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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 디자이너 Dec 16. 2023

다른 나라 사람이 된다는 것..

내가 가진 권리와 책임을 적극적으로 질문해 볼 수 있는 기회

"내가 만약 한국인이 아니라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이런 상상을 해 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상상일 뿐 

다른 국적을 갖기 위해 

구체적으로 계획까지 해 본 사람은 

아마도 5% 이내이지 않을까 싶다. 


나도 "내가 다른 나라 사람이라면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라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내가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떠한 노력을 해서 얻은 것이 아니기에

대한민국의 국적을 갖고 있어  

다행이라거나 감사하단 생각도 

해 본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민을 준비하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의 '국적'에 대해 낯선 시선을 가져 볼 기회가 생겼다. 


일단 다른 나라에 이민을 가게 되면 

먼저, 그 나라에 합당한 목적과 바람직한 신분으로 

살 것을 허락받는 '비자'를 받아야 하고, 

그다음에는 그 신분으로 그 나라에서 계속해서 

살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는 '영주권'을 신청해야 하고, 

만약 그 나라의 국민으로서 선거를 할 수 있는 

권리까지도 얻고자 하면 '시민권'까지 신청을 해야 한다. 


그냥 나와 내 가족이 원한다고 해서 

새로운 나라에 들어가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한국계 '미국인'과 결혼하기 때문에 

결혼만 하면 미국에서 살 수 있고, 

미국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에서의 신분을 내려놓고,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신분으로 산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국에 내가 결혼하기로 약속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약혼비자'를 신청해서 

내 손안에 받아 들기까지만 1년 8개월이 걸렸다. 

'약혼비자'를 받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서류들과 

변호사 선임 비용만 해도 상당했고, 

내가 그 나라에 들어가도 

해가 될 것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나의 건강, 범죄기록, 직업을 

증빙하는 서류들들을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우리가 정말 결혼하기로 

약속한 사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우리의 데이트 사진들과 편지들, 

카카오톡 채팅 내용 등을 일일이 스크랩하고 

우리의 서명으로 인증해야 했다. 


물론, 위장결혼을 해서 

미국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철저히 하는 것은 이해한다고 하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지쳐갔다. 

그래도 이 과정이 없으면 

우리는 결혼한 부부의 신분으로 살 수 없고, 

미국에서 함께 살 수 없고, 

앞으로의 신분도 떳떳할 수 없기에 

이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그 길고 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약혼비자를 받았고, 

미국행 비행기를 탔으며, 

미국 판사와 증인들 앞에서 결혼선서를 했고, 

이제는 영주권을 신청해서 

또 다른 '과정' 속으로 진입 중이다. 




돌아보면, 그 기다림과 준비의 시간이 

참 고되고 야속하기는 했지만 

앞으로 나의 삶의 터전이 

한국이 아닌 미국이 된다는 것,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이 될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필요했던 시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 노력 없이 받은 '한국인'이라는 신분.

그 권리와 책임. 

이제는 그 신분이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니란 것을 안다. 

그리고 '결혼한 부부'라는 나의 신분. 

그 권리와 책임. 

그 또한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될 소중한 신분이다. 


어렵게 얻은 만큼 소중하게 여겨질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살아온 내게 

이 과정은 꼭 필요한 과정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만 

그 좋은 것이 거저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이 좋은 것을 누리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 


앞으로 겪게 될 영주권과 시민권 얻기까지의 여행은 

내게 어떤 새로운 생각을 가져다줄까? 

우리에게 어떤 경험을 선물해 주게 될까? 


한 나라의 국민이라는 권리와 책임. 

그리고 한 사람의 아내라는 권리와 책임. 

거저 받았을 때는 몰랐지만 

어렵게 얻어보니 알게 되는 소중함. 


이 소중함이 잊히지 않으려면 

내가 받은 이 권리와 책임을 잘 알아야 한다. 


이 기다림과 고난의 시간이 없었다면 

놓치고 살았을 나의 권리와 책임. 


나에게 이러한 시간이 없었다면

'너는 이걸 할 수 있어. 너는 이걸 해야 해.' 

라는 말에 수동적으로 끌려다녔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이지?"

"나는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지?"

하고 적극적으로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다행이고, 오히려 감사하다. 


앞으로 이 권리와 책임을 잘 알고 

나와 우리와 남을 위해 잘 사용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길.. 




새로운 시선을 가져다줄 질문들 

1. 한국인이라는 국적이 당신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 한국인으로서 누리는 특권.

- 한국인이라서 힘들게 하는 점. 

-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가진 권리와 책임에 대한 생각. 

-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점. 


2. 나는 지금 어떤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 나에게 '신분'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 

- 그 신분이 당신에게 주는 기회. 

- 그 신분이 당신에게 주는 책임. 

- 이 신분을 지키고 싶은 이유. 

- 새로운 신분으로 살 수 있다면. 


3. 다른 나라의 국민이 된다면? 

- 어떤 나라에서 어떤 신분으로 살아보고 싶은지. 

- 이방인으로 산다는 기분이 어떨지. 

- 다른 나라에서는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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