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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Aug 09. 2024

열등감이 가린 건 무엇일까?

[열등감 이별여행] 10화

[치앙마이에서 1일 차]




Q. 열등감이 가 건 무엇일까?

열등감은 지독하다. 태국의 더위보다 지독하다. 물을 뿌려 식힐 수도, 불에 태워 재로 만들 수도 없다. 겹겹이 쌓인 열등감은 어떠한 암흑보다도 깜깜하게 눈을 가려낸다. 그렇다면 열등감이 가건 무엇일까. 

그건 바로 '나' 다. 부러움만 쫒느라, 질투만 하느라 쭈그려 훌쩍대는 본인 돌보지 않는다. 그러곤 되레 검은 천으로 한 겹 더 눈을 가려낸다. 기적인 열등감은 그렇게 스스로를 보지 못하게 한다.


Q. 열등감을 극복하고 싶어?

'열등감을 이겨내고 싶다. 반드시 극복하고 싶다.'

그러나 언제나 쭈그려 있었기에 일어서는 법을 모른다. 그렇게 걷지도 못한 채 절망에 적응한다.

'정말 방법이 없는 걸까?'

친언니가 나에게 해준 말이 있다.

'답이 보이지 않을 땐 환경을 바꿔봐.'

우리는 사회적 인간이기에 당연히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그렇 않더라도 계속 같은 우물에 있으면 계속 같은 생각만 하게 된다.

방법이 없다면, 답이 없다면 무작정 환경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 그게 도망이든 회피든 말이다.


-비행기가 이륙합니다-


드디어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뜨거운 열기가 쏟아졌다. 한국에서부터 입고 있던 패딩을 서둘러 벗었다.

'후아- 진짜 덥다.'

달궈진 프라이팬처럼 땅이 이글대고 있었다. 현재 치앙아미의 온도는 섭씨 40도.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래도 꽁꽁 얼어붙은 한국보다는 차라리 뜨거운 여름이 나았다.

나는 캐리어를 끌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태국 치앙마이, 19박 20일 간의 긴 고독 여행이 드디어 시작된다.


Q. 혼자서도 잘할 수 있을까?

한국어가 생소한 치앙마이, 믿을 건 번역기와 등급 낮은 영어실력뿐이다.

당장 지금 해야 하는 건 다음과 같다.

-택시 잡기

-숙소 체크인 하기

-태국 돈으로 환전하기

치앙마이에 방금 막 도착해 정신없지만, 이 세 가지는 반드시 지금 해야 했다. 그러나 해외여행은 일본이 다였, 그마저도 가족여행이었고, 매번 언니들이 준비해 줬기에 난 사실상 해외여행 무경험자였다.

'혼자서도 잘할 수 있을 가?'

평생을 타인에게 의지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의지할 대상이 '나' 밖에 없다. 의논하고 상의할 대상도 '나' 밖에 없었다.

'해, 해보자..!'

가끔은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인 게 나을 때도 있다. 걱정이 눈을 가리기 전에, 그렇게 아무것도 안 보이기 전에 무작정 일단 하는 거다.

'하는 거야!'

신기하게도 걱정과는 달리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어… 왜 이렇게 순탄하지..?'

되레 너무 쉽게 풀 상황 의심 들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오늘의 미션은 성공이었다.


혼자서도 할 수 있구나

처음으로 깨달았다. 난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혼자서는 아무것도 안 해본 사람이었다. 그뿐이었다.


숙소에 도착하고 짐을 푸니 어느덧 오후 11시였다. 늦은 시간이지만 출출했다. 그러나 이곳은 한국이 아닌 태국. 조심 또 조심해야 했기에 밖에 나가진 않았다. 한국 공항에서 먹다 남 식빵을 꺼내고 티비를 틀었다. 태국 개그 프로가 방영되고 있었다. 자막도 없던 터라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왜인지 편안했다. 조용한 공백이 채워진 느낌이었다.

티비를 켜둔 채 종이와 펜을 들었다.

'치앙마이에서 하고 싶은  적어보자.'

그러나 떠오르지 않았다.

'고 싶은 거'

남은 식빵을 모두 입에 털어 넣었다.

'거창한 거 말고 작은 것부터 생각해 보자.'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렇게 마음을 들여다보며 천천히 적어 내렸다.


Q. 태국에서 하고 싶은 거?

-카페에서 낮잠 자기

-멍 때리기

-안 먹어본 과일 먹어보기

-디저트 맛집 발견하기

-현지 음식 먹어보기

분명 '별거 아닌 작은 것' 을 적었는데 분명 '너무나 큰 쉼' 이었다. 꼭 대단하지 않아도 내가 원한다면 대단한 게 되는구나.


내가 원하는 거

어제까지만 해도 난 내가 뭘 원하는지 알지 못했다. 어떤 걸 하고 싶어 하는지, 어떤 걸 먹고 싶어 하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덧 종이 위로 5개나 적혀 있었다.

'난 사실 알고 있었구나. 내가 뭘 원하는지.'

어쩌면 그저 몰랐던 걸지도 모른다. 원하는 게 없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몰랐던 사람인 거다.

천천히 내면을 들여다보는 방법. 눈을 감고 크게 호흡하기, 그리고 충분한 시간 빌리기.

아직은 많이 미숙하지만 조금은 발전한 기분이 들었다.


적은 위시리스트에는 액티비티가 없었다. 정말 어지간히도 그냥 '쉬고' 싶었나 보다. 내가 쓴 글만 봐도 지금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었다.

'그래, 우선 쉬자.'

어둑이 내린 하늘, 하루종일 긴장했을 몸을 달래며 조용히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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