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77] 마이 아팠던 이야기
최근 며칠, 나는 많이 아팠다. 앉아있을 수가 없어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했다. 깨끗이 낫고 나면 꼭 아팠던 일에 대해 쓰겠다고 말이다.
처음으로 배가 아프기 시작한 건 6월 5일, 조지아 쿠타이시에서 사이프러스 라르나카에 가는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갔을 때였다. 조지아에서의 출국 심사는 유달리 까다로웠다. 짐 체크인까지 모두 마쳤는데 출국 심사에서 붙잡혀 3-40분 정도를 불안에 떨며 기다려야 했다.
출국 심사대 앞에 서서 여권을 내밀었더니 직원은 뭔가 석연치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옆 직원들과 나의 여권을 돌려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한참을 이야기 한다. 주변의 제복을 입은 공항 직원들 몇 명이 내 옆으로 와 몇 번이고 내 얼굴과 여권의 사진을 번갈아 쳐다보며 의심하는듯 했고 급기야는 주변의 다른 직원들을 더 불러다 놓고 이 여권이 나의 것이 맞는지 확인하게 했다. 남편과 나는 등을 맞대고 양쪽에서 출국 심사를 받고있었는데, 뒤를 돌아보니 그도 수많은 질문들을 받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10분 정도 서서 뭔지도 모를 의심을 받고 있었는데 옆에 서서 가장 매서운 눈초리로 여권 사진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던 무섭게 생긴 직원 한 분이 기다리라고 말하며 나와 그의 여권을 가지고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버렸다.
우리는 벙쪘다. 남편은 이들이 이곳에서 대한민국 여권을 보는 일이 너무 드문 일이라 사이프러스에 입국해도 되는 여권인지 확인이 안 되고 있는 것 같다며, 다른 건 아닌 것 같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그는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분명 제복을 입고 있는 공항 직원이었지만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여권을 무력하게 빼앗긴 채로 기다리려니 시간이 억겁 같이 느껴졌다.
이때 부터였다. 내가 배가 아팠던 것이.
최강 의심맨이 우리의 여권을 가지고 간 후 얼마 되지 않아 내 배에서 꾸욱 찌르는 느낌이 났다. 화장실을 가고 싶었지만 출국 심사대 근처에 화장실이 보이지 않았다. 조금 기다리니 다시 그 느낌이 없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출국 심사대를 통과 하고나서 화장실을 발견했고 바로 화장실에 갔는데 그분은 오시지 않았다.
그후 비행기를 타서도 10-15분에 한 번 정도씩 계속해서 장이 뒤틀렸다. 화장실에 가려고 했을 때 누군가가 있어서 잠시 기다렸다 가면 문제의 그분은 또다시 자취를 감추고 나오지 않았다. 라르나카, 파포스, 예루살렘, 텔아비브, 이스탄불, 그리고 부르가스에 오기 까지 그러기를 반복했다. 배가 꼬여와서 화장실에 가면 딱딱한 변이 아주 조금 나오거나 아예 나오지 않았고, 몇 번은 숨이 죄여오도록 답답하기에 손가락을 네 개씩 따고 수도 없는 장 마사지를 했다.
비행기를 세 번 탔고, 여섯 시간 짜리 왕복 버스를 한 번, 여덟 시간 짜리 편도 버스를 한 번 탔다. 그러는 동안 나는 아주 여러 번 타이밍을 놓쳤을 것이다.
6월 20일, 불가리아의 동쪽에 위치한 유네스코 지정 도시 '네세바르'를 가기로 한 날의 아침, 기상과 함께 그분이 오셨다. 어마어마한 그분이 오셨다. 내 몸 안에서 지독히도 뭉쳐있던 어둠의 덩어리들이 잘게 부서져 물이 되어 몸 밖으로 나왔다. 아랫배가 묵직하고 찜찜했던 것이 2주 넘게 지속되니 너무나 괴로웠었는데 그분이 오시니 한편으로는 아주 반가웠다.
문제는 그 뒤였다. 이분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다. 기다렸다는듯이 20분에 한 번씩 배가 꼬였고, 나는 그때마다 즉시 화장실로 직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6월 21일의 상황은 더 나빴다. 이날은 체크아웃을 해야하는 날이었고, 아침 8시 차를 타고 소피아로 이동해야하는 날이었다.
아침 6시가 되기 조금 전, 배의 통증에 잠이 깼고 변기에 앉은 나는 머지않아 식은 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몸에서는 힘이 빠지기 시작했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체온이 순식간으로 올라가는 것을 느꼈고, 온몸이 땀으로 젖어 바지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남편이 잠에서 깨어 왜 그러냐고 물었고 나는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놀라더니 이것저것 검색을 하여 발을 심장보다 높게 둘 수 있도록 발 밑에 베개를 끼워놓아 주었고, 급격하게 다시 체온이 떨어져 추워하는 내게 그의 옷을 입히고 나의 이불과 그의 이불을 겹쳐 덮어주었다. 굶으면 안 된다고 읽었다며 쌀죽을 끓여다주었는데, 많이 지쳐있었던 나는 침대 위에 그가 눕혀준 자세 그대로 잠이 들 것만 같았다. 자고 싶다는 나의 말을 듣고 그는 쌀죽에 그대로 뚜껑을 덮어 놓았다. 버스 시간 생각하지 말고 일단 쉬라고, 소피아에는 내일 가도 되니 충분히 쉬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는 그도 나와 함께 쪽잠을 청했다.
