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배낭여행족이 산다' 프롤로그
최근 이사를 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나와 아이는 지금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있어야 하지만, 그 계획이 출국 일주일 전에 무산되면서 새집을 찾아 나서야 했다. 살던 집의 계약은 이미 종료된 시점이어서 임시 거처에 잠시 머물다 출국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한순간에 집도 절도 없는 거지꼴이 된 우리는 천운이 따른 듯 다정한 동네 친구들이 있어 '일주일은 이 집 그다음은 저 집' 하며 훈훈한 유목민 정도로 그 꼴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었다. 한 달 정도 지났을까. 드디어 우리에게도 집이 생겼다.
산 넘어 산이라고, 집은 생겼는데 살림이 없었다. 가구도 물건도 대부분 정리한 터라 옷가지 몇 개 들고 집 나온 신세였다. 침대 대신 요를 구하고 식탁은 캠핑용으로 대체, 의자는 어디서 얻어 오고 없으면 안 될 물건들로만 집을 채웠다.
그러고 나니 방이 하나 텅 비었다. 아이와 나의 옷이 붙박이장에 모두 들어가게 되면서 그 흔한 '옷방'이란 게 사라졌기 때문이다. 고민이 시작됐다. 이곳을 무엇으로 채울까. 번뜩 생각이 났다.
아! '카우치서핑'!
약 십 년 전이다. 그러니까 남편도 없고 애도 없던 시절. 휴가를 내면 어디든 훨훨 떠날 수 있던 그 시절에 난 '카우치서핑'이라는 커뮤니티를 이용해 스페인 여행을 떠났다.
잘 수 있는 소파를 의미하는 '카우치(Couch)'와 파도를 탄다는 '서핑(Surfing)'의 합성어인 '카우치서핑'은 전 세계 여행자를 위한 숙박, 교류 커뮤니티이다. 호스트는 자신이 사는 집의 한 공간을 무료로 내어주고 게스트는 소파든 방이든 내어주는 공간에서 머물며 호스트와 교류하고 지역의 생활을 '찐'으로 경험하게 된다.
스페인에서의 기억이 좋아 돌아와서도 내 집이 생기면 호스트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어떤 면에선 나무늘보 저리 가라 게으르지만 또 어떤 면에선 치타보다 빠르고 곶감보다 강한 추진력을 가진 나는 바로 '카우치서핑'에 재가입하여 호스트로 등록했다. 그리고 며칠 뒤, 첫 게스트의 숙박 요청 이메일을 받았다.
러시아에서 온 두 여인은 서울에서 머물 곳을 찾고 있었고 나는 그들의 프로필과 다른 호스트의 레퍼런스를 읽어보고 요청을 승낙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3월 말에 이사를 마치고 4월에 첫 게스트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두 달 동안 총 열한 그룹의 게스트가 우리 집을 방문했다.
어떤 이는 세계를 여행하고 있었고 어떤 이는 한국이 궁금해서 왔고 어떤 이는 다섯 명의 아이를 다 키우고 막내딸과 여행을 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아르헨티나에서 왔고 어떤 이는 일본에서 왔고 어떤 이는 리투아니아에서 왔다. 나와 그들은 서로를 경험하고 서로를 거쳐가며 각자 삶의 한 코너를 보다 뜻깊게 메워가고 있었다. 그 시간을 통해 우리만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을 남겼다. 그것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아닌, 나와 그들과 나의 아들만이 경험한 대화와 몸짓들. 남는 방 한 칸을 옷을 묵혀두는 장독대로 사용하지 않고 세계를 탐험하는 여행자들에게 기꺼이 내어주었을 때 그들이 가져다주는 기쁨과 감동, 영감과 여운을 혼자만 알고 있기엔 너무 아까웠다.
공유하고 나눌수록 더한 기쁨이 나에게 올 것을 알 나이도 되었다. 방구석에 앉아 우리 가족의 세계를, 세상을 대하는 마음을 조금 더 환하게 조금 더 너그럽게 밝혀보고 싶은 분들께 이 이야기를 감히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