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와 생선 사이, 그 어디쯤

[세계여행 Day 4] Part 2. 대한민국 통영/동피랑, 이순신공원

by 시소유
흐린 날


숙소에서의 실망을 뒤로하고 짐을 꾸려 도시 구경을 나왔다.


사실 오늘은 비진도를 가려고 했던 날이다. 그러나 기상 상황이 좋지 않아 배편이 일찍 끊겨 갈 수가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다도해의 매력은 작은 섬들이기에 한껏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아쉬웠다.


그래도 그 덕분에 통영 시내를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날이 많이 흐렸다. 흐린 날에는 모든 것들이 전부 한두 개씩의 색을 잃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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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김밥을 물고 있는 거다. 원래 저 정도로 생기진 않았다.


통영중앙시장


동피랑을 가기 위해서는 중앙시장을 지나가야 했다. 활어를 파는 이곳은 정말이지 살아있는 것들의 에너지가 넘쳤다. 십 초가 멀다하고 물고기들이 목에 칼을 맞고 피를 튀기며 죽어나갔고, 그들은 죽어서도 그 활기를 멈추지 못해 몇 분을 더 퍼덕였다. 능숙한 칼놀림으로 물고기를 죽이는 상인들은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손님들을 불러세웠다.


"이거 이 만큼에 오 만원에 해주께! 이 만원 부터 해주께, 식사하구 가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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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중앙시장의 풍경

바구니 속에서 이따금씩 펄떡거리는 저들은 물고기와 생선의 사이, 그 어디쯤에 존재한다. 살아있으나, 살아갈 수 없는 운명이다.



동피랑


동피랑은 다양한 벽화들로 꾸며진 언덕 마을이었다. 재밌고 아기자기한 벽화들이 많아 볼거리가 풍성했다.

이곳에는 주민들이 살고 있어서 조용히 관람해달라는 표지판이 붙어있었는데 너무 많은 관광객들이 큰 소리로 떠들어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P1050079.JPG 전혀 위화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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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와 찍은 사진은 이게 전부다.


우리는 어느 곳에 가나 높은 곳에 올라가 도시의 전경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정상에 올라가니 이 마을이 한눈에 보였다. 지도 앱을 켜서 현재 위치를 보니 남해안의 구불구불한 해안선 중 우리가 현재 어느 구불 즈음에 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왠지 자꾸 집들에 눈이 간다. 각기 다르게 지어진 저 건물들에 살고 있을 누군가를 그려본다. 저 건물들 사이사이 골목길을 걸었을 누군가를 상상해본다. 이곳에 서서 한참을 내려다보며 내가 저 집들을, 아니 저 집에 사는 사람들을 다 품어 안고 있는 착각을 한다. 눈과 마음에 가득, 저들의 기운을 담고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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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흘러들어오는 둥그런 곳이 지도에 표시된 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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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공원, 파전


통영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대첩이 이루어졌던 한산도가 있는 도시이다. 그래서 이곳에는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것들이 많았다.


동피랑에서 20분 정도 걸으면 이순신 공원이 있다. 공원까지 걸어가면서 우리는 바닷가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의 삶을 조금 엿볼 수 있었다. 통발 전문 상가도 있고 배 장비를 다루는 곳도 많았다.


남편은 바닷가에 배가 정박되어있는 모습을 참 좋아한다. 그게 그렇게 멋있다고 하며 연신 셔터를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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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공원에 가니 이곳의 정체성을 알리는 듯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세워져있었다. 옆쪽에는 임진왜란 당시 실제로 적을 물리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는 대포의 모형이 있었다.


옆으로 정원이 있었다. 빨간 꽃들을 심어놓았는데, 이 공간과 잘 어울리는 느낌은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그 옆에 있는 물가가 더 재밌었다.

"물가로 내려갈까?"하는 그의 말에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래!" 했다. 물이 보이면 바로 돌부터 던져보는 그는 역시나 바로 근처의 돌을 집더니 저 멀리까지 던져본다. 물 앞에서 사진도 찍고 해초도 보고 돌 구경도 했다.


그러다가 그는 바위를 슥슥 닦아내더니 앉을만한 자리를 만들었다.


"여기 앉아서 파전 먹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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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여기서 파전을 먹는다니!


아침에 포항에서 출발할 때 점심 대용으로 싸온 음식이 김밥 세 줄과 파전 두 장이었다. (파전은 한 장에 천 원이었다.) 김밥은 버스에서, 그리고 이곳까지 오는 도중에 다 먹어버렸는데 파전이 남아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있었다. 슬슬 다시 허기지기 시작한 지금 같은 때 바다를 바라보며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든 남편이 '파전 먹을래?'하고 말하는 그 목소리와 표정은 정말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당연히 파전은 다 식어있었다. 다 식은 이 파전이 내가 태어나 먹어본 파전 중에 제일 맛있었다. 이 파전에는 남해안의 바닷바람이, 흐린 날의 안개가, 그리고 오늘의 여행이 들어있었다.



눈길이 서는 곳에 얼마든지


다 먹고 돌아가는 길, 배가 정박되어있는 그곳을 다시 지나가는데 배 한 척에 사람들이 열 명 정도 모여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들은 잡은 물고기를 끌어 올리고 있었다. 우리가 관심 있게 쳐다보니 옆에 서 계시던 아저씨 한 분이 가까이 와서 봐도 된다고 하셨다. 다른 모든 분들은 다 작업복 차림이었고, 그 분만 양복을 입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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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그물이 배 밑에서부터 끌어올려지고 있었는데, 성인 남성 네다섯 명이 붙어도 어려울 정도로 무거워 보였다. 아저씨들 여럿이 힘차게 들어올렸더니 오백원 짜리 동전 보다 약간 더 굵은 몸뚱이에 어른 팔 만큼 길다란 물고기들이 그물 한가득 세차게 몸부림치고 있었다. 배 위에 올리는 것을 성공한 이후에는 옆에 세워져 있는 화물차 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두 분의 뱃사람들이 그물을 받아 차 위로 올렸다.


우리는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다. 사람 사는 모습이 이렇게 다 다르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놀랍고 재밌었다. 뚜벅이 여행이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눈길을 세우고 싶은 순간에 얼마든지 섰다가 지나가도 되는 이 자유가 좋았다. 길가에 꽃 한송이만 봐도 섰다 가는 나의 속도에 발맞춰주고 함께 세상을 담아주는, 날 온전히 자유하게 하는 남편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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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3.

세계여행 Day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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