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빈 Feb 09. 2022

True Color

모닝페이지 다시 읽기 2017년 편


모닝페이지에 가장 많이 나온 내용은 목표와 결심이다. 다시 읽을 때 가장 지루하면서 안타까운 부분이기도 했다. 무슨 목표를 잔뜩 세워놓고 맨날 지키지도 못하고 바보야!      


나중에는 목표를 주렁주렁 늘어놓은 부분은 읽지 않고 건너뛰기도 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고, 하나라도 제대로 지켜보자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 하나가 바로 모닝페이지다.      


2015년 1월 1일, 나는 “올해는 일단 모닝페이지를 열심히 써보기로 한다. 나와의 대화가 가장 중요하다”라고 썼다. 그리고 2년 후인 2017년 1월에는 “내 인생 최대의 바람직함은 모닝페이지를 쓰는 습관이 아닐까. 꼬박꼬박 쓰기까지 13- 14년이 걸렸다”라고 썼다. 이렇게 나는 하나의 습관을 완성했다.    

  

모닝페이지와 관련해 만들고 싶은 또 하나의 습관이 있었다. 지난 모닝페이지를 읽고 정리해 글을 쓰는 것이다. 모닝페이지를 주제로 글을 쓰면서 이 습관에도 차츰 익숙해지는 중이다. 


읽다 보니 시기마다 되풀이되는 주제가 있고, 그 주제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연결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17년의 내게 중요한 말은 ‘true color’였다. 2010년 어느 강의에서 한 선생님께 들은 표현이었다.    

  

선생님이 하신 true color라는 말. 자기가 힘들 때 true color가 나온다. 만신창이라고 느낀 당시의 나로서는 뼈아픈 이야기였다. 지금은 선생님 말씀에 동의함. 한 가지 덧붙이자면 그때의 true color가 지금에도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 2017년 3월 13일 모닝페이지 중에서


2010년 2학기를 맞은 수업에서 나를 비롯한 동기들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과제와 막중한 부담감에 지쳐 있었다. 유난히 예민한 나는 번번이 불면증에 시달렸고 2010년 생일에는 병원에서 링겔로 수면제를 맞았다.    

  

그러니 나 자신을 ‘만신창이’ 라고까지 느꼈던 모양인데 아침부터 과격한 표현과 과잉 감성을 쏟아내시는 나를 보니........ 지금의 나는 그냥 웃지요.    

  

힘들 때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 나온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10여 년 전의 나에게는 참 아팠다. 힘들 때 잘 버티지 못해 허우적거리고 있었고, 그런 나 자신에게 실망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의 나는 목표로 삼은 일을 잘 해내지 못했다는 사실, 동료들에 비해 내 실력이 한참 못 미친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괴로웠다.  

    

마구 괴로워하며 내적 몸부림을 겪고 있는데 그런 내 모습이 ‘true color다, 본색이다, 진정한 모습이다’라고 하시니 쓰라리게 들렸을 법도 하다.

      

하지만 2017년 모닝페이지에서 나는 한 마디 덧붙였다. 당시의 모습이 지금에도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고. 그로부터 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힘들 때 드러나는 내 진짜 모습은 많이 달라졌을까?  

   

적어도 만신창이까지는 아니지 않을까 싶다. 아니, 만신창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어도 예전처럼 괴로워하지는 않는다. 뭐, 그럴 땐 그냥 누워서 좀 쉬거나 걸으면서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한다.     


많이 힘들고 지쳤다는 신호인 셈이니 일단 회복에 집중한다. 그러면서 중얼중얼한다. 목표한 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아. 어차피 목표란 수정하라고 있는 거 아냐? 한 번에 바로 이루어지고 다 잘 되면 무슨 재미야. 

     

주변 사람들에 비해 내 실력이 부족하다고? 어차피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늘 존재하게 마련인걸.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 그 때 그 때 할 수 있는 만큼만. 어쩌면 그보다 아주 조금만 더. 이런 식으로 혹독하거나 버거운 순간은 지나가고 나는 다시 몸을 일으킨다.     


