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어찌 강릉은 무사히 다녀왔지만, 치앙마이는 한국과 너무 먼 타국이었다. 태국어는커녕 영어도 잘 못하는 사람. 19박 20일을 그들과 보낼 수 있을까.
'여권이 없어지면 어쩌지? 소매치기당하면 어쩌지? 숙소를 잘 못 잡았으면 어쩌지?'
꼬리를 무는 걱정은 다리를 덜덜 떨게 했다.
'진정하자. 괜찮을 거야.'
한편으론 무섭기도 했지만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자신이 멋있기도 했다. 분명 힘들걸 알면서도, 분명 지금처럼 걱정할 걸 알면서도 나는 시도하고 있다.
'잘했다. 잘했다.'
이제 두 번째 발걸음이다. 천천히, 겁내지 말고 계속 나아가보자.
나는 비행기 벨트를 매고 눈을 감았다.
-곧 비행기가 이륙합니다-
Q. 살면서 한 가장 큰 도전은 뭐야?
바로 지금이다. 홀로 치앙마이에 여행 가는 것. 남들이 보기엔 별거 아닐 수 있지만, 나에게 있어선 가장 큰 도전이었다.
현재 '나'라는 사람은 이렇다.
-모든 시간을 타인에게 의지한다.
-혼자 쉴 줄 모른다.
-취미가 없다.
-고독이 깊어질수록 열등의식이 심해진다.
강릉여행을 통해 조금은 좋아졌지만 2년 반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원점으로 돌아왔다. 졸업, 취업, 퇴사, 이별에 허우적 대다 결국 본인의 색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난 다시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한다. 다시 아무개를 생각하며 열등감을 느꼈고 타신 없인 쉴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고독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다시 두려워졌다면, 다시 도전하면 돼.'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해 떠나는 여행, 고독을 피하는 나에게 아주-긴 고독을 선물하는 여행, 힘듦을 택해 떠나는 여행, 그것이 바로 이번 여행이다.
Q. 그 도전은 왜 한 거야?
겉으로는 [가장 두려워하는 고독을 맞닥뜨리기 위해,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진로를 찾기 위해]서다. 그러나 내면 깊숙이로는 [나라는 사람을 알고 싶어서]였다. '타인과 있을 때'가 아닌 '스스로 존재할 때'가 궁금했다.혼자 있을 때는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언제 기쁨을 느끼고 언제 슬퍼하는지 알고 싶었다. 본인에게 너무나 무지했기에 조금씩 알아가고 싶었다.
나는 지금 자존감도 꿈도 진로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다. 어느 한 면도 뚫려있지 않고 테이프로 칭칭 감은 것처럼 숨이 막혔다.
-자존감 얻는 꿀팁-
-나와 맞는 직장 찾기-
-꿈 찾는 방법-
수많은 정보와 영상들을 봐왔다. 그러나 나에게 대입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몇 번의 시도에도 번번이 실패했다.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개의 방법이 있듯, 해결책은 결국 스스로 깨우쳐야 했다. 점점 지쳐가고 힘이 빠졌다.
'찾을 수 있을 까.. 자존감도.. 진로도..'
나만의 방법을 터득하기란 쉽지 않았다. 애초에 있는 건지 궁금했다. 더 시도했다가 또 실패해 버리면 어쩌지, 하고 겁이 났다. 그냥 이대로 갑갑한 채로 살아갈까, 하고 고개가 숙여졌다.
그때 우연히 보게 된 강릉에서 나에게 쓴 편지. 그렇게 보게 된 문구.
분명 두려웠을 테지만, 용기 내줘서 고마워.
두려웠다. 무서웠다. 겁났다. 그러나 분명 용기 낸 나였다. 과거의 용감했던 사람도 지금의 나였다.
'그래, 다시 떠나보자.'
'뭐라도 시도하면 뭐라도 얻게 될 거야.'
