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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Aug 22. 2024

열등감을 느낄 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열등감 이별여행] 13화

[치앙마이에서 3일 차]




치앙마이에서 벌써 2일을 잤다. 홀로 있어 심심하진 않을까, 적막한 방이 외롭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게 웬걸, 아직 3일 차긴 하지만 제법 잘 적응하고 있었다.

'나는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이었구나.'

서둘러 노트를 꺼내 적었다. 새롭게 발견한 '나'였다.

나는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이다

뿌듯한 마음에 웃음이 나왔다. 물론 아직 무엇하나 답을 찾은 건 없다. 열등감을 극복하지도, 진로를 찾지도, 나를 사랑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웃고 있다. 그거면 충분한 거 아닐까? 그거면 이미 많은 발전을 한 거 아닐까? 여전히 마음이 답답하지만,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Q. 얼굴에 주름이 많다고?

웃고 있는 얼굴 그대로 거울을 바라보았다.

'흐음-'

거울 속 비친 내 모습이 못나보였다. 입 주변에는 주름이 깊게 파여 있었고 눈 아래로는 셀 수 없는 기미가 뿌려져 있었다. 평상시와 다름없는 못난 내 얼굴이었다. 그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왜 웃고 있는 얼굴이 아니라, 외모만 보고 있는 거지?'

'입가에 주름이 있는 건 그만큼 많이 웃었다는, 눈 아래로 기미가 있는 건 그만큼 잘 놀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분명 웃느라, 노느라 행복했을 거다. 그런데 나는 왜 행복의 흔적을 보며 찡그리고 있었던 걸까.

나는 다시 거울을 바라보며 친언니가 말했던 '시선의 이동'을 적용해 봤다.

'그래, 주름 말고 웃고 있는 '표정'에 집중해 보자.'


거울 속 내 '표정'에 집중

천천히 거울 속 얼굴을 바라보았다. 살면서 처음으로 길게 자신과 아이컨텍하는 순간이었다.

'이상하다. 왜 내가 어색하지?'

거울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거울 속 본인을 어색해하고 있었다.

그동안은 외모를 정돈하기 위해, 이에 낀 고춧가루를 떼기 위해 거울을 들었었다. 한 번도 내 '표정'을 보려 거울을 든 적이 없었다. 다시 말해, 타인이 보는 나를 가꾸기 위해서만 거울을 봤었다. 처음으로 내 표정을 들여다보는 지금, 당연히 어색할 수밖에 없다.

'어색해도 피하지 말자.'

얼굴을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 눈썹은 두꺼웠고 입술은 얇았다. 눈은 갈색이었고 볼에 점이 박혀 있었다.

'나는 이렇게 생겼구나.'

몇십 년 동안 나를 봐왔는데, 드디어 나를 제대로 본 기분이었다. 새삼 놀랍고 신기했다.

'피식-'

몇 분째 거울을 들여다보는 자신이 우스워 순간 웃음이 났다. 동시에 거울 속에 웃고 있는 내가 보였다.

'나는 웃으면 이런 표정을 짓는구나.'

처음이었다. '웃는 표정'을 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동안은 내가 '이쁘게 웃는지' 에만 집중했었다. 다시 노트를 꺼내 들었다. 이번에는 표정에 담긴 의미까지 적어보았다.

웃는 표정: 눈이 얇게 감기고 입가로 보조개가 생긴다. 눈이 반짝이고 앞니가 드러난다
표정에 담긴 의미: 마음의 여유와 몽글한 감정을 느끼는 중이다

'내가 슬플 때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새삼 궁금했다. 이어 놀랐을 때, 당황할 때, 감동할 때 등 더 다양한 표정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표정을 노트에 적어내야지. 표정에 담긴 의미까지 알아내야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Q. 열등감을 느낄 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또 궁금한 한 가지. 열등감에 힘들어할 때면 나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거울을 본 적은 없지만 분명 입술을 내밀고 눈썹을 아래로 축 내렸을 것이다.

표정에 담긴 의미는 고통일 것이다.

고통을 겪는 사람의 표정. 살면서 많이 봐왔다. 어떤 위로도 건넬 수 없는 무너지는 표정이었다.

'나도 그런 표정을 지었겠구나. 만일 내가 거울 속 비친 나를 봤더라면, 외모가 아닌 '표정'을 봤더라면, 지금의 나는 좀 괜찮았을 가.'

거울 속 표정, 표정에 담긴 의미, 그걸 통해 알 수 있는 상황. 나는 그간 본인에게 참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이라도 내 '표정'을 봤더라면 나무랄게 아니라 그저 말없이 안아주지 않았을까.'


이제부터라도 하면 되지

지금까지 나에게 무심했다면 이제부터라도 다가가면 된다.

'나를 천천히 더 알아가 보자.'

거울을 바라보며 다시 웃어 보다. 왜인지 본인과 친해진 느낌이 들었다.

'어라..?'

놀랍게도 못났던 얼굴이 이뻐 보이까지 했다.

외적인 요소 때문이 아니라 그저 사람으로서 이뻐 보였다. 그래, 자신을 평가의 대상이 아닌 한 명의 인격체로 바라보니 이뻐 보이는 거였다.

'사람은 다 이쁘구나.'

괜히 손으로 얼굴을 쓸며 감탄했다. 누가 보면 나르시시즘에 걸린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다.


작은 시도, 큰 도약

나는 오늘 거울 속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분명 어색하고 눈길을 피하고 싶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내 얼굴을 관찰하고 표정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 '거울을 봤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내가 나를 바라보는 법'을 알게 된 중요한 순간이었다.

본인과 친해지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난 나의 눈을 똑바로 마주고 마침내 나의 참 표정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의 '거울 보기' 도전은 작지만 큰 시도, 작지만 큰 도약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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