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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Aug 15. 2024

뜬금없이 열등감을 느낀다고?

[열등감 이별여행] 11화

[치앙마이에서 2일 차]




아침이 되고 눈이 떠졌다. 먼 타국이라, 그것도 혼자라 무서워 잠 설칠 줄 알았는데…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침 흘리며 자버렸다.

현재 시각은 오전 7시, 한국으로 치면 오전 9시였다.

'배고프다..'

어젯밤 태국에 떨어지고 빵 한 개 먹은 게 다였다. 숙소에 먹을 것도 없고, 어쩔 수 없이 챙이 큰 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왔다.

'워..!'

오전이지만 섭씨 33도에 육박하는 날씨. 오후가 되면 섭씨 40도까지 오른다고 했다. 벌써부터 피부가 끈적해지는 것 같았다.

'빨리 가게로 들어가자.'


그러나 이른 시간부터 영업하는 가게는 없었다. 강렬한 햇빛에 타들어가기 직전, 결국 눈앞에 보이는 편의점으로 피신했다. 역시, 전 세계 편의점은 에어컨 풀가동으로 통일된 걸까. 피부가 금세 뽀송해졌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편의점에서 아침을 사가자.'

그렇게 매대에 서서 뭘 사갈지 고민했다. 그때 불현듯 아무개가 떠올랐다. 정말 뜬금없이 말이다.  

'아무개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Q. 왜 나는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걸까?

사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아무개가 떠올랐다. 아무개의 럭셔리한 스타일과 아름다운 미소가 생각났다.

'생각하지 말자- 생각하지 말자-.'

눈을 감고 고개 저어도 소용없었다.

'지긋지긋해-'

여행까지 와서 아무개를 생각한다고? 여행을 왜 즐기지 못하는 거야? 왜 너는 너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거야?

'너무 한심해. 열등감과 이별하려고 온 여행 아니었니? 왜 못하는 거야?'

언제나 그랬듯 열등감은 자책을 하게 만들었다. 얄미운 녀석.


편의점 거울로 내가 비쳤다. 검은색 나시티에 헐렁한 바지.. 거지 같은 차림새였다.

'아무개라면 이렇게 입지 않았겠지, 근사하고 이쁜 옷을 입었겠지.'

마음속으로 비교하기 시작했다. 아니, 비교할 수 없었다. SNS 속 아무개는 너무나 빛이 났기에, 실재로도 그렇기에 나는 비빌 수 조차 없는 사람. 나에게 본인은 딱 그 정도였다.

'아냐! 일단 먹을 것부터 사자!'

짙어가는 열등감에 서둘러 화재를 돌렸다.


편의점에 서서 한참이나 고민했다. 도통 내가 뭘 먹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없었다. A가 좋으면 B가 걸렸고, B를 집으려 하면 C가 보였다.

이러기를 벌써 30분째.. 다시 아무개가 떠올랐다.

'아무개라면 빨리 골랐을 텐데. 역시, 난 아무개보다 못해.'


Q. 뜬금없이 열등감을 느낀다고?

열등감은 가끔씩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툭 하고 튀어나온다. 지금 같은 상황처럼 말이다. 선택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었지만, 열등감을 느껴버렸다.

열등감은 처음엔 '자존감', '자신감'  침투한다. 이어 '본인', '삶', '결정' 으로 영역을 확장한다. 열등감은 '암' 같아서 결국 모든 생각을 점령해 버린다.

나는 열등감 말기 환자, 그러니 뜬금없는 상황에서도 열등감을 느낀다. 암이 예고 없이 몸을 툭툭 쳐대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왜 이렇게 느릴까. 나는 왜 이렇게 선택을 못할까.'

연신 아무개를 생각하며 자존감을 갉아먹었다.

그때 문득 친언니가 해 준 말이 떠올랐다.

'시선의 이동' 이었다.


시선의 이동

언젠가 친언니가 해 준 말이 있다.

'모든 상황은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시선을 이동시켜라. 초점을 옮기는 거다. 사람의 눈알은 동시에 움직이기에 결국 하나만 볼 수 있다. 그러니 그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사람은 경주마 같아서 시선을 둔 곳만 주야장천 바라본다. 분명 다른 볼만한 게 많은데 말이다.'

시선을 이동시킨 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나이든 할아버지에게 새로운 가치관을 주입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불가능한 게 아니라면 한 번쯤 해볼 만하지 않을까?


나는 천천히 시간에 기대 점을 옮겨봤다.

'어쩌면 '선택장애'의 다른 의미는 '신중함'이지 않을까?'

좋아- 계속 이동시켜 보자.

'선택이 느리다는 건 그만큼 진중하단 걸 거야.'

'선택이 느리다는 건 그만큼 선택지가 많다는 거겠지.'

'뭔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야.'

대뜸 '감사' 로 넘어가긴 했지만- 계속 이어가 보자.

'편의점을 더 자세히 구경할 수 있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좀 더 생각해 볼 수 있네.'


시선을 처음 옮겨보기에 다소 버벅댔다.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숙여졌던 고개가 들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20분의 시간을 더 들여 음식을 골랐다. 이번엔 본인을 닦달하지 않았다. 그저 선택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렇게 먹게 된 아침메뉴. 무난한 맛이었다.

'괜찮네.'

들인 시간에 비해 맛없는 맛, 들인 시간에 비해 금세 사라진 음식. 그렇지만 '날 위해 들인 시간' 이 좋았던 순간. 맛은 별로지만 총평은 만점인 식사였다.

밥을 다 먹으니 적막함이 느껴졌다. 티비를 켤까 고민했지만, 좀 전의 일을 회상하기로 했다.


생각의 변환

'시선의 이동이 정말 중요하구나'

나는 좀 전 편의점에서 시선을 이동시켰다.

[버벅대는 나] 에서 [고민하는 나] 로

[선택을 못하는 나] 에서 [선택에 신중한 나] 로

[갈팡질팡 하는 나] 에서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 보는 나] 로 이동시켰다.

'시선의 이동' 은 곧 '생각의 변환'이다.

행동을 바꾸는 것보다 힘든 게 생각을 바꾸는 거다. 행동보다 간단하지만 참으로 어려운 일이 생각을 바꾸는 거다.

그 어려운 일을 오늘 해낸 것이다.

'잘했다. 잘했어.'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본인을 사랑하기 위해 앞으로 얼마나 더 긴 시간이 들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 해낼 거라는 예감이 든다. 오늘 했던 것처럼 시도하면 언젠가 해낼 거라는 예감이 든다.

이 생각또한 예전이라면 못했을 거다. 성장하고 있기에 할수 있는 생각이었다.

'그래, 이대로만 하자.'

'이대로만..'

나도 모르게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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