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Day 4] Part 1. 묵는 곳에 대한 이야기
아침 9시 40분 버스로 통영에 가는 것이 예정되어 있었다. 우리는 오늘도 피곤에 젖어 여덟 시쯤 간신히 눈을 떠서 안 씻고 바로 나왔다.
어제 점심을 먹었던 그 식당에서 예정대로 아침을 먹고 점심을 싸 갖고 나왔다. 아침으로는 냉국수와 온국수를 먹었다. 잠을 포기하지 않는 바람에 엄청 빠른 속도로 먹어야했다. 우리는 4분이라는 놀라운 속도로 국수 한 그릇씩을 비우고 버스 타는 곳으로 향했다.
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버스로 십여 분이 걸렸다. 버스 안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우리는 당연히 앉을 수 없었고 제대로 된 손잡이를 잡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는 중심을 잡기 어려웠고, 그와중에 내리는 사람들에게 길을 비켜줘야 했다. 중심 잡고 서있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어디로 비켜도 길을 막는 상황이라 이리 비켰다 저리 비켰다를 반복하느라 힘들었다.
딱 세 시간 만에 통영에 도착했다. 통영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숙소가 있는 곳까지 버스를 타고 오면서 멀미가 좀 있었다.
게스트하우스는 찾기 어려운 위치에 있었다. 남편은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고, 머지 않아 주인이 큰 길가로 나와 우리를 안내해주었다. 그는 아래 위로 검정색 등산복을 입고 콧수염과 턱수염, 머리카락, 어느 것 하나 정돈되지 않은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이분을 따라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나는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입구는 너저분했고 방은 오래되고 더러워 보였다. 방 두 개를 보여주며 이 둘 중에 고르라고 했는데, 사실 그 둘 중 어느 곳도 고르고 싶지 않았다.
짐을 내려놓자마자 주인은 '설명을 해주겠다'며 잠깐 같이 와보시라 했다. 숙소 이용에 관한 내용을 설명해주시는 줄 알았다. 한 명만 와도 된다고 했는데 혼자 있고 싶지 않았고, 혼자 보내고 싶지도 않았다.
따라 나갔더니 숙소 밖으로 나가서 주변의 식당들과 갈만한 관광 명소들을 설명해 주신다. 친절하시구나, 생각했다. 열심히 혼자 말씀하시며 매우 빠른 걸음으로 숙소에서 꽤나 떨어진 곳으로 계속 걸어나가셨다. 숙소로부터 이렇게 떨어지는 것은 생각지 못했던 일이라 좀 당황하기 시작했다. 하시는 말씀의 3할 정도는 아까 한 말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걸어 코너도 돌고, 숙소에서 두 블럭 정도나 떨어진 곳까지 걸어갔다. 나는 빠른 속도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숙소 이용에 대한 설명인줄 알았기에 짐을 내려놓자마자 나왔고, 간단한 짐을 꾸릴 시간 조차 없었기에 나는 핸드폰도 지갑도 가방 안에 그대로 두고 나온 상태였다. 나는 표정이 어두워졌고, 듣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얼른 들어가서 내 짐들을 보고싶었다. 7분 정도 걸었을까, 주인은 멈추었다. 선 채로 몇 가지 말을 덧붙이더니 '그럼 여행 잘 하세요~'하고 이 자리에 우리를 두고는 숙소 반대방향으로 걸어가신다. 아까와 같은 빠른 걸음으로, 혼자, 저쪽으로 가신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짐을 풀러 잠깐 숙소에 들른 사람들에게 짐을 풀 시간도 주지 않고 그냥 데리고 나가 불안에 떨게 하고, 이 도시가 초행인 우리를 여기까지 데리고 나왔으면서 아무 설명도 없이 혼자 다른 방향으로 가버리는 것은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얼른 방으로 돌아가서 짐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짐은 다 그대로 있었다.
