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의 책들 3. 백의 그림자
오늘 추천할 책은 황정은의 <백의 그림자>다. 5년 전쯤인가 단 한 권의 한국소설을 추천한다면 이 소설이다, 라고 자못 진지하게 말했던 것도 같다. 어지간히도 좋았던 모양이다. 아름답고 슬프고 또 따듯한 것 같은 <백의 그림자>를 아름답게, 효과적으로 설명할 재간 같은 것은 없기 때문에 그냥 이번에 특히 와 닿았던 장면을 자못 길게 올리는 것으로 나의 부족한 글재간을 대체해볼까 한다.
슬럼이 무슨 뜻인지 아나요?
은교 씨는 슬럼이 무슨 뜻인지 아나요?
..... 가난하다는 뜻인가요?
나는 사전을 찾아봤어요.
뭐라고 되어 있던가요.
도시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구역, 하며 무재 씨가 나를 바라보았다.
이 부근이 슬럼이래요.
누가요?
신문이며, 사람들이.
슬럼?
좀 이상하죠?
이상해요.
슬럼.
슬럼.
하며 앉아 있다가 내가 말했다.
나는 슬럼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어도, 여기가 슬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요.
나야말로, 라고 무재 씨가 자세를 조금 바꿔 앉으며 말했다.
아버지가 여기서 난로를 팔았어요. 어렸을 때 어머니나 누나들하고 와 보면 멀리서부터 그가 가게 앞에 의자를 내어 두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우리가 오면 그는 어딘가로 사라졌다가 잠시 뒤에 나타나선 신문지에 싼 순대를 먹으라곤 내주곤 했어요. 나는 아버지 곁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길게 자른 순대를 베어 먹었고요. 손에 기름이 밴다고 순대 밑동에 신문지를 감아서 내어 주던 모습이나, 집으로 돌아갈 때 동전 몇 개를 쥐여주던 모습이 어제 본 것처럼 선명한데요. 지금 생각해 보면 장사를 어떻게 했을까 싶을 만큼 말도 서툴고 여러모로 서툰 점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함께 순대를 먹으며 앉아 있다가도 사람이 지나가면 슬쩍 일어나서 무엇을 찾느냐고, 뭐가 필요하냐고 말을 걸곤 했어요. 어린 마음에도 나는 이렇게 호객하는 아버지를 보는 것이 당황스럽고, 사람들이 그가 하는 말을 못 들은 척하며 지나가는 것이 싫어서 종종 울었거든요. 이유도 말하지 않고 우니까 못됐다고 혼도 많이 났지만 나는 그냥 속이 상했을 뿐이었고요. 이런 속을 모르고 혼을 내니까 더 속이 상해서 더 울고 더 혼이 나고, 하다 보면 아버지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있었어요. 그렇게까지 되고 보면 나는 더 울 수가 없어서 아버지 곁에서 그냥 서 있었고요. 돌아가신 지가 오래라 그런 기억이란 희미해질 법도 한데 도무지 그렇지가 않아서, 나는 이 부근을 그런 심정과는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가 없는데 슬럼이라느니, 라는 말을 들으면 뭔가 억울해지는 거예요. 차라리 그냥 가난하다고 하면 모를까, 슬럼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치 않은 듯해서 생각을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라고 무재 씨는 말했다.
언제고 밀어 버려야 할 구역인데, 누군가의 생계나 생활계라고 말하면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지니까 슬럼, 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그런 걸까요.
슬럼, 하고.
슬럼.
슬럼.
슬럼.
이상하죠.
이상하기도 하고.
조금 무섭기도 하고, 라고 말해 두고서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2. 그처럼 공허하기 때문에
마뜨료슈까는요, 라고 무재 씨가 강판에 무를 갈며 말했다.
속에 본래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알맹이랄 게 없어요. 마뜨료슈까 속에 마뜨료슈까가 있고 마뜨료슈까 속에 다시 마뜨료슈까가 있잖아요. 마뜨료슈까 속엔 언제나 마뜨료슈까, 실로 반복되고 있을 뿐이지 결국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있던 것이 부서져서 없어진 것이 아니고, 본래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뿐이죠.
