아빠가 참 정리를 잘해놓으셨더라고요. 그래서 감탄하는 꿈이었습니다.
언젠가는 ‘그래서 그런 꿈을 꿨구나’ 하고 알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굳이 알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알고 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몇 년 후 모닝페이지에서 오늘 쓴 부분을 다시 읽으며 전 아마 피식 웃을 겁니다. 그래, 맞아. 그때 그런 꿈을 꿨지.
모닝페이지를 쓰고 난 다음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오늘은 과제를 해야 해서 일은 쉬기로 합니다. 아, 뭘 써야 하지? 이 이야기를 쓰려면 이런 배경설명이 필요한데? 오늘 아침까지도 뭘 써야 하나 막막해하다가 문득 2013년에 쓴 기록의 한 구절을 풀어보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K를 만났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이 사람이 내게 중요해질 거라는 예감, foresight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라는 거. 곧 헤어질 거라는 foresight도. 그럼 정을 덜 주거나 더 잘해주거나 했을 텐데. 나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건 hindsight뿐이다. - 2013년 6월 28일 모닝페이지 중에서
2013년의 제게 중요한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과 금방 헤어졌던 모양입니다(세상 남일 모드). 지금도 기억은 나지만 글쎄요......,,,당시에는 중요했었던 모양이지요. 인용한 구절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foresight과 hindsight이라는 단어입니다.
foresight은 선견지명 정도로 풀이할 수 있을 듯하고, hindsight은....... 후견지명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위의 문단을 새삼 고쳐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모닝페이지가 앞으로 내게 중요해질 것이라는 예감 foresight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더 열심히 기록하고 정리하고 했을 텐데. 나처럼 평범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건 hindsight 뿐이다.
지나고 나서야 의미를 알게 되는 일들이 제법 많습니다.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으레 떠오르는 책이 있는데요. 티나 실리그의 <스무 살에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도 후견지명과 비슷한 개념이 등장하거든요.
살면서 어떤 일을 겪을 때는 잘 모르다가 나중에 뒤돌아보았을 때 그 의미를 갑자기 분명하게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랜디 코미사르는 자기가 밟아온 길들이, 앞 유리가 아니라 백미러를 통해서 바라보았을 때 더욱 분명하게 이해된다고 말한다.
전 왜 오래 전 줄리아 카메론이라는 작가에게 끌렸을까요? 어쩌면 모닝페이지를 쓰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때의 전 20여 년이 지난 후 그 만남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을지 전혀 몰랐지만요.
우연히 떠올라 의미를 알게 되는 일도 물론 멋집니다. 하지만 모닝페이지를 쓰면 스스로 자기가 밟아온 길들의 자취를 하나하나 남기게 됩니다. 백미러를 통해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작년과 올해에 걸쳐 책 두 권을 연달아 작업하는 행운을 누리고 있는데요. 이런 행운 속에서 글쓰기를 배우는 즐거움까지 얻을 수 있다니 무척 감사하지만....... 계속 허우적거리는 느낌에 아쉽기도 합니다. 나 자신의 중심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기도 하고요.
나 자신의 중심이라니? 저한테는 저와 소통이 잘 되고 있다는 느낌이 참 중요합니다. 모닝페이지를 쓰면서 저 자신에게 묻곤 합니다. 너, 잘 살고 있어? 지금 괜찮은 거지? 몸이든 마음이든 너무 아프거나 힘들지는 않고?
힘들다고 쓰고, 힘들지만 잘해보겠다고 쓰고, 잘 못해도 괜찮다고, 그냥 할 수 있는 만큼 하자고 씁니다. 내가 애쓰고 있다는 것을 나만은 알고 있다. 이런 문장을 쓰기도 했어요. 매일같이 소소하게 저를 돌보고 챙기려고 노력합니다.
제게는 열 권 남짓한 모닝페이지 노트가 있습니다. 모닝페이지 노트는 제게 자기 챙김의 기록이자 백미러를 통해 바라보는 풍경이 되겠네요. 요즘 ‘내가 살아오면서 이렇게 바쁘고 쫓긴 적이 있었던가’ 싶었는데요. 2013년의 제가 그랬더라고요.
그때 전 출판 번역을 시작하고, 공동 번역 모임 대표를 하고, 또 다른 기획 스터디에 참여했습니다. 지금도 일에 과제에 얼마 전 시작한 운동에 정신이 없네요.
하지만 2013년과 2022년의 제가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 그땐 바쁘고 힘들면 모닝페이지를 번번이 놓았어요. 한 달 이상 못 쓴 적도 있더라고요. 잠을 설치기도 했고 많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뭐, 요새도 근육통은 있습니다만 그래도 푹 잔답니다. 아무리 일이 밀리고 과제를 못 했더라도 일단 푹 자요.
제가 일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푹 자는 것이랍니다. 왜냐고요? 그래야 모닝페이지를 쓸 수 있으니까요. 모닝페이지를 쓰면서 저의 안부를 묻고, 화나거나 속상한 일이 있으면 잘 들어주고, 그래 힘들었겠다 하면서 맞장구도 쳐줍니다. 누군가를 부러워하거나 시기하게 될 땐 넌 오늘을 충실히 살고 있지 않느냐고, 잘하고 있다고 격려도 해 주고요.
하소연도 하고 위로도 받으면서 에너지를 충전합니다. 충전한 에너지로 글도 쓰고 일도 하고 운동도 하러 갑니다. 줄리아 카메론처럼 자유롭고 당당하고 멋진 사람은 못 될지라도 오늘도 모닝페이지를 씁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으로요.
앞으로 얼마나 꾸준히 모닝페이지를 쓸지 모르겠습니다. 중간에 또 끊길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이 역시 걱정은 되지 않습니다. 다시 돌아올 테니까요, 이 노트들이 제게 있는 한.
저는 지난날의 모닝페이지를 읽는 걸 정말 좋아한답니다. 저 자신이 초라하고 한심하게 느껴질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지. 나는 꼬박꼬박 기록을 남기려고 애쓰는 사람이야. 이런 자각은 갈팡질팡하는 저를 붙잡아주는 버팀목입니다.
모닝페이지, 한 번 써 보시지 않을래요? 꼭 모닝이 아니어도 됩니다. 세 페이지를 다 쓰지 않아도 되고요. 모닝페이지를 쓰면서 나 자신에게 ‘요새 넌 어떻게 지내니?’라고 물어보시면 어떨까요? 내겐 참 소중하지만 일상에 치여서 한동안 못 만난 친구에게 안부를 묻듯이요.
꼭 내일 아침이 아니어도 괜찮겠습니다. 언젠가 한 번 문득 “모닝페이지 한 번 써볼까? 그거 좋다던데”하는 마음이어도 좋겠고요. 매일 아침 모닝페이지를 마칠 때마다 전 이렇게 쓴답니다. 이 글도 모닝페이지와 똑같이 마칠까 해요.
자, 오늘도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