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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Aug 29. 2024

열등감 때문에 행복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

[열등감 이별여행] 15화

[치앙마이에서 7일 차]




치앙마이에 온 지 7일 차, 타인 없이 혼자 산지 7일 차, 나에게 의지한 지 7일 차가 되었다.


Q. 오늘은 뭘 하고 싶어?

요즘 들어 본인에게 질문하고 답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말처럼 시작은 버벅였어도 벌써 삶에 놀라운 변화가 생긴 것이다. '매일 나에게 질문하고 답하기'라는 숙제를 꾸준히 한 덕이었다.

아침을 먹으며 내게 물었다.

'오늘은 뭘 하고 싶어?'

오랜만에 영화가 보고 싶었다. 관광하는 것도 좋지만, 조용한 밤에 혼자 가만히 영화에 젖고 싶었다.

'그래. 그렇게 하자.'


모든 일을 내가 결정

여행에 오고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다. 동시에 가장 좋았던 점이기도 하다.

바로 '모든 일을 내가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둘이 여행 오면 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을지, 젤리를 먹을지조차 상의해야 한다. 그만큼 책임이 분산되고 부담이 덜하다.

혼자 여행 오면 비행기, 숙소, 환전 등 모든 걸 혼자 고려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만큼 책임이 크고 부담스럽다.

처음엔 혼자 오게 된 여행이 버거웠다. 한 번도 홀로 서본 적 없는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은 완전히 다르다.

혼자 여행 오면 오로지 나에게 집중한 채 고려하고 결정할 수 있다. 그만큼 본인에게 솔직해지고 과감해진다.

물론 둘이 있을 때보다 고민하는 시간이 배로 들어간다. 신경 쓰다 보니 머리가 지끈댈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골치 아픈 시간''나를 탐구하는 시간'과 동일했다.

시간을 들일수록 나를 알게 되고 나와 가까워졌다. 모든 일을 내가 결정한다는 건, 참으로 자유롭고 용기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행복한 일이었다. 결코 부담이 아니었다.

'오늘밤, 나는 영화를 보겠어.'라는 작은 결정 또한 그렇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고 선택하는 것. 그리고 그 선택에 의심하지 않는 것.

여행 오면서 바뀐 내 첫 번째 모습이었다.


고대하던 밤이 됐다. 드디어 영화를 볼 시간이었다. 야시장에서 사 온 꼬치를 상에 펼쳐두고 태블릿을 켰다.

'으음.. 뭘 볼까..'

왜인지 애니메이션 영화가 당기는 오늘. 영화 스크롤을 내리다 마음에 드는 포스터를 발견했다. 그렇게 영화를 틀고 꼬치를 들었다.

-오오.. 재밌다..

영화는 기대 이상으로 재밌었다. 스토리부터 연출까지 탄탄했다. 맛있는 꼬치를 먹으며 영화를 보니 더없이 행복했다.

그때 갑자기 아무개가 떠올랐다. 왜 늘 갑자기 떠오르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Q. 열등감은 화재와 같다고?

아무개의 입냄새가 생각났다. 언젠가 대화할 때 맡았던 향 좋은 냄새였다.

'걔는 어떻게 입냄새 마저 좋을까? 너무 부럽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입냄새까지 부러워하다니..'

순간 어이없어 웃음이 났다. 하지만 아무개에 대한 열등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도 사실이었다.

생각은 입냄새에서 인생 전체에 대한 부러움으로, 그리고 열등감으로 번져갔다. 화재 연기처럼 순식간에 말이다.

'아무개는 어쩜 그렇게 멋있을까. 나랑은 차원이 달라.' 

'나는 안될 거야.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나는 계속 못날 거야.'

갑자기 마음이 우울해지면서 입꼬리가 내려갔다.


열등감 때문에 행복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

하필이면 너무나 맛있는 꼬치에 하필이면 취향 저격인 영화.

그렇게 행복한 순간인데, 열등감에 모든 게 흐려져 버렸다. 먼 타국까지 와서 아무개를 생각해야 하다니. 억울해서 분이 났다.

영화를 잠시 중단하고 눈을 감았다.

'어떻게 하면 열등감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열등감은 화재와 같으니 비슷한 원리로 없앨 수 있지 않을까?'

'불을 끄듯, 열등감도 꺼버리면..'

그러나 10년 전부터 활활 타올라 있는 열등감의 불씨는 꺼지지 않을 것 같았다. 답 없는 상황에 눈물이 고였다.

'아니야.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고개를 젓고 다시 생각했다.

'불을 끌 수 없다면 우선 연기부터 피하자.'


나만으로 가득한 이야기

화재가 났을 때 연기를 피하는 방법이 있다. 젖은 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몸을 낮추는 거다. 자욱한 연기를 피해 호흡할 수 있는 방법이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뭘까? 숨 쉴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웃기지만, 정말 화재 연기를 피하는 것처럼 침대 아래로 몸을 숙였다. 그때 바닥에 떨어져 있던 일기장이 눈에 들어왔다. 여행 오고 매일 작성했던 '하루 기록'이었다. 그대로 자리에 앉아 일기장의 첫 장부터 천천히 읽어봤다.

-하하하, 맞아. 이때 꽤 고생했었지.

-와.. 이건 정말 맛있었어.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일기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어느새 열등감을 잊은 채 나만의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일기에서는 너무나 행복하고, 어리석고, 웃기고, 게으른 내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다. 나만의 이야기로 가득 찬 일기장엔 열등감이 끼어들 자리가 없어 보였다. 일기는 '하루 기록'이 아니고 '나만으로 가득한 이야기'였다.

'지금은 열등감이 느껴지지 않아..'

'나만으로 가득한 이야기' 즉, '나에게 집중된 이야기'를 통해 열등감을 잊어버린 거였다. 이때 난 깨달았다.

'결국 나에게 집중하면 열등감이 해결되겠구나.'

정말 화재 연기 피하듯 몸을 낮춰 대피로를 발견한. 열등감에 대항하지 않았다면, 그 어떠한 모션도 취하지 않았다면 찾지 못했을 대피로. 결국 나는 오늘 또 해낸 것이었다.

-그럼 마저 먹어볼까!

나는 웃으며 영화를 다시 재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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