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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 디자이너 Dec 31. 2023

언어가  통하지 않아 감사합니다.

충돌이 주는 기회, 그리고 다름이 주는 시간

남편은 줄곧 미국에서 살아온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런데 좀 독특하다. 

나보다 한국을 더 좋아하고, 

나보다 한국어를 더 자랑스럽게 여긴다. 


영어실력을 키우려면 

미국인과 연애를 하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나도 이제 미국이 나의 터전이니 

영어실력을 키우려면 

당연히 남편과 영어로 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처음부터 

우리는 "한국어"로 대화를 해야 한다고 고집을 피웠다. 

한국어로 대화를 나눌 때의 분위기가 좋다고..

영어로 대화를 나누면 

우리의 관계성이 달라질 것이라고... 


처음에는 나도 한국어를 하는 것이 편하니 

괜찮았지만 점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 이렇게 한국어로만 하면 

앞으로 영어는 언제 늘지?"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질문이 이상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언어는 사랑하는 사람과 소통하는 "수단"인데 

내가 이 '언어'를 사랑하는 사람보다 

먼저로 생각했던 건가? 


나중에 속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편은 사실 한국어를 원어민처럼 하는 것은 아니기에

부족한 한국어를 계속 사용하는 것이 

어렵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고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를 지킨 이유는 

본인이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정체성 혼란을 겪을 때 

한국어를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수치심으로 느껴졌고, 

한국어를 하면서 본인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다시 확고히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자라온 가정환경에서 

어머님이 철저하게 한국어를 지키셨기 때문에 

가족들끼리 한국어로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게 되었고, 

우리의 미래 가족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한국에서 나고 자라왔기에 

미국에서 한국어를 지킨다는 것이 

그렇게도 힘든 것인지 몰랐었다. 

그런데 남편과 주변 친구들을 보니 

미국에서 사는 한국계 미국인 중 

한국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제야 현실을 조금씩 직시하게 되었고, 

나는 나의 미래의 아이들과 소소한 대화도 

친구같이 나누는 엄마가 되고 싶은데 

아이들이 한국어를 못하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마음속에도 

한국어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마음에 박히기 시작했다. 


결혼 전까지는 나의 미래, 

커리어만 생각해 오던 사람이 

결혼을 하고 나니 우리의 미래

그리고 아직 보이지도 않는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니 

참 결혼이라는 것은 신기하다. 


그 이후로 나는 관점을 바꾸기로 했다. 


서로의 언어가 100% 통하지 않아서 감사하기로. 


서로의 제1 언어가 다르다는 것은 

서로의 문화가 다르다는 것이고, 

서로의 역사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세계가 

훨씬 풍성해진다.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문화와 역사도 

간접체험하게 된다. 

처음에는 그 '색다름'이 불편하고 어색하지만 

그 '다름'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먹으면 

그 '다름'이 재미있고 신기해진다. 

다시 어린아이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요즘 거의 매일 서로의 언어를 교환한다. 

우리는 서로 글을 써서 나누고,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chat GPT한테 물어볼 필요도 없이 

바로 옆에 최고의 선생님에게 물어보면 된다. 


게다가 우리는 언어를 교환하면서 

미국과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배우고, 

서로가 살아온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배우게 된다.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싸울 수 있지 않느냐고 

질문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다르기 때문에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할 기회가 주어진다. 


부부 사이에 은근히 비꼬는 말이 나올 때도 있고, 

남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말이 나올 때도 있는데 

언어가 다르면 "시간"이 주어진다. 

내가 하는 말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 볼 시간.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해도 

무조건 상처를 받거나 반응을 하기보다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나? 하고 

생각해 볼 시간이 주어진다. 

만약 내가 상대의 의도치 않은 말에 

상처를 받고 예민해진다면 

내가 왜 상처를 받지? 하고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도 생긴다. 

그리고 서로에게 상처가 아닌 

성장이 되는 말을 하기 위해 

어떤 말이 상대에게 힘이 되는지 

직접 물어볼 수 있는 시간도 생긴다

우리가 서로의 말에 상처를 받으면서도 

고쳐지지 않는 이유는

서로에게 묻지 않고 짐작해서 

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어가 다른 우리'는 매일 대화를 하며 

상대방을 알아가고, 스스로를 알아갈 기회를 얻었다. 


"언어"는 참 중요하다. 

언어에는 우리의 삶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이 만나면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세계가 충돌한다. 


하지만 충돌은 기회가 된다. 

충돌이 있어야 생각을 하게 된다. 

충돌이 있어야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충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충돌을 기회로 받아들이고 나니 

충돌은 우리의 관계를 더 풍성하게 해 주고 있다.


어쩌면 충돌이 넘쳐나는 이 세상도 

충돌을 기회로 보는 사람이 많아지면 

더 풍성한 세상, 서로를 이해하고 

같이 나아가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끄적여본다. 




새로운 시선을 가져다줄 질문들

1. 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언어의 장벽'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 언어의 장벽 때문에 어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생겼는가.

- 같은 언어를 하더라도 다른 생각이 담겨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2. 내가 '대화'할 때 어떤 어려움을 겪는가?

- 무엇이 나를 힘들게 만드는가. 충돌을 겪게 만드는가.

- 그 충돌로 인해 나는 무엇을 배우게 되었는가. 

- 나의 대화는 성장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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