회피지만, 도망이지만, 어쩌면 살기 위해 허우적거리는 모션. 어쨌든 주먹 쥐며 용기 냈던 모션이었다.
'그 도전을 왜 한 거냐고? 나라는 사람을 알고 싶어서. 그리고 용기 내는 내 모습이 멋있어서다.'
"쿨-쿨-"
누군가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6시간이라는 긴 비행시간, 아이도 어른도 모두 지쳐 잠들어 있었다. 창문 밖으로 작게 빛나는 건물 조명이 보였다. 아직 한참 더 가야 하지만 왜인지 잠이 오지 않아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Q. 난 어떤 빛을 내고 있을까?
열등감에 가려졌던, 그래서 타인의 빛만을 바라보던 나. 나는 원래 어떤 빛을 내고 있었을까.
밝은 하얀빛? 은은한 주황빛? 몽글이는 노란빛? 시원한 푸른빛?
창문 너머로 보이는 조명은 작든 크든 모두 밝게 자신의 색을 뿜어대고 있었다. 어떤 색이든 아름답고 이뻤다. 모두 같은 색이면 지루했을 지구는 알록달록 빛나고 있었다.
'주황빛은 하얀빛을 따라 할 수 없다. 하얀빛은 주황빛을 흉내 낼 수 없다.'
자신만의 색으로 이미 완벽한 조명들. 문득 아무개가 떠올랐다. 그녀의 핑크빛이 떠올랐다.
'난 왜 그녀의 빛을 부러워했을까. 나만의 빛을 내면 되는데.'
어쩌면 난 꺼져있는 조명일 지 모른다. 아무런 빛 없이 검게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꺼진 조명은 나름대로 매력적일 것이다.
되레 조명이 꺼져 있기에, 모든 빛을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전구가 뜨거워지지 않기에 깨질 일도 없을 것이다.
'내 빛에 집중하자. 천천히 알아가자.'
그러나 잠시 후, 열등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나도 아무개처럼 핑크빛이었으면 좋겠다. 물론 완전히 같은 빛은 못 내겠지만…'
다시 떠오른 아무개. 분명 좋은 명상이었는데.. 생각의 끝은 결국 아무개였다.
Q. 여행 가는 와중에 열등감을 느낀다고?
'이런, 또 시작이다.'
조명의 색은 다르고, 그래서 아름답다는 거 잘 알겠다. 서로의 빛을 흉내 낼 수 없고 그저 빛내면 된다는 것도 잘 알겠다. 그러나 난 아직 열등감 말기 환자. 무수히 많은 조명이 있어도 아무개의 빛이 가장 이쁠 것 같았다.
'아무개는 지금 열심히 공부하고 있겠지.. 나는 여행이나 가고 있고..'
'날 위해 떠나는 여행? 그냥 현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하는 합리화 아니야?'
갑자기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도전해서 멋있는 본인은 어디 가고 한심한 본인만 남아 있었다. 내 돈 주고 떠나는 여행에 아무개가 불쑥 찾아와 화방을 두고 있었다. 여행 가기 위해,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그간 열심히 알바했다. 그렇게 떠난 여행인데 아무개 생각만으로 우울해지다니.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아무개로 인해 힘들면서도 또 아무개의 소식이 궁금했다.
'아차, 지금 비행기 모드지.'
SNS 속 아무개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모순적이게도 굳이 더 열등감을 느끼려 노력하고 있었다.
'하아-.'
여행까지 와서 열등감에 허덕이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난 왜 이렇게 열등감이 심할 가… 난 왜 이리도 못났을 가…'
얍삽이 열등감은 결국 자책을 하게 만들었다.
'안돼. 안돼.'
고개를 세게 저었다.
'괜찮아. 열등감 느끼는 게 뭐 어때. 자연스러운 일이야. 그냥 지금은 좀 쉬자.'
내가 나를 달래는 방법, 그건 인정하는 거였다. 그러면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약한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