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ue color, 나의 참모습

모닝페이지 다시 읽기- 2017년 편

by 루빈

요즘은 저녁마다 조금씩이라도 모닝페이지를 읽는다. 읽다 보니 시기마다 되풀이되는 주제가 있다는 것, 그 주제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연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쓸 때의 나는 느끼지 못했을 것이나 시간이 흐르며 하나의 방향으로 모이고 있다는 점이 신기하다.


2017년의 나에게 중요한 말은 ‘true color’였다. 2010년 번역 관련 강의를 수강할 때 접한 말이다.


선생님이 쓰신 true color라는 말, 자기가 힘들 때 true color가 나온다. 만신창이라고 느낀 당시의 나로서는 뼈아픈 이야기였다. 지금은 선생님 말씀에 동의함. 한 가지 덧붙이자면 그때의 true color가 지금에도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 2017년 3월 13일


2010년 2학기째를 맞은 수업에서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동기들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과제와 막중한 부담감에 지쳐 있었다. 유난히 예민한 나는 번번이 불면증에 시달렸고, 2010년 생일에는 병원에서 링겔로 수면제를 맞고 있었다.


그러니 나 자신을 ‘만신창이’라고까지 느꼈던 모양인데 아침부터 과격한 표현과 과잉 감성을 쏟아내는 나를 보니........ 지금의 나는 그냥 웃지요.


연초부터 참여하게 된 모임 단톡방에서 멘탈이 세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멘탈이 세지는 비결 같은 것은 따로 없다고 했다.


멘탈이 흔들릴(멘탈이 나갈?) 만한 일을 겪으면서 강해진다는 것이다. 힘들었던 시기에 그저 ‘오늘을 산다’는 느낌으로 하루하루 살아내셨다는 분도 있었다.


뒤늦게 단톡방에 올라온 이야기들을 읽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2007년의 내가 두루뭉술한 걱정이나 불안에 휩싸이지 않고 그저 그날그날을 살아냈으면 어땠을까. 그냥 하루하루 내 앞에 놓인 일을 하면서.


나에게 닥쳤던 어려움 앞에 꿋꿋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내가 못나게 느껴졌다. 만신창이나 되고 약이나 먹었던 내가.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이런 사람이 나다. 어쩌면 난 평생 멘탈이 강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험난한 일을 겪더라도 말이다.


또 펑펑 울고 다시 약의 힘을 빌리고 비겁하게 도망이나 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다. 나 혼자만 읽는 글이 될지 몰라도(뭐, 어차피 모닝페이지는 혼자 읽는다) 나는 계속 빈 종이에, 빈 화면에 뭐라고 주절거릴 것이다.


나의 true color가 한참 모자라고 별로라고 느껴서 괴로워하던 경험도 어느 날의 글에서 흘러나온다. 내 true color는 어떻지? 어떻게 하면 내 진짜 모습이 내 맘에 들게 할 수 있지?


글을 쓰다 보니 알 것 같다. 본모습을 억지로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그저 나로서 하루하루 살아내는 수밖에 없다. 좀 겁쟁이 같아도, 어떤 날은 마구 바보 같아도, 어떤 날의 나는 안쓰러워지고 또 다른 날의 나는 좀 싫어지더라도.


하지만 나의 본모습이 어떤 방향으로 가면 좋겠는지 그려보는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정현종 시인의 시,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에서 그 실마리를 엿본다.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정현종

그래 살아 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 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 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


힘들어하는 학생들 앞에서 ‘사람은 힘들 때 true color가 나온다’라고 하신 선생님(참고로 선생님은 영어가 더 편하신 분이고, 수업은 주로 영어로 진행되었다)의 말씀은 ‘지금 좀 힘들더라도 딛고 일어서야 한다’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지금은 선생님의 마음을 가늠해 보지만 15여 년 전의 나는 선생님의 말씀에 담긴 격려를 읽지 못하고 상처만 잔뜩 받았다. 참으로 철이 없었구나 싶다가도 ‘그렇게 철이 없고 상처받은 덕분에(?) true color의 의미를 자근자근 씹을 수 있게 되었다’ 싶기도 하다.


10년 후에는 오늘의 글을 어떻게 읽을까? ‘True color 같은 소리 하네’ 하고 비꼴지도 모르겠다. ‘10년 전, 20년 전의 나는 좀 귀여웠군’ 하며 큭큭댈지도 모른다. 실제로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도 모닝페이지를 쓰고 다시 읽는 나였으면 좋겠다. 예전의 나, 지금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은 내게 소중하니까.


이 소중함을 붙들고 간다면, 모닝페이지라는 루틴을 놓지 않는다면, 흔들릴 때 나를 잡아줄 단단한 밧줄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오늘도 밧줄 한 가닥을 엮었다. 내일 또 한 가닥, 다음날 또 한 가닥. 그렇게 한 가닥씩 엮으면서 살아가고 싶다.


2017.JPG 밧줄이 나온 사진을 찾다가 발견한 영덕 블루로드 사진. 앞으로 걸어갈 길에 소나무와 바다가 어우러진다면 참 근사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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