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나 하자, 모닝페이지
기록 모임에는 모닝페이지를 쓰는 분도, 모닝페이지 인증을 하는 분도 있었다. 모닝페이지 인증 사진을 보다가 나도 모닝페이지 인증을 해볼까 싶었다. 일단 모닝페이지 인증의 맹점은 쓴 자체를 인증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글씨도 날림인데다 횡설수설에 가까우며 지나치게 사적인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 인증할 수는 없다.
그래서 사진을 찍은 다음 블러 처리를 해야 하고, 게다가 뭐라도 그 날의 한마디를 남기고 싶은 욕심에 글씨까지 덧입히려 하다 보니 꽤 귀찮은 작업이 되었다. 모닝페이지를 쓰면서도 ‘오늘은 어떤 한마디를 고르지?’하며 머리를 굴리게 된다.
그래도 장점도 있었는데 좀 더 성실하게 모닝페이지를 쓰게 된다. 빠지지 않음은 물론이거니와 내용도 좀 더 알맹이를 넣으려 한다. 사실 오늘 모닝페이지에만 해도 ‘모닝페이지 쓴 지 1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쓴다는 데 의의를 둔다니 제자리걸음 같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라는 식의 말을 썼던 터라.........
내가 생각하는 모닝페이지의 목적은 생각하지 않고 흘러나오는 대로 쓰는 것이기 때문에 가끔 쓸데없는 소리를 잔뜩 늘어놓는 것 같아도 어쩔 수 없다. 모닝페이지를 ‘글쓰기 명상’이라고 하는 말도 들었는데, 명상과 비슷한 수련을 하는 나로서는 수련과 모닝페이지가 한 가지 면에서는 닮아있다고 본다.
그 공통점은 바로(씩이나)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자아를 내려놓는 것이라고 해야 하나? 맥락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명상이든, 수련이든, 모닝페이지이든 마음 공부에서는 비워냄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니까 세 문단 앞에 쓴 ‘알맹이를 넣으려 한다’는 욕심은 실은 모닝페이지의 취지와는 멀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인증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라 모닝페이지에 괜히 힘이 들어간다는 역효과가 생겼던 건 아닌지.....
그럼에도 또 하나의 장점은 역시 기억과 기록이 남는다는 것이다. 모닝페이지 인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어제의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은 홍매화를 찍을 때였다’ 이다. 4월의 나에게는 한 가지 의식이 있다. 집 앞의 홍매화 사진을 찍는 것이다. 2018년 생일 우연히 사진을 찍기 시작해 5년간 이어온 의식이다.
이제 이사 와서 힘들어지지 않을까 싶은데, 기회가 된다면 생일 즈음 다시 신동백의 홍매화를 찍으러 가고 싶다. 아니면 이곳, 서판교에서 새로운 생일 무렵의 사진을 기획(?)해봐도 재미있지 않을까도 싶다.
쓰기만도 버거운 모닝페이지를 인증까지 해보았다. 한번 해보는 정도는 괜찮은데 앞으로 다시 하게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냥 모닝페이지를 꾸준히 쓰기나 했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계속 나와 대화하고 내 마음을 돌보며 살고 싶기 때문이다.
요새 유행처럼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은가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들려오기도 하는데, 나는 계속 모닝페이지를 쓰는 할머니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그럼 수우많을 노오트는 어떻게 하지? 난데없는 노트 처분 걱정과 함께 4월의 글을 마친다. 뭘 벌써 걱정해. 적당할 때 한 권씩 버리든가 하면 되지.
생일때마다 찍는 홍매화. 아름다운 계절에 태어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