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이나 그리울

[세계여행 Day 2] 대한민국, 강릉

by 시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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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9시 30분에 속초로 가는 시외버스가 예약되어 있었다.

어제까지 이야기한 오늘의 일정은 낮에 속초에 갔다가 저녁에 강릉으로 이동해서 잠을 자고, 내일 아침부터 강릉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침에 짐을 싸면서 생각해보니 그렇게 하면 오늘 하루 동안은 일과 내내 이 커다란 여행 배낭을 메고 다녀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숙소에 짐을 맡길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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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메고 밖으로 나와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는 길에 나는 말했다.


“그냥 버스 표를 강릉 가는 걸로 바꾸자!”


그는 잠깐 고민하더니 “그럴까? 그러자! 그렇게 하자!” 했다.

약간의 수수료를 물고 강릉 가는 버스 표로 바꾸었다. 시간은 동일하게 9시 30분 차로 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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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버스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우리를 포함하여 총 승객이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우리는 가방에서 목베개를 꺼냈고 나는 머지않아 잠들었다. 중간중간 눈을 떴을 때 보면 그는 자고 있지 않을 때도 있었고 자고 있을 때도 있었다. 내가 완전히 깼을 때에는 그도 완전히 깨어 있었다.


그는 아침에 삶아 온 계란을 꺼냈다. 숙소에서는 아침에 조식을 간단히 제공해주었는데, 그냥 식탁 위에 있는 식빵과 냉장고 안에 있는 계란, 잼 등을 알아서 조리해 먹으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샤워를 하고 나오니 남편은 샌드위치를 만들고 계란을 삶고 있었다. 함께 샌드위치를 먹고 난 후 짐을 챙겼고, 달걀은 버스에서 먹기 위해 그가 챙겼었다.


계란은 ‘빨랫감’이라고 정자로 쓰여진 지퍼백 안에 담겨있었다. 남편이 빨래 할 옷을 모아두려고 만들어 놓은 지퍼백에 계란을 담은 모양이었다.


“이거 빨랫감이야? 세탁기 돌려야겠다.ㅋㅋㅋㅋ”

“그러게 말이야.ㅋㅋㅋ 그럼 껍질 다 벗겨지겠다.”

“오, 그럼 계란 껍질 빨리 까는 법 꿀팁 = 세탁기에 넣고 돌린다.ㅋㅋㅋㅋㅋ”


낄낄대며 웃다가 껍질을 까서 먹기 시작했다. 한 입 베어물자마자 우리는 둘 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계란은 완벽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아니, 그냥 완벽 그 자체였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반숙, 굳은 노른자와 흐르는 노른자가 약 4:6의 비율로 삶아진, 딱 그 상태였다. Wow!


그는 사실 계란을 삶는 데에 있어서 몇 번의 실패를 겪은 적이 있었다. 우리는 그때의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한 번은 계란을 냉장고에서 꺼내자마자 팔팔 끓고 있는 물에 넣어서 계란 껍질이 깨져버리고 말았고, 또 한 번은 시간 계산을 잘못해서 거의 익혀지지 않은 상태의 계란이 나왔다.

이번에는 완벽한 성공이다! 우리는 첫 입부터 마지막 한 입을 삼킬 때까지 연신 감탄을 하며 먹었다.

02_3.JPG 빨랫감. 세탁기에 넣고 돌리자!!!!!


시장 구경


강릉 터미널에 도착해서 숙소까지 걸어갔다. 25-30분 정도 되는 거리였는데, 배낭이 많이 무겁긴 했지만 그래도 꽤 걸을만 했다. 숙소는 I am ground라는 게스트하우스이고, 에어비앤비에서 예약했다. 아기자기하게 예쁘게 잘 꾸며져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짐을 두고 좀 쉬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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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가 있는 곳에서 5-10분 정도 걸으면 월화풍물시장중앙시장이 나온다. 시장 구경은 참 재밌다. 먹고 싶은 것들과 재미있는 물건들이 코와 눈을 사로잡고 사람 사는 소리들이 귀를 즐겁게한다.


점심은 시장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맛있어보이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고민 끝에 정한 메뉴는 닭강정, 떡볶이, 어묵, 송편, 메밀전병이었다. 중앙시장에는 닭강정을 파는 집이 아주 많았다. 우리는 어느 곳을 갈까 고민하다가 결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을 선택했다. 어느 곳도 미리 맛을 알 수 없으니 확률이 높은 쪽을 선택했다. 맛은 그저 그랬다. 소스는 아주 평범했고 닭은 거의 다 퍽퍽살이었다. 이대 앞 오천원 짜리 허브컵 치킨이 그리워지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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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다 먹고 아이스크림 호떡까지 후식으로 먹은 뒤 경포대에 벚꽃 축제를 하는 곳으로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곳은 버스 배차간격이 정말 당황스러웠다. 우리가 타려는 버스가 두 시간에 한 대씩 온다는 거다! 5분 전에 버스가 지나갔다고 되어있으니 우린 이 버스를 타지 못 할 운명이었다. 택시를 잡아 타고 경포대로 향했다.



경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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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대 정자. 이곳에 앉아 바라보는 경치는 예술이었다.


오늘은 경포 벚꽃 축제의 마지막 날이었다. 벚꽃은 지고 축제는 끝물이었다. 다양한 상인들이 모여있던 천막들은 거의 다 해체가 진행되고 있는데, 화려하게 화장을 하고 치마에 반스타킹을 신고 구성진 노래를 부르고 계시는 아저씨 한 분 만이 아직도 축제의 한 가운데에 계신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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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대에서 경포해변까지는 경포호를 따라 십여 분 정도 걸어야 한다. 그 길이 참 예뻤다. 바다인듯 파아란 물의 가장자리에는 갈대가 수놓아 피어있고 물 위에는 오리들과 이름모를 새들이 노닐었다. 호숫가에는 망원경이 설치되어있어서 오리와 새들을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 목이 긴 이 하얀 새를 너무 찍고 싶어서 망원경 렌즈에 카메라 렌즈를 대고 아주 조심스럽게 각도를 맞추어가며 몇 장 건졌다. 의도치 않게 몽환적인 사진이 나왔다.


08_2.JPG 꿱꿱!!! 날 좀 봐줘! 아까 이쪽으로 오더니 왜 다시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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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이 참 멋지게 생긴 친구였는데. 깃의 모양까지는 담지 못했지만 이 사진으로나마 널 기억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가장 그리울 순간


경포해변에 도착하니 올림픽 개최지를 상징하는 오륜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그 앞에서 얼른 사진을 찍고는 바로 바닷물 바로 앞으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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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도, 바다도, 정말 티없이 맑았다. 깊은 푸른색의 동해바다를 마주한 오늘, 하늘은 요근래 자주 보여주지 않았던 청명함을 맘껏 뽐내주었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모래 위에 누워 하늘 같은 바다를, 바다 같은 하늘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 무언가 담겨있기에 내가 물었다.


“무슨 생각해?”

“아무 생각 안 해~”

“그래?”

“아니 그냥… 나중에 돌이켜 보았을 때 가장 그리워할 순간들 중에 한 순간이 지금일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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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의 언젠가에는 무척이나 그리워할 그 순간이 바로 지금이라는 걸 알고있으니

마음껏 더 행복하자 우리!



2018.04.11.

세계여행 Day 2

강릉 I am ground 게스트하우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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