눈을 떠보니 10시였다. 그를 깨웠다. 그는 아까 끓여둔 쌀죽을 가져왔다. 한 숟갈, 두 숟갈 떠먹으니 맛이 있어 꽤 많이 먹었다. 먹고 나니 조금이나마 힘이 났다.
체크아웃 시간인 11시에 딱 맞게 숙소에서 나왔다. 20분 여를 걸어 터미널에 도착해 소피아로 향하는 11시 반 버스에 탔다. 여섯 시간을 달리는 버스였다. 여섯 시간 내내 나의 뱃속에서는 격렬한 전쟁이 열두 번도 더 일어났고, 나는 그때마다 그 악의 무리들을 잠재우느라 진을 빼야 했다.
6월 22일에도 그랬다. 배가 아파서 새벽에 몇 번이고 깨서 화장실에 다녀와야했다. 화장실에 너무 자주 가서 많이 어지러웠다. 이럴 때 먹으면 좋다는 것들을 마구 검색해보았고, 아침이 되자마자 남편을 깨워 꿀을 사다달라고 했다. 남편은 아침 7시가 되자마자 나가서 꿀을 사다가 꿀물을 만들어주었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잠을 좀 더 자다가 길을 나섰다. 큰 맘 먹고 나온 건데 단 30분도 마음 편히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나는 시도 때도 없이 화장실을 찾았고, 결국 소피아 시내 구경을 위해 밖으로 나온지 세 시간 만에 숙소에 돌아가야 했다.
점심이 조금 넘은 시간 부터 나는 내 몸을 호스텔의 작은 침대 위에 가만히 뉘여놓는 것, 그리고 화장실에 가서 내 몸을 위한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앉으면 배가 더 아팠고 어지러웠다. 온몸에 힘이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23일, 고통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며칠만에 처음으로 새벽에 배가 아프지 않았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해야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며칠만에 처음으로 음식을 한 입 먹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지 않아도 되었고, 앉은 자리에서 한 끼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며칠만에 처음으로 마음 편히 도시 구경을 하러 나갈 수 있었고, 카페에 앉아 글을 쓸 수 있었다. 이따금씩 배가 부글거려 비워내야하긴 했지만 이정도면 정말 살만 했다.
다시 '일상'이라는 것이 가능해졌다.
단 한 순간도 글을 쓰는 것이 쉬웠던 적이 없지만,
단 한 순간도 글을 쓰고 싶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며칠 동안 글을 한 자도 쓰지 못하는 시간들을 보내며 많이 괴로웠다.
쓰고 싶은 것들이 넘쳐나는데 그것들이 자꾸 밀리고 밀려 속상했다.
쓰고 싶은 글들이 밀린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내가 살아가는 시간이, 그걸 내가 글로 써내는 시간 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애초에 모든 이야기들을 글로 가두려 했던 것은 욕심이었을 것이다.
쓰고 싶은 글들이 밀린다는 것은 또한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글로 적어 놓치고 싶지 않은 삶의 순간들이 많았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만큼 내가 하루하루를, 일분 일초를 풍부하게 살아내고 있다는 증거이니 말이다.
그걸 알려주시려 했던 것일까? 글로부터의 진정한 쉼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미치도록 아픈 순간에는 그 어떤 글감도, 부담감도 머릿 속에 없었다. 그저 내 존재만이 최대의 관심사였고, 이 순간을 살아내는 것, 견뎌내는 것, 이겨내는 것, 기다리는 것만이 내 관심사였다. 아프고 힘 없는 나를 지켜보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는 남편의 애타는 마음을 봐서라도 나는 어서 나아야했다.
나는 아프면서 글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낼 수 있었고 반대로 열망은 더욱 피어올랐다.
낫는 것을 느낀 순간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노트북을 열어 글을 적는 것이었고, 며칠 만에 만져본 키보드에서는 연인의 심장이 뛰고 있었다. 이대로 얼만큼을 앉아 쓸 수 있을지는 몰라도 조금이라도 앉아서 글을 써내려갈 에너지가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해서 내가 그동안 무슨 글을 못썼고, 얼만큼의 글을 더 써내야하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잘 전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고 그게 바로 이 글이다.
이 글은 내가 회복되고 있음을 알리는 파랑새의 서신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함께 이 순간을 견뎌내준 천사 같은 우리 남편,
정말 고맙습니다.
2018.06.25.
세계여행 Day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