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널 기다렸어

[세계여행 Day 5] 대한민국, 순천/ 순천만

by 시소유

어제는 하루 종일 흐리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계속 비가 온다. 여행 시작 이후 처음으로 우산을 꺼냈다. 김지우 님이 협찬해주신 우산은 너무나 신기한 자동우산이었다. 3단 우산인데 버튼을 톡 누르면 쫙 펴지고 다시 누르면 접히기까지 한다. 굉장히 엄청난 우산이다.


오늘 묵을 게스트하우스는 다른 데에 비해 가격이 비싼 만큼 터미널에서도 매우 가깝고 시설도 정말 깨끗하고 좋았다. 짐을 풀고 나와서 점심을 먹으러 향했다. 얼마 전 구매한 판초를 처음으로 꺼내 입고 길을 나섰다.



튀김백화점


저렴하게 한 끼를 떼워야했기에 아무 식당이나 하나는 나오겠지, 하고 슬슬 걸어보았다. 식사 후에 순천만국가정원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해서 정류장 쪽으로 걸었는데 식당이 정말 하나도 없었다. 결국 정류장을 지나쳐서 더 걸었다. 버스로 한 정거장 만큼의 거리를 더 걸었을 때 비로소 분식집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중 튀김백화점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가진 분식집에 들어갔다.

떡꼬치 2개 1,000원, 계란 튀김 2개 1,000원, 모듬 튀김 3,000원 어치를 먹어 총 5,000원에 매우 배부른 식사를 했다. 전부 기름에 튀긴 것 투성이었지만 여긴 튀김백화점이 아닌가. 식당 이름에 아주 걸맞는 식사를 했다.



순대


다 먹고 나오니 바로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101번 버스를 타고 순천만국가정원으로 향했다.

가는 중에 창 밖으로 '순천제일대학교'가 지나갔다. 남편이 나에게 질문했다.


"순천에서 제일 가는 대학교는?"

"순대!"

"오...!!! 인정~"


연대, 고대, 이대, 순대... 그는 나의 대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순천만국가정원


순천만국가정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표를 구매해야 하는데, 당일 순천 지역 숙박 결제 내역(3만원 이상)이 있으면 1인당 1,000원 할인받을 수 있다. 원래는 대인 8,000원인데 7,000원으로 할인 받아 2인 14,000으로 입장했다.



순천만국가정원은 정말 넓었다! 그리고 정말 짜임새있게 잘 조성되어 있었다. 구역별로 테마도 다양하고 식물들도 정말 다양했다.


식물들은 비에 젖어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들은 한층 더 차분했고 온화했고 깊었다.

나는 이곳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놓은 공원임에도 자연과 공존하려는 모습이 돋보인 공원이었다. 이곳의 주인공은 명백하게, 자연이었다.


날이 맑을 때 꼭 한 번 또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의 정원은 어떤 모습으로 맞아줄지 너무 궁금하다. 이들은 살아있어서 비에 젖은 날의 모습과 해에 젖은 날의 모습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황금사철과 모과나무
동백과 영산홍
잠비아 작가의 작품.



순천만습지


스카이큐브라는 기차를 타고 순천만습지에 도착했다.


자연의 신비로운 모습을 마주하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우와'를 연발했다. 그냥 이렇게 아무 꾸밈도 없는 갈대와 풀들이 어쩌면 이렇게 예쁜지 모르겠다. 습지의 짙은 흙과 아무렇게나 자란 갈대들은 각박한 세상에서 온 나를 위로해주는 듯 했다.


안내판을 읽어보니 순천만은 국내 최대 조류서식지라고 한다. 이동 철새의 보전을 위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라 한다. 정말 생전 처음 보는 것 같이 생긴 새들이 많이 날아다녔다. 익룡같기도 하고 펠리칸 같기도 한 새들을 보니 영화 속이거나, 과거이거나 미래인, 다른 시공간에 와 있는듯 했다.


그가 물었다.

"저 위에서 바라보면 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그러게! 진짜 멋있겠다."

