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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Aug 16. 2024

언제까지 열등감에 쭈그리고 살래?

[열등감 이별여행] 12화

[치앙마이에서 2일 차]




Q. 넌 뭘 할 때 행복해?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떠오르지 않는다.

좀처럼 말하기 힘든 답변에 질문을 바꿔보았다.  


Q. 넌 뭘 할 때 몰입해?

행복이 곧 몰입은 아니다. 그러나 몰입은 곧 행복이다. 사람은 무언가에 빠져드는 순간 우주 속에 홀로 떠다니는 듯한 묘한 기분을 느낀다. 지구 밖으로 튕겨버려 외롭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유롭고 깊어진다. 몰입, 다른 말로는 '온전히 나와 보내는 시간' 이다.

최근에 나는 몰입한 적이 없기에, 과거의 나를 떠올려 보았다.

'예전에 나는 할 때 몰입더라…'

그때 떠오른 한 가지. 바로 글쓰기였다.


어린 시절 나는 글쓰기를 참 좋아했다. 문법은 고사하고 맞춤법조차 번번이 틀려댔지만 그저 끄적이는 게 좋았다. 감정을 풀어내는 게 좋았고 상상을 써 내리는 게 좋았다.

그렇게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에 60페이지 정도 되는 스릴러 소설을 완성했다. 언젠가는 꼭 출판하리라는 꿈이 담긴 소설이었다.

그러나 왕따를 당하기 시작하면서 을 내려놓게 되었다.


사람들 내게 말했다.

'너가 잘못한 거야. 너는 왕따야.  패배자야.'

그들의 목소리는 곧 내 목소리가 되어 본인에게 세뇌했다.

'가 잘못한 거야. 난 왕따야. 난 패배자야.'

반복적인 세뇌와 가해자들의 미소는 자연스레 열등감을 불러일으켰다.

'난 잘하는 게 없어. 난 열등해. 그들은 행복해. 난 불행해.'


60페이지의 소설을 세상에 내비치고 싶었다. 분명 부족한 글이지만 출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열등감이 내게 소리쳤다.

'너가 쓴 글은 엉망이야! 제대로 된 문장이 없어!'

'나중에 손가락질당해야 정신 차릴래? 실패한 글이야! 헛수고라고!'

내가 눈을 가리면 열등감은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가 귀를 막으면  열등감은 눈으로 미래를 보여줬다.

'넌 안돼! 결코 그들보다 행복해질 수 없어!'

'그만... 그만..'

나는 결국 쭈그리고 앉아 눈과 귀를 몽땅 막아버렸다. 그렇게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열등감에게 행복과 몰입을 모두 빼겨버린 것이다.


Q. 언제까지 열등감에 쭈그리고 살래?

쭈그리고 산지 벌써 10년이다. 이대로 조금 더 있으면 허리가 완전히 굽어질 것 같다. 꼭 꼽추처럼 말이다.

'허리 아파.. 이러다 정말 꼽추 되는 거 아니야?'

척추는 한번 굽어지면 재활이 힘들다. 오랜 시간 유지할수록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

'그래, 지금은 이렇게 쭈그리는 게 편하다 치자. 그런데 나중에 허리피고 싶어지면? 그런데 그때는 이미 허리가 굽어버린 상태라면? 허리 피긴커녕 고개조차 들지 못하는 상태라면?'

'이제는 허리 펴야 하지 않을까. 더 늦기 전에, 허리가 완전히 굽기 전에 일어서야 하지 않을까. 그래, 용기 내보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헉—'

갑자기 공포가 몰려왔다. 나는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가뜩이나 쫄보인 내가 열등감에 대항할 수 있을까? 다시 상처받는 건 아닐까? 무려 10년을 피해왔는데 지금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고개 드는 순간 듣게 된 열등감의 질타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야. 할 수 있어.'

그러나 난 분명 조금씩 강해지고 있었다. 아직도 자신을 의심하긴 하지만, 그간 봐왔던 노력의 결과는 의심할 수 없이 또렷했다.

'한번 더 믿어보자. 그동안 봐왔던 결과를 믿어보자.'

주먹을 꽉 쥐고 천천히 숨을 쉬었다.


해보는 거야. 바뀌는 거야

고개를 들 눈과 귀를 열었다. 그렇게 10년 만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목표는 한 페이지를 채우는 것이었다.

'넌 못한다니까? 아직정신 못 차렸니?'

다시 들려오는 열등감의 외침. 몸에 힘을 주고 버텨댔다.

'달라져야 해. 이대로 살 순 없어.'

고개를 더 위로 쳐들었다. 열등감이 소리치면 나는 조용히 마음을 쓸었다.

'괜찮아. 괜찮아.'

한동안 이어지는 열등감의 잔소리.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글을 써 내렸다.

그렇게 겨우 한 페이지를 완성했다. 긴장이 풀린 건지 그대로 누워버렸다.

그때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열등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약하고 희미한 소리였다.

'미안해. 사실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어.'

이어지는 말.

'내가 많이 괴롭혔는데도 버텨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죽 그래주라.'

이 말을 끝으로 열등감은 머리 위에 떠있 먹구름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때 나는 깨달았다.

'아- 열등감도 결국 나였구나.'

내게 모진 말을 퍼붓던 열등감도 곧 나였다. 나를 미워할 리 없는 나였다. 마음이 쓰렸다. 열등감에게 사라지라고 비는 것보다, 열등감을 달래야 함을 알게 되었다. 마음 약한 나는 달래다 보면 언젠가 사라질 게 분명하니 말이다. 나를 달래는 방법은 그저 천천히 흐리게 하는 거였다. 거대한 먹구름도 매일 손 휘젓다 보면 언젠가 흩어져 버리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매일 먹구름에 대고 손 휘젓기로 결심했다.


매일 손 휘젓기

하루에 3장씩 소설 쓰기

그동안 열등감이 무서워 피해왔던 글쓰기다. 글을 끄적일 때마다 먹구름은 다시 내게 비 내릴 거다. 강력한 집중호우를 쏟아낼 수도 있다.

'너가 정말 될까? 너가 과연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구름에 들어갔던 열등감이 다시 소리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해야 한다. 달라져야 한다.


한 페이지의 글쓰기를 통해 열등감에 대항했다. 이젠 꾸준한 글쓰기를 통해 열등감에 손 휘저어야 할 때다.

내 행복과 몰입을 찾기 위해서라도 꾸준히 써야 한다. 설령 글쓰기에 소질 없다는 걸 알게 될지라도, 작가라는 꿈이 허상이었다는 걸 알게 될지라도 말이다.

혹여 아무것도 얻못할지라도, 날 위해 시도했다는 것 자체가 내게 귀한 자산이 될 게 분명하다.

그렇게 나는 치앙마이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글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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