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 오고 매일 아침마다 산책을 했다. 시차 때문에 눈이 일찍 떠진 것도 있었지만 아침에만 느낄 수 있는 상쾌함이 좋았다.
'솨아아-'
태국은 무더운 날씨 탓에 거의 모든 건물에서 물 분무기를 뿌려댄다. 덕분에 쪄 죽다가도 물을 맞아 정신 차릴 수 있다.
'기분 좋다-'
흐느적이며 걷다가 시원한 물을 맞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이 순간만큼은 에어컨이 부럽지 않다.
걷다가 본 것들
'오늘은 어느 방향으로 걸어볼까?'
아침에 나오면 1시간은 걷다가 숙소로 돌아간다. 완전히 무계획형인 나는 당연히 지도 따위 보지 않고 그때그때 끌리는 대로 걸어간다. 이번엔 오른쪽으로 크게 돌기로 했다.
'뚜벅- 뚜벅-'
걷다 보니 이쁜 꽃을 발견했다.
걷다 보니 목줄 없이 자유로운 강아지를 만났다.
걷다 보니 정갈하게 쌓인 돌담을 봤다.
SNS 없이 살아보기로, 핸드폰에 기대지 않기로 다짐한 지 4일 차.
나는 어느덧 화면 속이 아닌 밖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걷다가 얻은 것들
'뚜벅- 뚜벅-'
걷다 보니 처음 보는 핑크0색 꽃을 발견했다. 문뜩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가 봤다면 좋아했겠지, 분명 사진을 찍자고 말했을 거야.'
걷다 보니 목줄 없이 자유로운 강아지를 만났다. 처음엔 물리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웬걸 세상 반갑게 꼬리 흔드는 강아지. 우리는 한참 동안 서로의 친구가 되어주어 놀았다.
걷다 보니 정갈하게 쌓인 돌담을 봤다. 돌담을 쌓아 올렸을 누군가의 손길이 그려졌다. 하나하나, 차곡차곡 올려진 노력들이 마치 영상으로 보이는 듯했다.
그렇게 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에 대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다.
핸드폰을 봤다면, 작은 화면에 머물렀다면 몰랐을 많은 걸들을, 그저 산책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역시, 결심하길 잘했다
물론 지금도 SNS가 당길 때가 있다. 당장 태국에서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을 찍어서 업로드하고 싶었다. 그렇게 내가 잘 지낸다고 티 내고 싶었다. 지인과 소식을 공유하고 싶기도 했다.
여전히 하고 싶지만, 역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만두길 잘했다. 결심하길 잘했다.'
Q. SNS를 끊으면 좋은 점?
SNS를 끊으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나에게 집중'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간 나는 취미를 정할 때도 '타인이 보기에 멋있는 취미'에,
옷을 고를 때도 '트렌드에 맞춰진 옷'에,
사진을 찍을 때도 '게시글에 올릴 만한 사진'에 집중했었다.
모든 선택에 있어 '나'보다 '타인'을 고려했다.
Q. SNS를 끊고 가장 힘들었던 점?
자랑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긴 시간을 투자해 어렵게 완주한 곡이 있었다. 뿌듯한 마음에 연주한 영상을 SNS에 게시하고 싶었다. 이렇게 우아한 취미가 있다, 이렇게 어려운 곡을 완주했다고 자랑하고 싶었다. 노력의 대가를 전시하고 싶었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 버텨보자.'
스스로를 계속 말렸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나는 결국 영상을 게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왠지 모를 허전함이 몰려왔다.
'이제는 무슨 곡을 연습해야 되지? 어차피 아무도 듣지 않을 텐데..'
그때 의문이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왜 연습했던 거지? 남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아니야- 내가 듣고 싶어서야.'
SNS를 끊지 않았다면, 허무함을 느끼지 않았다면 몰랐을 깨닮음이었다.
그렇게 나는 '타인이 들었을 때 좋은 곡' 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곡'을 연주하는 사람이 되었다. 작은 시도 하나가 취미의 가치를 완전히 바꾼 것이다.
Q. SNS를 끊으면 열등감이 없어질까?
열등감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분명 효과가 있다. 인생에서 SNS가 사라지면 비교, 장식, 사치를 모두 내려두고 온전히 '나'에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 더 힘들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나 같이 열등감에 허덕이는 사람에겐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SNS에 가둬진 내가 아닌,
치장된 내가 아닌,
'초라한 나'를 마주하는 것.
그것이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뿌리가 된다. 열등감을 극복하고 싶어 관련 영상을 시청해도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초라한 나'를 마주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힘들겠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열등감에 대항할 수 있다.
시도의 의미
나는 SNS를 지우기만 100번, 깔기만 100번을 해댔다. 매번 실패하는 본인을 보며 좌절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위해 연신 시도하는 본인을 발견하기도 했다. 덤으로 SNS를 할 때와 하지 않았을 때의 차이도 알 수 있었다.
'어쨌든 결국 SNS 끊기는 실패한 거 아니야?'
결론은 성공했다. 워낙 많이 실패해 몇 번 만에 성공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난 지금 SNS를 끊었고, 덕분에 매우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SNS를 끊고 딱 6개월만 살아보면 알게 될 거다. 세상과 나를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말이다.
물론 실패했다 하더라도 잘 살고 있을 것이다. 사실 모든 시도는 실패해도 된다. 그저 '날 위해 노력하는 누군가'가 '나'라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된다. 내가 날 위해 뭔가를 시도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달라진다.
'하아-힘들어-'
그러나 치앙마이에 있을 때는 SNS를 끊은 지 고작 4일 차인 상황. 한창 열등감에 힘들어했을 때다.
사실, 걷다가 꽃, 강아지, 돌담을 봤을 때도 머릿속으론 SNS와 아무개를 떠올렸다. 자랑하고 싶은 욕구와 동시에 열등감을 느껴댔다.
'여행 오면 달라질 줄 알았는데..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역시 그날도 나는 자책하고 본인을 의심하며 숙소로 돌아갔다.
과거의 나에게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다행히 마음이 건강해졌다. 열등감을 이기겠노라 다짐하며 치앙마이에 간 자신 덕분에 괜찮아졌다.
치앙마이에서 자책하고 있는 나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너는 꼭 언젠가 괜찮아져. 그걸 내가 알아. 그러니까 의심하지 않아도 돼."
"날 위해 용기 내줘서 고마워. 덕분에 오늘의 내가 참 기뻐."
지금도 열등감에 완전히 해방된 건 아니지만, 치앙마이에서 괴로워하는 나에게 꼭 전하고 싶다.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