에어비앤비 페이지에 들어가 후기들을 다시 읽어보았다. 열네 개의 후기들과 주인이 답글을 단 것들을 읽어보니 그냥 좀 특이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옥상에서 게스트들을 대상으로 파티를 너무 시끄럽게 열어서 밤새 잠을 한숨도 잘 수 없었다는 후기, 사장님이 이것저것 챙겨주려고 하시는데 방 상태는 정말 기대 이하였다는 후기 등을 읽어보니 사람을 좋아하기는 하나 주변 상황을 전체적으로 고려하지는 못하고 방의 청결 유지라든지, 취침시간 이후 정숙 유지 등 가장 기본적인 부분을 놓치는 게 많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함은 조금 진정이 되었다. 화를 가라앉히고 화장실을 쓰러 들어갔다. 변기를 보자마자 나는 다시 화가 치밀었다. 정말 너무 더러웠다. 휴지 걸이 위에는 언제 누가 두고 간 것인지 모를 아주 오래 된 귀걸이 두 개가 놓여있었고 변기는 언제 마지막으로 닦았을까 의문스러운 모습이었다. 주인이 '이쪽에 짐을 둘 공간이 있다'며 보여줬던 곳에는 먼지가 너무 자욱해서 내 배낭은커녕 신발 신고도 밟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어떻게 이곳에 내 가방들을 내려놓으라는 얘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곰팡이들과 녹이 슨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닌 걸로 느껴질 정도였다.
"여기가 인도였으면 좀 납득이 됐을지도 모르겠는데... 이건 좀 그렇다...ㅋㅋㅋㅋㅋ"
내가 어이없는듯 웃음을 터뜨려버리자 긴장하고 있던 남편도 같이 웃었다. 주인의 태도에 화가 나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남편은 겁먹은 새끼고양이처럼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인이 웃었다!!!"
그제서야 그는 함박웃음을 웃으며 나와 같이 숙소 욕을 했다.
여행을 시작하고 네 번째로 만난 숙소다. 앞으로 약 730일이 넘는 여행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숙소들을 만나게 될까. 마음에 꼭 차는 숙소도 있을 것이지만 예산의 한계가 있다 보니 그렇지 않은 곳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잠을 자는 곳이 내 마음에 들었으면 하는 것은 지금까지 내 집에 살던 나로서는 그리 크지 않은 바람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의 상황을 마주하며 이런 상황이 오늘로 그치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고, 그것은 과분한 바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많이 내려놨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다 내려놓지 못했던 것 같다. 오늘 하루 몸을 누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잊지 않아야 한다.
잠을 잔다는 것은 약 6-8시간 동안 완전히 무방비상태로 있는 일이다. 그래서 밤을 묵는 곳은 반드시 안전함과 편안함이 느껴져야 한다. 그곳에 함께 있는 사람들이 못 미덥다면 나의 짐과 우리의 안전이 걱정되어 편히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잠들기 위해서는 믿는 수밖에 없다. 단 몇 시간, 아니 몇 분 전에 처음 본 나의 호스트를 말이다.
2년 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며 낯선 곳에서 자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처음 보는' 사람들을 믿어야 한다는 뜻인 것인가. 무턱대고 사람을 믿는 것은 위험을 초래할 때가 많다고 배워왔지만 살다보면 충분한 근거 없이 낯선 사람을 믿고 일을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사람을 믿어야 할 근거로써 '충분'하다는 것은 존재할 수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남편은 모든 일을 좋은 쪽으로 믿어 버리는 성격이고, 나는 모든 일을 경계하고 조심하는 성격이다. 아까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태도에서 나만 불안해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어떤 상황에 조심해야 하는지를 배우고, 나는 그에게 상황을 믿고 안심하는 법을 배운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
내 성격으로 최대한 꼼꼼히 사전 조사를 해서 숙소를 찾고,
그렇게 숙소를 정한 이후에는 당신의 성격으로 그저 다 좋다고 믿고 편히 자자.
선택은 우리가 하되,
결과는 우리의 몫이 아니니까.
2018.04.13.
세계여행 Day 4
*** 게스트하우스에서.
+) 주인아저씨는 그냥 정돈되지 않은 사람일 뿐,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또한 숙소의 청결도는 매우 실망스러웠지만, 다른 어떤 곳 보다도 온수가 잘 나와서 최고의 샤워를 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