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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유 Jul 04. 2016

나는 왜 사는가

대학생, 본질적인 질문과 마주하다


나는 왜 사는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원하던 "오늘"

나에게는 잠만 푹 자고 일어나면 (심지어는 잠을 자지 못해도) 아무렇지 않게 "오늘"이라는 시간이 주어진다. 


왜일까. 

왜 누군가는 애타게 원해도 갖지 못하고 또 누군가는 그다지 간절하지 않아도 그저 그 선물을 받는 것일까.


누군지는 몰라도 그 선물을 나에게 주는 자가 있다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주지 않은 그 선물을 왜 나에게는 주었을까.


태어난 순간부터 받아온, 

그래서 너무나도 익숙해진 '하루'라는 선물. 

그리고 '오늘'이라는 특권. 


나의 하루들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1교시, 2교시… 마지막 6교시 수업까지 잘 들어갔다. 그냥 들어갔다. 들은 것이 없고, 배운 것이 없다. 과제가 나왔다. 전날 밤 열두 시에 시작한다. 인터넷에 들어가 줄거리를 찾고 서평을 찾는다. 이렇게 저렇게 붙였다가 띄었다가 동사 하나 바꿔보고 형용사는 빼본다. 맥이 없는 학교생활이다.


강의의 목적은 배움이다. 그러나 그 공간에는 배움이 없다. 상대는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하는 듯 보이니 문제는 내 쪽인 듯하다. 왜 이 강의를 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목적성이 분명하지 않은 것, 그리고 목적성이 없으면 행동하지 않는 나의 성격이 그 공간에서의 배움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듯하다. 


왜 이 강의를 들어야 하는가 하고 물으면 이 대학에 입학했고 이 단과대에 들어왔으니 여기서 들으라고 하는 과목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이 강의를 내 시간표에 넣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될 수 있지만 내가 이 수업에 역동적이고 자율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이유는 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점점 수동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힘을 잃어간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수업을 열심히 듣고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은 왜 이걸 하는 걸까? 그들은 무슨 목적성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있을까?


대부분의 이유는 학점일 것이다. 학점을 잘 받아야 좋은 직장에 취업할 수 있으니까. 이젠 어딜 가나 대학생도 스펙관리를 해야 번듯이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다고 그들은 착각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학점과 직업 수준은 정비례 관계가 아니다. – 직업 수준과 인생 수준은 더욱 아니다 – 학점을 잘 받아둬서 나쁠 것은 없다는 생각에는 동의한다.


강의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이 학점 때문이고, 좋은 학점을 추구하는 것이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함이라고 해보자. 그렇다면 그들이 생각하는 좋은 직장이란 무엇인가? 모두 고등학교 때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이었을 테니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들을 주변에서 권했을 것이고 자연스레 그것을 목표로 삼았을 것이다. 굉장히 멋진 화술로 그 직업이 왜 좋은지 어른들은 설명했을 것이고, 그들은 그것을 들으며 ‘그래, 내가 OO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돈과 명예, 사회적 권력, 멋있어 보임과 같은 이유가 아니라 정말 나와 잘 맞기 때문이지. 나는 이러이러하니까 정말 그 직업과 잘 맞아!’하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설득을 당하는 것이며 본질적으로는 자기 자신이 그렇게 세속적인 사람이 아니라 꽤나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고 자위하는 것이다. 


혹자는 내가 공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애쓰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묻고 싶었다. 


‘너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해?’ 

‘너는 어떤 성격의 사람이야?’ 

‘너는 무엇을 잘 해?’ 

‘너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니?’


 “허허, 얘 뭐라는 거야. 얘 이상해, 철학자인줄.”


실제로 물으니 대화는 어색해진다. 그렇게 화제는 넘어간다. 자신이 무엇을 할 때 행복하고, 무엇을 할 때 재미있고, 무엇을 잘 하며,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인지에 대한 진심 어린 고민 없이 무슨 꿈을 꾸며 무슨 미래를 그린단 말인가. 우리 시대 대학생들의 현 주소이다.





나는 왜 사는가.


나는 행복하기 위해 사는 사람이고 싶다. 

사회가 원하는 대로, 사람들의 시선이 원하는 대로 나의 인생을 갖다쓰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의 행복이 내가 사는 목적이고 싶다. 


또한 그 행복을 나누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스스로 행복한 사람임에 더하여 한 사람이라도 나로 인해 행복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한 사람이라도 더 행복하게 하려고 노력하다 간다면 훗날 생을 돌아보았을 때 내 어깨를 토닥이며 ‘성공한 인생이었다’고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토 달지 않고 공부 잘 하는 참한 학생이기 보다는 다소 반항적이기도하고 어디로 튈 지 모르지만 뚜렷한 목적을 갖고 살아가고 모든 행동에 이유가 있으며 훗날 사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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