오래 전 나는 힘든 시기를 이겨내지 못하는 나 자신이 실망스러웠고, 이를 정면으로 지적하는 선생님의 말씀에 속이 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그때 내 진짜 모습이란 그 정도였나 보다’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렇다고 과거의 내가 마냥 한심하고 모자랐다고 탓하고 싶지만은 않다. 그보다 그땐 힘든 상황을 버텨내는 힘이 부족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이 힘이란 아주 중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닝페이지에 이런 말을 적기도 했다.      


힘들고 못 견딜 것 같을 때 한 걸음 내 딛는 게 그 사람의 힘이다. 근성. true color. 그 말을 들었을 땐 내 본연의 모습을 단련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 2016년 10월 30일 모닝페이지 중에서     


그 무렵의 나는 한창 위와 같은 고민을 했던 듯하다. 지금으로 말할 것 같으면 본연의 모습 같은 데 골몰했던 시기도 있었구나 싶다. ‘어? true color라는 개념에 빠졌던 것 같은데? 이 말이 자꾸 나오네.’ 싶기도 하고.      

지금은 본연의 모습을 단련하고 어쩌고 하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나를 괴롭히던 본연의 나 자신 운운 하는 문제가 지나가 버렸다. 어떻게 지나간 걸까? 시간이 흐르면서 저절로 없어진 걸까?     


얼마 전 청소년 소설을 추천해 달라는 SNS의 질문을 보고 떠오른 책이 있었다. 제목마저 상쾌한 <한 순간 바람이 되어라> 라는 책이다. 

     

고등학교 육상부 학생들이 바람처럼 자유롭게 그 무엇도 거칠 게 없는 듯이 달리는 이야기다. 무엇도 거칠 게 없는 듯 보이긴 하지만 달리는 청춘들에게도 분하고 괴로운 일들은 있게 마련.     

 

“너, 그래서는 강해질 수 없어.”

나는 배에 힘을 주고 가기야마를 노려보았다. 

“고교에서 육상을 하다보면 대부분의 시간을 분한 마음으로 보내게 마련이야. 시합에 지고 훈련은 마음대로 안 되고 남들은 나보다 강해지고 어딜 다치기도 하고. 9할의 시간이 분한 기분이야. 

내가 나가지 못하는 시합을 지켜보는 일은 괴로워. 하지만 그런 상황을 회피하는 것과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건 전혀 달라. 그 분한 마음을 꼭꼭 씹어 새기면 에너지가 되지 않겠냐? 그 에너지가 훈련이나 다음 시합에 힘이 되지 않겠어? 정말로 분하면 다음에는 절대로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겠지? 그렇게 해서 점점 좋은 선수가 된다고 본다.”    

 

압박이 심한 시기를 이겨내지 못하는 나를 지켜보는 일, 목표로 삼은 바를 지키지 못하는 나를 지켜보는 일 역시 괴롭다. 하지만 분한 마음을 꼭꼭 씹어 새기면 에너지가 된다고 한다.


나의 속상하고 분한 마음이 몇 년 후 아침 모닝페이지에서 흘러나왔다. 그때의 나를 돌아보며 다짐했다. 앞으로는 버거운 상황이든 감정이든 더 씩씩하게 받아들이자고. 그러면서 본연의 모습을 단련시켜 보자고.  

    

조금씩 더 나은 내가 되려고 노력한다. 가끔은 노력했다는 사실마저 잊기도 하지만 다행이지 뭐야, 모닝페이지는 기억하고 있으니.      


이 글을 쓰는 지금 문득 떠오르는 생각은, 하루하루 쓰는 모닝페이지가 바로 내 true color 아닐까 하는 것. 


이렇게 모닝페이지에 또 하나의 의미 부여가 추가되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안부를 묻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