"쟤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까? 생각은 하겠지?"

"그러겠지?"

"배가 고프다든지, 적이 오면 피해야겠다든지..."

"웅. 신기하다. ㅎㅎ"



길 양옆으로는 습지의 바닥에서 제 집을 짓고 살고 있는 작은 게들과 짱뚱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이들이 너무 신기하고 재밌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구멍에서 쏙 나와서는 슬슬 옆으로 걸어 다시 구멍으로 들어간다. 어떤 게는 빨갛고 어떤 게는 까맣다. 어떤 게는 집게 크기가 다 똑같고, 어떤 게는 앞 집게 두 개만 크기가 크고, 어떤 게는 앞 집게 두 개 중 한 개만 크기가 큰 게도 있었다. 몸도 까맣고 나머지 집게 일곱 개도 다 까만데 딱 한 개의 앞 집게발만 크고 빨간 게들이 종종 있었다. 어떤 게는 껍질이 매우 딱딱하고 강해보였고 어떤 게는 약해보였다.

우리는 게가 무언가를 먹는 모습도 보았다. 앞 집게발 두 개를 꽤나 사람이 손 쓰듯이 쓰는 것을 보았다. 입 바로 앞에 있는 먹이를 한 집게 다른 집게 번갈아가며 집어먹었다.

짱뚱어는 지느러미 같이 생긴 것으로 땅을 밀어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다니는 모습이 도마뱀과 닮아있기도 했다.


우리는 삼각대에 액션캠을 연결해 더욱 멀리까지 손을 뻗으며 열심히 이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남겼다. 나중에 컴퓨터에 연결해 큰 화면으로 살펴볼 것을 생각하니 또 기분이 좋았다.


이 작은 아이들도 생명체로서 갯벌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내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경이로웠다.




용산전망대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길은 산을 오르는 일이었다. 이미 습지까지 오는 데에도 3km 정도를 걸었는데 온 만큼을 더 걸어가야하는 데다가 산행을 해야만 갈 수 있는 곳이라 살짝 큰맘을 먹어야 했지만 우리는 '높은 곳은 언제나 옳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얼마나 더 큰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수 있을지 기대가 되었다.


올라가는 길 부터가 너무 아름다웠다. 그저 이렇게 올라가다가 끝이 난다고 해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가 관심을 주고 있을 때에나 그렇지 않을 때에나 이 풀들은 이렇게 때 맞춰 피어나고 진다. 이렇게 이 모습 그대로, 그러나 사시사철 단 한 번도 같은 모습인 적 없이 존재한다. 그게 갑자기 너무 신기했다. 집에서 식물을 키워봐서 알지만 풀이 자라나고 꽃이 피어나는 것은 절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 엄청난 일을 자연은 생겨난 이래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하고 있는 거다. 우리가 봐주든, 봐주지 않든 상관 없이 말이다.


이 대자연의 주인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네가 올 날을 기다렸다고. 이 풍경, 이 모습, 네가 와서 벅찬 마음으로 가슴에 담아줄 그날만을 기다리며 지금 이 순간까지 나는 이 자리에 있었다고. 나는 언제나 널 위해 이곳에 있을 거라고.


나는 확신했다. 언젠가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온 우주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는지 알게될 날이 올 거라고 말이다. 온 우주가 오직 당신 위하여, 당신의 안녕과 행복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가늠할 수 없는 절대적 존재의 상상할 수 없는 큰 사랑 안에 있음을, 그 사랑이 당신의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살아갈 터전을 전부 이토록 정성스레 가꿔왔음을, 그 안에서는 결코 두려워할 것이 없음을 말이다.


기쁨과 안도의 눈물이 차올랐다.



순천만은 꼭 다시 한 번 오고 싶은 곳이 되었다.

아이를 데리고 온 부부들을 부러워하며 우리도 훗날 꼭 아이들을 데리고 또 오자 약속했다.



2018.04.14.

세계여행 Day 5

순천 나무게스트하우스에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물고기와 생선 사이, 그 어디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