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별 사이, 어딘가

모닝페이지 다시 읽기-2014년 편

by 루빈

2014년 11월 10일, 나는 모닝페이지에 인터스텔라를 보고 느낀 감상을 적어놓았다. 잔뜩 흥분해서 휘갈겨 놓았다는 쪽에 가깝겠다.


이를테면 ‘매튜가 블랙홀에 갇힌 장면’을 보고 심장 터질 뻔했다고 적었다. (검색을 하다가 블랙홀이 아니라 테세렉트라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 당시의 휘갈김을 있는 그대로 옮겨본다.


새삼 영화의 힘을 느꼈음. 입추의 여지 없이 꽉 찬 관객들과 모두가....... 심장을 죄어드는 듯한 긴장감, 그런 느낌이었음.

테세렉트? 우주 속 미지의 공간에 갇힌 쿠퍼.


이 표현을 2022년의 나로서 이해해 보는 것이 이 글의 숙제겠다. 숙제를 하기 위해 넷플릭스로 <인터스텔라>를 다시 보았다. 나를 심장 터질 뻔하게 했던 장면에 이르자 모닝페이지에 왜 영화의 힘을 느꼈다고 썼는지 짐작이 갔다.

시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자신과 같다는 가정하에 시각적, 청각적, 후각적, 촉각적 이미지를 다듬고, 그것을 통해서 독자들의 가슴 속에 자신이 경험한 것과 가까운 정서적 느낌을 불러일으키려 애쓴다. 그들이 시를 쓰는 목적이 그것이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말을 빌자면, “다른 누군가의 내부에 자신과 유사한 상태의 존재를 세우는 것”이다 - <생각의 탄생> 중에서


나는 폴 발레리와 같은 시인이 하는 일을 <인터스텔라>의 테세렉트 장면이 해냈다고 느꼈다. 우주에서 미지의 공간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주인공 쿠퍼의 눈에 과거 속 한 화면이 보인다.


그 화면 속에서 쿠퍼는 우주로 떠나기로 한 날의 자신을 본다. 쿠퍼 옆에는 가지 말라고 간절하게 청하는 딸 머피가 있다. 쿠퍼는 그의 지난날을 보며, 지난날 속의 딸에게 제발 자기를 떠나보내지 말라고, 붙잡으라고 간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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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머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쿠퍼는 기어이 등을 돌리고 그런 과거의 자신을 보면서 우주 속 쿠퍼는 가지 말라고 절규한다.


우주의 낯선 공간에 갇혀서 과거의 선택을 되돌아보며 눈물을 흘리는 쿠퍼의 모습은 2022년의 내가 보기에도 안타깝고 가슴이 죄어드는 것 같은 괴로움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다.


내가 느낀 감정이 영화 속에서 말하려는 바와 가까운 정서적 느낌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독자, 아니, 관객의 마음속에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것이야말로 시인이든 영화감독이든 어떤 예술가든 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H라는 친구에게 인터스텔라가 너무 좋았다고 신이 나서 이야기하며 예의 내게 가장 강렬했던 장면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다 자못 진지하게 이런 질문에 대해 논하게 되었다. ‘미래의 내가 과거의 어긋난 순간을 마주한다면 다시 과거로 돌아가 그 순간을 바로잡겠는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겠다. 미래의 내가 어려움에 처한다. 그런데 어려움에 처한 내가 그 시작 부분이 되는 과거의 한 순간을 보게 된다. 나는 과거의 나에게 ‘지금 네가 하려는 그 행동을 하지 마. 그렇게 하면 넌 힘들어질 거야’라고 이야기할까?’

친구와 나의 결론은 같았다. 우리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유 역시 비슷했다. (불행한) 결과를 알고 있는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충고를 해서 나를 후회하게 만들 어떤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나다.


어떤 한 선택을 고친다고 해서 내가 앞으로 후회를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 어떤 어려움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같은 것은 없지 않은가. 그러니 억지로 어떤 순간을 고치려 들기보다 그냥 나로서 나답게 살아가고자 한다.


2. 어차피 나는 나일 뿐이니 ‘반성은 하되 후회는 하지 않는다’라는 마음으로 꽤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나의 마음에 들지 않는 점에 대해 깊이 곱씹으며 괴로워하는 편이라 ‘후회하지 마. 이미 지난 일이야. 지금 고칠 수 있는 걸 고쳐’라고 스스로 당부하곤 했다.


그렇게 살아온 내게 얼마 전 후회할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겼다. H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H는 백혈병에 걸렸고 사망할 가능성도 있는 병인데 나는 왜 진작 H를 찾아가 보지 않았을까? 11월 초에 떠난 그 애가 10월 말에 걸어 온 전화를 왜 받지 못했을까?


왜 나는 진작 H와 이런저런 것들을 더 많이 하지 않았을까?............ 애써 닫아두었던 후회의 문이 열리자 시도 때도 없이 후회가 밀려왔다.

그렇게 후회에 질질 끌려다니다 문득 이런 상상에 이르렀다. H와 나는 영영 다시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그냥 우리는 다른 차원에 있는 것뿐이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H가 한 번쯤 내게도 다녀갔을지도 모른다.


마치 우주의 낯선 차원에서 과거의 딸 머피를 바라보고 있는 쿠퍼처럼 H도 지구에 남겨둔 사람들을 지켜보았을 것만 같았다. 과거 속에 머피와 나란히 앉아 있는 자신을 보고 쿠퍼는 안타까워했지만 H는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H답게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자신만의 재미를 찾아 몰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 애라면 충분히 지금쯤 뭔가 다른 재미나 다른 도전을 찾고 있을 것도 같다.

모닝페이지를 비롯한 과거의 기록 속에서 H의 이름을 접하면 한동안 나는 이런저런 후회가 들 것 같다. H를 위해 준비해온 선물도 주지 못했고 함께 했던 계획도 이루지 못했으니 말이다.


늘 같이 있지는 않더라도 오래 먼 길을 함께 갈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불쑥 떠나버렸다. 말도 안 되는 일이란 없어. 아직 30, 40년은 더 볼 것이라고 믿을 사람이 갑자기 떠날 수도 있는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지난 추억을 들춰보고 우리가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이렇게 글이라도 한 편 써 보는 것.


아직은 서툰 글솜씨라고 해도 어떻게든 갈고 닦으면서 그 애가 내게 전한 것을 세상에 좀 더 알리고 싶다는 소망을 품어본다. 이 소망만큼은 이룰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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