무재 씨, 그건 공허한 이야기네요.
그처럼 공허하기 때문에 나는 저것이 사람 사는 것하고 어딘가 닮았다고 늘 생각해 왔어요.
라고 말하며 무재 씨는 주먹만 하게 줄어든 무를 쥔 손으로 마뜨료슈까를 가리켜 보였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그림자들을 목격하면서, 그런 생각을 조금씩 삼켜 왔다고나 할까, 점차로 물이 들었다고나 할까. 이를테면 이런 이야기도 있는 거예요. 나는 중학생이었을 무렵에 어머니하고 누나들과 외곽 동네에서 살았어요. 도로에서도 멀고 막다른 곳이라 사는 사람도 많지 않고, 어쩌다 길을 잘못 든 차들이 돌아 나가곤 할까, 사람의 왕래도 많지 않은 동네였어요. 우리가 사는 집 뒤쪽엔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박스를 줍는 할머니가 혼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다른 동네에서 거기까지 박스를 주우러 온 할아버지를 맞닥뜨려서, 다툼이 일어난 거예요. 뭔가 시끄러워서 나가 보니 대낮에 길 복판에서 박스와 넝마 몇 가지를 두고 고래고래 싸움이 벌어진 것이었어요. 나로선 듣도 보도 못한 욕설이 오가고 두 노인이 서로 격렬하게 저주하며 상대방의 손수레에서 넝마를 끄집어내 던지다가 할아버지는 가고 할머니는 남았거든요. 할머니가 분하고 원통하다고 가슴을 두드리며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나는 보았거든요. 능소화가 늘어진 콘크리트 블록 담 앞에서 그녀의 그림자가 엄청나게 부풀어 오른 머리를 그녀 쪽으로 기울이는 것을 나는 보았거든요. 그녀가 자신의 집으로 들어간 뒤에도 그 길엔 넝마가 실린 그녀의 손수레가 남아 있었어요. 한낮에 그걸 보고 나도 집으로 들어갔는데 해 질 무렵에 나와 보니 그대로 수레가 남아 있어서 어떻게 된 일일까 하고는 말았는데, 이 날 이 할머니가 돌아가신 거였어요. 마당에 넘어져 있는 그녀를 동네 사람들이 발견했어요. 지병 때문에 가슴이 굳은 것이라고 당시 어른들이 말했지만 나는 그들이 쉬쉬하며 수군거리는 것처럼, 그녀가 결국 그림자를 견디지 못해서 죽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자식들이 찾아와서 장례를 치르고 난 뒤로도 그녀의 손수레는 며칠이고 모퉁이에 남아 있었어요. 실린 것도 몇 가지 없이 박스 몇 개하고 스티로폼 조각하고 비닐 같은 것들이었는데 나는 그 앞에서 그것들을 들여다보며 이런 것들 때문에 죽는구나, 사람이 이런 것을 남기고 죽는구나, 생각하고 있다가 조그만 무언가에 옆구리를 베어 먹힌 듯한 심정이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에요.
3. 아픈 사정을 돌아보고 아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모르는 척 하지 않고’ 다가가서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가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조금이라도 긍정적이고 밝게 생각하려고 애쓰는 내가 있다. 두 가지는 꼭 따로 가는 사고방식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떨 때 나는 내 아픔에 짓눌리고 즐겁게 지내려는 의욕은 한 톨도 내지 못한 채 살아간다. 무엇이 더 나은 길인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조금씩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려고 노력하며 살아야겠지. 내 눈 앞의 일(들).
작가의 말: 여전히 난폭한 이 세계에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이 아직 몇 있으므로 세계가 그들에게 좀 덜 폭력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왔는데 이 세계는 진작부터 별로 거칠 것도 없다는 듯 그러고 있어 다만 곁에 있는 것으로 위로가 되길 바란다거나 하는 초자기애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다만 따뜻한 것을 조금 동원하고 싶었다. 밤길에 간 두 사람이 누군가 만나기를 소망한다. 모두 건강하고 건강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